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버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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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10/30
Pages/Weight/Size 130*188*30mm
ISBN 9788931022865
Categories 소설/시/희곡 > 테마소설
Description
첫 출간 당시 나치 정부의 금서 판정,
학교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와 사회 문제를 다루는 깊이 있는 작품!

소설 『게르버』는 프라하 출신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작가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가 1930년 22세 때 발표한 소설이다. 고등학생 쿠르트 게르버가 겪는 학업의 어려움, 교수와의 갈등, 우정과 사랑의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프라하의 권위주의적인 학교에서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을 그리고 있다.

1921년 아버지가 프라하로 전근하면서 토어베르크가 다녔던 프라하의 학교는 개혁이 단행된 오스트리아 빈의 학교와 달리 옛 군주제 시기의 낡은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교육의 핵심은 규율과 규범을 내세우며 학생의 자유 의지를 꺾고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졸업 후 좋은 직장과 대학 입학을 위해 졸업시험 합격증이 필요한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성적 평가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수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소설의 서두에서 전하는 일주일에 열 명의 학생이 자살하는 현실은 그런 학교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권위주의적인 학교를 고발하는 토어베르크의 소설에는 고등학교 시절 시를 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927년 졸업시험에 한 번 낙방한 적이 있는 작가의 경험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소설은 카프카의 유고를 정리·발표한 막스 브로트의 도움으로 출간되었는데 첫 출간 당시 5,000부가 인쇄되고 1년도 안 되어 7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소설의 성공으로 토어베르크는 물질적인 안정과 함께 작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게르버』는 출간 3년째 되는 1933년 나치 정부가 “사제의 문제를 증오심에 가득 찬 왜곡된 형태로 그린” 소설로 판정해 금서가 되었다. 이어 1936년 토어베르크의 모든 글에 금서 판정이 내려졌고, 작가는 1938년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로 도피했다가 1940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1951년에야 오스트리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Contents
1. 쿠퍼, 유한 권능의 신
2. 검투사의 등장. 종이 울리다
3. 만남 셋
4. x에 대한 상념
5. 작은 말은 비틀거린다
6. 쿠르트 게르버라는 한 인간
7. 쿠르트 게르버, 출석번호 7번
8. 실패로 가는 길은 고단하다
9. “수요일 10시.” 통속소설
10. 양 전선에 불어닥친 폭풍
11. 작은 말은 쓰러진다
12. 졸업시험
옮긴이의 말
Author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한미희
190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라하 출신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921년 아버지가 프라하로 전근하면서 가족과 함께 프라하로 돌아가 1924년 체코 시민권을 획득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시를 발표하고 일간지의 스포츠 리포터와 연극 비평가로 활동했다. 1928년부터 프라하 대학에서 잠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한 후 프라하와 빈을 오가며 저널리스트, 연극 비평가, 소설가, 서정시인, 패러디 작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33년 첫 소설 《게르버》가 나치 정부의 금서 판정을 받은 이후 유대인 작가로서 박해를 받다가 1938년 스위스를 경유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1940년 다시 미국으로 도피해서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연극 비평가로 일했다. 1945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1951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저술에 힘을 쏟았다. 편집자, 잡지 발행인, 번역가, 방송 토론자로 활동하는 한편, 재능 있는 젊은 작가의 등단에 힘을 보탰다.
작품으로는 자신의 부정적 학교 체험을 그린 소설 《게르버》를 비롯해 《선수단. 스포츠 인생》 《복수는 나의 것》 《저 여기 있어요, 아버지》 《욜레슈 아주머니 혹은 일화로 보는 서양의 몰락》 《그것 역시 빈이었다》 등이 있다. 《게르버》 《저 여기 있어요, 아버지》 《그것 역시 빈이었다》 등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생전 율리우스 라이히 상, 빈 저널리즘상, 오스트리아 학문·예술·명예 십자훈장, 오스트리아 국가문학대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1979년 11월 10일 세상을 떠나 빈 중앙묘지에 안장되었다.
190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라하 출신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921년 아버지가 프라하로 전근하면서 가족과 함께 프라하로 돌아가 1924년 체코 시민권을 획득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시를 발표하고 일간지의 스포츠 리포터와 연극 비평가로 활동했다. 1928년부터 프라하 대학에서 잠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한 후 프라하와 빈을 오가며 저널리스트, 연극 비평가, 소설가, 서정시인, 패러디 작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33년 첫 소설 《게르버》가 나치 정부의 금서 판정을 받은 이후 유대인 작가로서 박해를 받다가 1938년 스위스를 경유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1940년 다시 미국으로 도피해서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연극 비평가로 일했다. 1945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1951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저술에 힘을 쏟았다. 편집자, 잡지 발행인, 번역가, 방송 토론자로 활동하는 한편, 재능 있는 젊은 작가의 등단에 힘을 보탰다.
작품으로는 자신의 부정적 학교 체험을 그린 소설 《게르버》를 비롯해 《선수단. 스포츠 인생》 《복수는 나의 것》 《저 여기 있어요, 아버지》 《욜레슈 아주머니 혹은 일화로 보는 서양의 몰락》 《그것 역시 빈이었다》 등이 있다. 《게르버》 《저 여기 있어요, 아버지》 《그것 역시 빈이었다》 등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생전 율리우스 라이히 상, 빈 저널리즘상, 오스트리아 학문·예술·명예 십자훈장, 오스트리아 국가문학대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1979년 11월 10일 세상을 떠나 빈 중앙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