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근대 심리소설의 선구적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의 사랑』(김석희 옮김)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출간되었다. 뱅자맹 콩스탕은 프랑스혁명과 7월 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근대 프랑스 정치사에서 주목할 만한 정치가이자, 이 소설 한 편으로 프랑스 문학사에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아돌프의 사랑』은 보름 동안 살롱의 독서회에서 낭독된 작품으로서, 연애 이야기를 수기 형식으로 엮은 고백체 소설이다. 몇몇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짜인 이 소설은 문고판 원서로 100여 쪽에 불과한 짧은 작품이지만, 프랑스어로 창작된 수많은 소설 가운데 걸작의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이 소설은 두 사람의 감미로운 연애를 그리기보다는, 그들이 인습과 욕망 사이에서 겪는 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연애의 심리 분석을 통해 자기 상실에 가까운 고뇌와 절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하리만큼 가식을 벗겨내는 진솔함과 엄격한 표현, 열정과 후회를 오가는 번민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작가는 필요 이상의 것을 다루지 않는다. 사건을 묘사하는 경우에도 몇 마디로 간추릴 뿐, 길게 늘어놓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콩스탕의 언어는 감정의 옷을 벗어버린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진솔함만이 아니라 정확하고 논리적이며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 까닭에, 프랑스 평론가 알베르 티보데가 『근대 프랑스 문학사』(1936)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프랑스의 심리소설은 이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다시 쓰거나 덧붙이거나 변주하거나 근대화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라고 이 소설을 평한 것이다.
Contents
제3판에 부쳐
아돌프의 사랑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Author
뱅자맹 콩스탕,김석희
1767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유럽 각지를 여행했으며, 독일 에를랑겐 대학과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수학했다. 프랑스혁명이 끝난 이듬해인 1795년 파리로 나와 입헌왕정파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 집권한 나폴레옹과의 관계도 협력과 결별을 오가면서 부침을 겪었고, 그에 따라 망명과귀환을 되풀이했다. 정치적 삶에서는 변절을 거듭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신봉했다. 왕정복고 후에는 참사원 의장에 선임되었고, 1830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스 정부는 국장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생애는 정치적 이력으로 점철되었지만, 『아돌프의 사랑』을 남김으로써 문학사에서도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연애소설이라는 외피를 걸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랑하는 남녀의 심리묘사를 통해 자기 파멸에 가까운 고뇌와 절망을 표출함으로써 근대 심리소설의 선구적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767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유럽 각지를 여행했으며, 독일 에를랑겐 대학과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수학했다. 프랑스혁명이 끝난 이듬해인 1795년 파리로 나와 입헌왕정파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 집권한 나폴레옹과의 관계도 협력과 결별을 오가면서 부침을 겪었고, 그에 따라 망명과귀환을 되풀이했다. 정치적 삶에서는 변절을 거듭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신봉했다. 왕정복고 후에는 참사원 의장에 선임되었고, 1830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스 정부는 국장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생애는 정치적 이력으로 점철되었지만, 『아돌프의 사랑』을 남김으로써 문학사에서도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연애소설이라는 외피를 걸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랑하는 남녀의 심리묘사를 통해 자기 파멸에 가까운 고뇌와 절망을 표출함으로써 근대 심리소설의 선구적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