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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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7/03/05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30312844
Categories 인문 > 철학/사상
Description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가 사상적인 성숙기에 이르러 그야말로 [피로써 쓴] 대서사시이다. 이 철학의 오케스트라는 이미 하나의 고전, 아니 현대의 바이블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좀 낯설지 모르겠다. 지성과 감성이 고도로 융화되어 톤이 매우 다채롭기 때문이다.

「왜 나는 이처럼 현명한가?」―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와 같이 반문한다. 다시 말해서 그처럼 자신만만한 것이다. 사실 그는 이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위대하기도 하였다. 그의 사상도 사상이려니와 인간으로서 그렇다. 그의 안에는 예언자와 철인과 시인이 사이좋게 동거하고 있다.

『차라투스트라』의 중심 명제는 [초인]과 [영원 회귀]의 사상이다. 초인(차라투스트라)은 요컨대 모든 고뇌와 비애와 죽음까지도 초극한 니체의 이상적인 인간상이며, 이로써 그는 모든 기성도덕과 기독교까지도 거부하였다. [신은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을 미처 모른 이러한 오해도, 장본인이 니체이기 때문에 희한하게 들린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는 일종의 마력(설득력이 아니라)을 갖고 있다. 즉, 그것은 작은 인간에 대한 경종이다. 그는 인간 중의 인간이고자 하였다.

Contents
역자 서문
차라투스트라의 서곡

제1부
1. 3단계의 변화
2. 덕의 강좌
3. 저승을 그리는 자
4. 육체를 경멸하는 자
5. 희열과 욕망
6. 창백한 범죄자
7. 독서와 저술
8. 산 위의 나무
9. 죽음의 설교자
10. 전쟁과 용사
11. 새로운 우상
12. 시장의 파리떼
13. 순결
14. 친구
15. 천 개의 표적
16. 이웃에 대한 사랑
17. 창조자의 길
18.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
19. 독사에게 물린 상처
20. 어린이와 결혼에 대하여
21. 자발적인 죽음
22. 나눠주는 덕

제2부
1. 거울을 가진 어린이
2. '행복의 섬'에서
3. 자비로운 자
4. 성직자들
5. 덕이 있는 자
6. 천민
7. 독거미
8. 유명한 현인
9. 밤의 노래
10. 춤의 노래
11. 무덤의 노래
12. 자기 초극
13. 숭고한 사람들
14. 문명국
15. 결백한 인식
16. 학자
17. 시인
18. 중대한 사건
19. 예언자
20. 속죄
21. 남성적인 세심
22. 가장 고요한 시간

제3부
1. 방랑자
2. 환영과 수수께끼
3. 뜻에 거슬리는 축복
4. 해뜨기 전
5. 왜소하게 만드는 덕
6. 감람산에서
7. 거리를 지나면서
8. 배교자
9. 귀향
10. 세 가지 악
11. 무거운 정신
12. 낡은 게시판과 새로운 게시판
13. 회복기의 환자
14. 커다란 동경
15. 제2의 무곡
16. 일곱 개의 봉인

제4부
1. 꿀의 공양
2. 비명
3. 임금과의 대화
4. 거머리
5. 마술사
6. 실직자
7. 가장 추악한 인간
8. 자발적인 걸인
9. 그림자
10. 정오
11. 인사
12. 만찬
13. 더욱 고귀한 인간
14. 우울의 노래
15. 지식
16. 사막의 딸들
17. 각성
18. 당나귀의 축제
19. 술 노래
20. 징후
Author
F. 니체,최민홍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