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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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7/12/14
Pages/Weight/Size 150*210*3mm
ISBN 9788927731931
Categories 국어 외국어 사전 > 독일어
Description
“다락원 독일어 학습문고” 시리즈는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을 읽어 봐야 할 독일 명작들을 초급 문법을 공부한 학습자들의 읽기 수준에 맞는 현대 독일어로 각색하여 명확한 번역과 함께 제시한 독일어 학습문고 시리즈이다. “다락원 독일어 학습문고 ⑤ 깨어진 항아리”는 독일 연극사에서 3대 희극으로 꼽히는 걸작으로서, 천재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작품이다. 자신이 연루된 사건의 재판을 맡게 된 주인공이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고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을 익살스럽고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Contents
머리말 03
일러두기 04
작가 및 작품 소개 06

Der Handlungshintergrund und die Personen 배경 및 등장인물 11
1. Szene 13
2. Szene 17
3. Szene 20
4. Szene 24
5. Szene 27
6. Szene 30
7. Szene 34
8. Szene 38
9. Szene 42

부록
Aufgaben 연습 문제 48
Losungen 모법 답안 61
Ubersetzung 전문 번역 63
Author
Heinrich von Kleist,서유경
독일의 극작가·소설가. 프랑크푸르트 안데어오데르 출생. 포츠담 근위연대에 들어가 소위로 진급하였으나, 1799년 인생의 행복과 진실을 자기 내면의 문제로서 추구하는 길을 선택해 군을 떠났다.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 칸트철학에서 절대적 인식의 불가능을 간파하고 충격을 받아 파리 여행을 했다. 그러나 대도시 생활을 혐오하고 스위스에서 자연 속의 농부가 되려 했다.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약혼자와의 관계를 끊고, 고독한 창작활동에 들어갔다.(1802) 야심작인 비극 『로베르트 지스카르트』를 완성하지 못하였으나 프로이센 관공서에서 일하며 창작의욕을 되찾았다.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굴복하자 프랑스군에 체포되었으나 창작을 계속해 1807년 희극 『암피트리온』을 간행하였다. 석방된 뒤 드레스덴으로 옮겨 아담 뮐러와 월간지 『푀부스』를 창간 비극 『펜테질리아』(1808)를 비롯한 희곡과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희극 『깨어진 항아리』(1811)의 초연이 실패하여 연출을 맡았던 괴테와 다투었으며 나폴레옹에 대한 증오로 애국적 시, 희곡을 써 베를린을 무대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낭만파 문인과 사귀며 [베를린 석간신문]을 발행, 단편과 에세이 『인형극』 등을 게재하였다. 희곡 『프리드리히 폰 홈부르크 왕자』(1810)를 왕실에 바치고, 『미하엘 콜하스』(1810)를 비롯한 8편이 수록된 『단편소설집』(2권, 1810∼11)을 출판하였다. 그는 독일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비극과 희극 양면에서 재능을 발휘, 인간 인식능력의 부재와 그에 바탕을 둔 격렬한 갈등을 그려 이것을 자아의 깊은 곳에 있는 절대적 ‘감정’으로 극복하고 다른 사람이나 바깥세계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려 하였다. 오늘날 그는 실존주의문학의 선구 또는 20세기 문학의 원류로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독일의 극작가·소설가. 프랑크푸르트 안데어오데르 출생. 포츠담 근위연대에 들어가 소위로 진급하였으나, 1799년 인생의 행복과 진실을 자기 내면의 문제로서 추구하는 길을 선택해 군을 떠났다.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 칸트철학에서 절대적 인식의 불가능을 간파하고 충격을 받아 파리 여행을 했다. 그러나 대도시 생활을 혐오하고 스위스에서 자연 속의 농부가 되려 했다.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약혼자와의 관계를 끊고, 고독한 창작활동에 들어갔다.(1802) 야심작인 비극 『로베르트 지스카르트』를 완성하지 못하였으나 프로이센 관공서에서 일하며 창작의욕을 되찾았다.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굴복하자 프랑스군에 체포되었으나 창작을 계속해 1807년 희극 『암피트리온』을 간행하였다. 석방된 뒤 드레스덴으로 옮겨 아담 뮐러와 월간지 『푀부스』를 창간 비극 『펜테질리아』(1808)를 비롯한 희곡과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희극 『깨어진 항아리』(1811)의 초연이 실패하여 연출을 맡았던 괴테와 다투었으며 나폴레옹에 대한 증오로 애국적 시, 희곡을 써 베를린을 무대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낭만파 문인과 사귀며 [베를린 석간신문]을 발행, 단편과 에세이 『인형극』 등을 게재하였다. 희곡 『프리드리히 폰 홈부르크 왕자』(1810)를 왕실에 바치고, 『미하엘 콜하스』(1810)를 비롯한 8편이 수록된 『단편소설집』(2권, 1810∼11)을 출판하였다. 그는 독일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비극과 희극 양면에서 재능을 발휘, 인간 인식능력의 부재와 그에 바탕을 둔 격렬한 갈등을 그려 이것을 자아의 깊은 곳에 있는 절대적 ‘감정’으로 극복하고 다른 사람이나 바깥세계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려 하였다. 오늘날 그는 실존주의문학의 선구 또는 20세기 문학의 원류로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