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들뢰즈, 리오타르, 레비나스, 라캉 등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흔히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불리는 이 철학자들이 실은, 모더니즘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칸트의 제자들이라면 어떨까? 흔한 철학사적 구획 짓기에 따르자면, 칸트야말로 포스트모던 철학이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하는' 천적이다. 이 책은 이러한 속견에 도전한다.
지금껏 표면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칸트를 스승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칸트에 대한 연구 활동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라 불리는 일군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칸트에 대한 창조적인 독해를 시도했으며, 그로부터 얻은 영감으로부터 자기 철학을 일구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한다. 즉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한 포스트모던 철학은, 만일 칸트가 20세기까지 살면서 자기 사상을 전개시켰다면 도달했을지도 모를 형태, 칸트의 20세기적 변신인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칸트'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두 항의 관계만을 고려하는 제한된 시계(視界) 안에 머물지는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에 있는 철학자, 포스트모더니즘과 논쟁을 벌이며 맞서고 있는 철학자, 포스트모더니즘의 바깥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뿌리에 양분을 공급해 온 철학자 등등의 그룹과 칸트와의 관계까지 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포스트모던 철학 및 그를 둘러싸고 만들어진 주요 철학적 담론들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칸트의 모습을 가능한 한 폭넓게 조망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