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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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0/08/20
Pages/Weight/Size 128*188*20mm
ISBN 9788901110837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학
Description
인민주권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정치 이론의 시작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사상 저작으로 1762년 출간된 이래 격렬한 논쟁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국가의 주권자란, 입법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국민이라는 혁명적인 주장을 펼침으로써, 그동안 왕권신수설에 기초하여 신의 의지로부터 부여받은 전권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던 절대군주들의 권력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계기를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근본 전제로부터 자유와 법, 정의의 문제들을 함께 고찰함으로써, 전체주의의 청사진으로도, 민주주의 원칙의 선언으로도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사회학적 관점을 최초로 제시하여, 근대 사회과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Contents
옮긴이 서문 /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 루소의 『사회계약론』

사회계약론
루소의 주석

옮긴이 주
Author
장 자크 루소,김중현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1712년 '유럽의 가장 작은 공화국’ 제네바의 시계 수리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한 후부터는 외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외사촌과 함께 한 목사의 집에서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으나 엄격하고 인위적인 교육 방법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 후 법원 서기의 필사 수습 사환, 동판 조각사의 견습공 등으로 일했으나 독서열과 상상력을 펼칠 수 없는 나날은 그에게 크나큰 짐이 되었다.

열여섯에 제네바를 떠난 루소는 바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바랑 남작부인과 루소의 관계는 마치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았다고 한다. 바랑 부인은 그에게 지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고, 루소는 이때 철학과 문학에 대한 소양을 풍부히 갖추게 된다.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그는 스물여덟에 가정교사로 일하는 등 사회 활동을 하다가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1742년 파리로 나온 그는 디드로가 공동 편집을 진행하던 『백과전서』의 여러 항목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인 저술가로 활동하게 된다. 선되었고 이것이 『학문과 예술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사상가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 후 저작에만 몰두하여 『불평등기원론』, 『정치 경제론』, 『신 엘로이즈』등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마흔이 되던 1762년 4월에 자유 실현에 관한『사회계약론』을, 5월에 인간 교육에 관한 사상을 담은 『에밀』을 출간했으나, 파리 의회는 『에밀』을 압수하는 한편 루소를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그는 스위스로 도피했지만 제네바 당국도 『사회계약론』과 『에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책을 불태우는 등 적대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1768년에는 1745년 이래 지내온 테레즈 르바쇠르와 정식으로 이혼한 루소는 피해망상에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1770년 파리로 돌아와 자기 변호를 위한 작품 『루소, 장 자크를 재판하다』를 쓰기도 했다. 주변의 박해로 여러 곳을 떠돌던 그는 지라르댕 후작의 배려로 그의 영지에서 집필 활동을 하다가 집필 중이던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1788년 생을 마쳤다.

그는 이성 중심의 사상을 허물고 낭만주의의 탄생에 공헌했으며, 자유가 보편적인 동경의 대상이라고 역설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그의 개혁 사상은 당시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에서 그의 자유민권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으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학예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신 엘로이즈』, 『음악 사전』 ,『고백록』,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이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1712년 '유럽의 가장 작은 공화국’ 제네바의 시계 수리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한 후부터는 외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외사촌과 함께 한 목사의 집에서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으나 엄격하고 인위적인 교육 방법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 후 법원 서기의 필사 수습 사환, 동판 조각사의 견습공 등으로 일했으나 독서열과 상상력을 펼칠 수 없는 나날은 그에게 크나큰 짐이 되었다.

열여섯에 제네바를 떠난 루소는 바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바랑 남작부인과 루소의 관계는 마치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았다고 한다. 바랑 부인은 그에게 지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고, 루소는 이때 철학과 문학에 대한 소양을 풍부히 갖추게 된다.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그는 스물여덟에 가정교사로 일하는 등 사회 활동을 하다가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1742년 파리로 나온 그는 디드로가 공동 편집을 진행하던 『백과전서』의 여러 항목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인 저술가로 활동하게 된다. 선되었고 이것이 『학문과 예술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사상가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 후 저작에만 몰두하여 『불평등기원론』, 『정치 경제론』, 『신 엘로이즈』등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마흔이 되던 1762년 4월에 자유 실현에 관한『사회계약론』을, 5월에 인간 교육에 관한 사상을 담은 『에밀』을 출간했으나, 파리 의회는 『에밀』을 압수하는 한편 루소를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그는 스위스로 도피했지만 제네바 당국도 『사회계약론』과 『에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책을 불태우는 등 적대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1768년에는 1745년 이래 지내온 테레즈 르바쇠르와 정식으로 이혼한 루소는 피해망상에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1770년 파리로 돌아와 자기 변호를 위한 작품 『루소, 장 자크를 재판하다』를 쓰기도 했다. 주변의 박해로 여러 곳을 떠돌던 그는 지라르댕 후작의 배려로 그의 영지에서 집필 활동을 하다가 집필 중이던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1788년 생을 마쳤다.

그는 이성 중심의 사상을 허물고 낭만주의의 탄생에 공헌했으며, 자유가 보편적인 동경의 대상이라고 역설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그의 개혁 사상은 당시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에서 그의 자유민권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으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학예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신 엘로이즈』, 『음악 사전』 ,『고백록』,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