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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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11/15
Pages/Weight/Size 140*210*30mm
ISBN 9788931024050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Description
댄디즘과 유미주의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이단아!
영원한 젊음 뒤에 숨은 어두운 비밀을 그려낸
오스카 와일드의 기묘하고 퇴폐적인 환상소설


“바질 홀워드는 제가 생각하는 저의 모습이고,
헨리 경은 세상이 바라보는 저의 모습이며,
도리언은 제가 되고 싶어 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오스카 와일드

기묘하고 잔혹하고 퇴폐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는 어느 날 화가가 그려준 초상화를 보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이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헛된 소망을 품는다. 헛되다고 여겼던 소망이 이뤄져 도리언 그레이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한다. 그 대신 그의 초상화가 늙어가며 추악하고 잔인한 모습으로 변하고 서서히 그를 파멸로 이끈다.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 예술론을 가장 잘 살린 작품으로, 고딕 문학처럼 ‘자아 분열’과 ‘분신’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 특유의 유미주의적이고 낭만적인 성질과 섬세하면서도 가벼운 동화적인 색채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아름다움과 추함, 예술, 쾌락, 허영심에 대한 비극적이고도 도발적인, 현실의 경계를 넘어 전복적 가치를 구현하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장르 문학의 고전으로서 널리 찬사받고 있다.
Contents
서문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작품 해설
오스카 와일드 연보
Author
오스카 와일드,임종기
1854년 영국 지배하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의사이자 학자였던 윌리엄 와일드와 시인이었던 제인 와일드의 아들로 출생했다. 1874년 옥스퍼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그리스 고전문학에 심취하여 ‘유미주의’ 운동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재학 중 이탈리아 라벤나를 여행하며 지은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어로 하는 탐미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독특한 옷차림과 말솜씨로도 유명했는데 당시 오스카 와일드의 이러한 행태를 조롱하는 희극 [인내]가 발표되어 미국에까지 전해졌다. 그는 이때부터 영국 글램 록의 원조가 되었다. 유미주의의 상징으로 새로운 멋으로써 유행시킨 공작 깃털, 해바라기 장식, 장발, 화려한 벨벳 바지 등을 착용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꿈꾼 서구의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자신을 모방하게 만들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는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를 출판하여 동화 형식의 낭만적 알레고리를 다루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1891년에는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하면서 영국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동성애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으로 도덕적이지 않다는 평단의 악평을 받고 수정하여 출간하게 된다. 미모의 청년 도리언이 쾌락의 나날을 보내다 악덕의 한계점에 이르러 파멸한다는 이야기였다. 비평가들은 그 부도덕성을 비난했지만 와일드는 예술의 초도덕적 성격을 강조했다. 와일드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장르는 풍속 희극으로, 대표작 『진지함의 중요성』(1895)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1891년 출간한 동화집 『석류나무 집』에 실린 단편 「별아이」가 있다.

그리고 시인이었던 알프레드 더글라스와 애정 어린 만남을 지속하다가 더글라스의 부친인 퀸즈베리 후작의 소송으로 작품의 도덕성까지 문제시되고 동성애자라는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 중노동형을 선고 받았다. 1895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감옥에 수감되고 국적을 박탈당하면서 작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가 죽은 지 98년이 지난 1998년에야 영국 국적이 회복되고,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제명의 동상이 세워졌다.
1854년 영국 지배하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의사이자 학자였던 윌리엄 와일드와 시인이었던 제인 와일드의 아들로 출생했다. 1874년 옥스퍼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그리스 고전문학에 심취하여 ‘유미주의’ 운동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재학 중 이탈리아 라벤나를 여행하며 지은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어로 하는 탐미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독특한 옷차림과 말솜씨로도 유명했는데 당시 오스카 와일드의 이러한 행태를 조롱하는 희극 [인내]가 발표되어 미국에까지 전해졌다. 그는 이때부터 영국 글램 록의 원조가 되었다. 유미주의의 상징으로 새로운 멋으로써 유행시킨 공작 깃털, 해바라기 장식, 장발, 화려한 벨벳 바지 등을 착용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꿈꾼 서구의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자신을 모방하게 만들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는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를 출판하여 동화 형식의 낭만적 알레고리를 다루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1891년에는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하면서 영국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동성애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으로 도덕적이지 않다는 평단의 악평을 받고 수정하여 출간하게 된다. 미모의 청년 도리언이 쾌락의 나날을 보내다 악덕의 한계점에 이르러 파멸한다는 이야기였다. 비평가들은 그 부도덕성을 비난했지만 와일드는 예술의 초도덕적 성격을 강조했다. 와일드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장르는 풍속 희극으로, 대표작 『진지함의 중요성』(1895)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1891년 출간한 동화집 『석류나무 집』에 실린 단편 「별아이」가 있다.

그리고 시인이었던 알프레드 더글라스와 애정 어린 만남을 지속하다가 더글라스의 부친인 퀸즈베리 후작의 소송으로 작품의 도덕성까지 문제시되고 동성애자라는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 중노동형을 선고 받았다. 1895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감옥에 수감되고 국적을 박탈당하면서 작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가 죽은 지 98년이 지난 1998년에야 영국 국적이 회복되고,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제명의 동상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