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메를로 퐁티는 프랑스의 철학자로 현상학적 운동의 두 기념비적 저작을 발표했다. 그는 프랑스의 로쉬포르 쉬르 메르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사르트르를 만나 현상학자로서의 길을 함께 걸었으나 나중에 정치적 적대자로 돌아서게 된다. 철학 교수 자격을 취득한 후 여러 국립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당대의 유명한 사상가들 예컨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레이몽 아롱, 조르주 바타유, 자크 라캉, 에릭 베이유, 시몬느 드 보부아르, 알렉산더 코제브 등과 교유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1930년대 말에 후설의 현상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평생 철학 사상의 기본 방향과 틀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여러 국립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안 『행동의 구조La Structure du comportement』(1942)를 저술했고, 그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며 지하 운동 시절에 『지각의 현상학』(1945)을 준비했다. 현상학의 두 대표 저작이 나온 이후 소르본 대학 교수로 초빙되었으며, 죽기 마지막 10년은 베르그송을 거쳐 라벨로 이어지는 유서 깊은 프랑스 대학 철학 교수로 활동했다.
마지막 저술이자 논문은 『눈과 마음LOeil et l'esprit』(1961)이고, 후기 사상을 담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Le Visible et l'invisible』(1964)은 제자 클로드 르포Claude Lefort에 의해 편집되어 유고작으로 발행되었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는 프랑스의 철학자로 현상학적 운동의 두 기념비적 저작을 발표했다. 그는 프랑스의 로쉬포르 쉬르 메르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사르트르를 만나 현상학자로서의 길을 함께 걸었으나 나중에 정치적 적대자로 돌아서게 된다. 철학 교수 자격을 취득한 후 여러 국립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당대의 유명한 사상가들 예컨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레이몽 아롱, 조르주 바타유, 자크 라캉, 에릭 베이유, 시몬느 드 보부아르, 알렉산더 코제브 등과 교유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1930년대 말에 후설의 현상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평생 철학 사상의 기본 방향과 틀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여러 국립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안 『행동의 구조La Structure du comportement』(1942)를 저술했고, 그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며 지하 운동 시절에 『지각의 현상학』(1945)을 준비했다. 현상학의 두 대표 저작이 나온 이후 소르본 대학 교수로 초빙되었으며, 죽기 마지막 10년은 베르그송을 거쳐 라벨로 이어지는 유서 깊은 프랑스 대학 철학 교수로 활동했다.
마지막 저술이자 논문은 『눈과 마음LOeil et l'esprit』(1961)이고, 후기 사상을 담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Le Visible et l'invisible』(1964)은 제자 클로드 르포Claude Lefort에 의해 편집되어 유고작으로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