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울산광역시 북구 효문동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울산농고(현 울산공고)를 거쳐 1972년 부산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울산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영희 씨와 결혼하여 2남(수훈, 수완)을 두었다.
1972년 현대중공업에 공채 1기로 입사하여 현대정공(지금의 현대모비스)으로 옮겨 부장으로 재직하기까지 회사생활 10년 만에,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1982년 울산 최초의 도금업체인 덕산산업을 창업했다. 1990년 한국용융도금협회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고, 2001년 국제행사인 APGGC(아시아 태평양 용융아연도금 회의)를 유치하여 성공리에 개최하는 등, 한국 도금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
도전과 혁신의 정신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고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안정화된 시기인 1999년, 새로운 사업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인 54세에 기존에 해오던 사업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인 반도체 소재 벤처사업에 도전하여 덕산하이메탈을 창업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이 초창기에 겪는 숱한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양산기술 개발에 성공하여 솔더볼 생산과 기술 부문에서 국내 1위, 세계 2위의 기업으로 일구었다. 덕산하이메탈을 코스닥에 상장시킨 후, 덕산네오룩스, 덕산테코피아를 인수합병하여 상장기업으로 성장시켰고, 현재에는 9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덕산그룹으로 발전시켰다. 2000년 우수자본재 개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수훈하였다.
현재, 울산의 전통산업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지향 산업으로 변모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울산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스타트업 지원사업을 준비 중이다.
1946년 울산광역시 북구 효문동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울산농고(현 울산공고)를 거쳐 1972년 부산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울산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영희 씨와 결혼하여 2남(수훈, 수완)을 두었다.
1972년 현대중공업에 공채 1기로 입사하여 현대정공(지금의 현대모비스)으로 옮겨 부장으로 재직하기까지 회사생활 10년 만에,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1982년 울산 최초의 도금업체인 덕산산업을 창업했다. 1990년 한국용융도금협회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고, 2001년 국제행사인 APGGC(아시아 태평양 용융아연도금 회의)를 유치하여 성공리에 개최하는 등, 한국 도금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
도전과 혁신의 정신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고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안정화된 시기인 1999년, 새로운 사업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인 54세에 기존에 해오던 사업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인 반도체 소재 벤처사업에 도전하여 덕산하이메탈을 창업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이 초창기에 겪는 숱한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양산기술 개발에 성공하여 솔더볼 생산과 기술 부문에서 국내 1위, 세계 2위의 기업으로 일구었다. 덕산하이메탈을 코스닥에 상장시킨 후, 덕산네오룩스, 덕산테코피아를 인수합병하여 상장기업으로 성장시켰고, 현재에는 9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덕산그룹으로 발전시켰다. 2000년 우수자본재 개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수훈하였다.
현재, 울산의 전통산업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지향 산업으로 변모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울산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스타트업 지원사업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