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오랜 연구 끝에 펴낸 『사기』 완역본이다. 본문뿐 아니라 대표주석서 3권까지 함께 번역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새로운 관점의 주석까지 추가하여 우리의 시각으로 중국사를 볼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총 40여 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한고조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는 산동성 출신으로 여(呂)씨에 이름이 치(雉)였다. 유방은 자신 사후 유씨 천하가 무너질 것을 우려해 백마를 죽여 대신들과 맹세하면서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이 되면 천하가 함께 공격해야 한다”고 맹세하게 했다. 그러나 유방은 여후의 계략에 빠져 한신과 팽월 같은 공신들을 제거함으로써 유씨 왕실을 스스로 약하게 만들었다.
여후는 유씨만을 후왕에 책봉하라는 유방의 유훈을 어기고 동생인 여산(呂産), 여록(呂祿) 등을 후왕으로 책봉했지만 여후가 죽자 여씨들은 대거 주멸되면서 여씨 정권은 무너지고 고조의 넷째아들 유항이 문제가 되었다.
문제는 여후가 여씨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치유하는데 적격인 제왕이었다. 그 뒤를 이은 경제(景帝)의 치세와 함께 ‘문경지치(文景之治)’로 불리는데, 사마천 역시 두 제왕을 성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마천이 바라던 제왕의 상이 문제와 경제에게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여태후는 실제로 정권은 장악했지만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사마천이 〈여태후본기〉에 넣어서 서술한 것은 이름뿐만 아니라 실제로 황제 역할은 한 것을 인정한다는 뜻일 것이다.
Contents
「여태후본기」
제1장. 여태후의 세상이 열리다
척부인을 사람돼지로 만들다
여씨呂氏들을 왕으로 삼다
조왕趙王을 굶겨 죽이다
제2장. 여후가 죽고 여씨가 몰락하다
여후呂后가 죽다
여후 세력들을 대거 주륙하다
「효문본기」
제1장. 혼란이 계속되다
대왕에서 황제로 영입되다 .
제북왕濟北王 유흥거劉興居가 반란을 일으키다.
제2장. 민생을 안정시키다
육형肉刑을 없애라고 하다
한나라에서 적赤을 높이다
문제가 미앙궁에서 죽다
태자 경제가 즉위하다
Author
사마천,배인,사마정,장수절,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
사마천은 자가 자장子長으로서 하양(지금 섬서성 한성시) 출신이다. 한무제 때 태사공을 역임하다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을 당했다. 기전체 사서이자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집필해 역사서 저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후세 사람들이 태사공 또는 사천이라고 높여 불렀다. 《사기》는 한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중국민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삭제하거나 한족의 역사로 바꾸기도 했다.
사마천은 자가 자장子長으로서 하양(지금 섬서성 한성시) 출신이다. 한무제 때 태사공을 역임하다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을 당했다. 기전체 사서이자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집필해 역사서 저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후세 사람들이 태사공 또는 사천이라고 높여 불렀다. 《사기》는 한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중국민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삭제하거나 한족의 역사로 바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