묵가의 사상을 집대성한 『묵자(墨子)』는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이 책은 『묵자』 교감본(校勘本)과 백화번역본(白話飜譯本) 등 지금까지 출간된 여러 판본을 비교·대조하여 기존 원전에서 빠진 글자나 구문, 오자 등을 최대한 바로잡은 완역판이다. 또한 어려운 한자나 단어에 일일이 주석을 달았으며, 주석을 달지 않은 경우에는 문장 속에서 그 뜻이 충분히 드러나도록 번역했다. 묵자의 사상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해제와 각 장의 내용을 소개하는 편장 개요도 실려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묵가는 춘추 전국 시대에 유가와 더불어 쌍벽을 이룬 철학 사상이었다. 『한비자』에서 “세상에 잘 알려진 학파는 유가와 묵가다.”라고 할 만큼 유행했지만 신분의 귀천과 계급을 무시하는 등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파격적이어서 지배층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결국 춘추 전국 시대가 끝나고 한나라가 들어서면서 정치 지도자들은 묵가에 비해 보수적인 색체를 띠었던 유가를 자신들의 정치 철학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묵학은 유학보다 더 선진적이고 개혁적인 학파였지만 오늘날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묵가의 철학은 평화를 숭상하는 ‘겸애(兼愛)’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묵자』에는 그 외에도 ‘묵자 십론(十論)’이라 불리는 여러 사상이 담겨 있다. 신분보다는 능력 위주로 관리를 뽑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거나 백성의 이익에 배치되는 재화와 노동력의 소비는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 등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견해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묵자』가 실천적 사상임을 일깨워 주는 내용들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따르면 묵자는 이름이 적(翟)으로, 노나라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을 비롯한 다른 문헌에서는 송(宋)나라 사람이라고도 적혀 있다. 출생 시기 역시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기원전 468년에서 기원전 378년 사이에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묵자의 신분에 대해서도 사료마다 모두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장인이나 천인으로 소개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유가 학문을 배운 선비로 묘사되기도 한다. 여러 원전을 종합해 봤을 때 묵자는 노동 계급에 속한 장인 출신이지만 학습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 일가를 이뤄 위대한 스승으로 거듭난 것으로 보인다.
『묵자』의 주요 사상은 현명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등용하고 숭상해야 한다는 ‘상현(尙賢)’, 상급자와 하급자의 의견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상동(尙同)’, 서로 사랑하며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겸애(兼愛)’, 전쟁에 반대하는 ‘비공(非攻)’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상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합리적인 면을 지니고 있어 『묵자』가 단순한 고전이 아닌 행동하는 철학이 되게 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따르면 묵자는 이름이 적(翟)으로, 노나라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을 비롯한 다른 문헌에서는 송(宋)나라 사람이라고도 적혀 있다. 출생 시기 역시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기원전 468년에서 기원전 378년 사이에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묵자의 신분에 대해서도 사료마다 모두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장인이나 천인으로 소개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유가 학문을 배운 선비로 묘사되기도 한다. 여러 원전을 종합해 봤을 때 묵자는 노동 계급에 속한 장인 출신이지만 학습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 일가를 이뤄 위대한 스승으로 거듭난 것으로 보인다.
『묵자』의 주요 사상은 현명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등용하고 숭상해야 한다는 ‘상현(尙賢)’, 상급자와 하급자의 의견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상동(尙同)’, 서로 사랑하며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겸애(兼愛)’, 전쟁에 반대하는 ‘비공(非攻)’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상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합리적인 면을 지니고 있어 『묵자』가 단순한 고전이 아닌 행동하는 철학이 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