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심밀경解深密經」의 이전의 품들에서 비할 바 없는 무등無等의 경境·행行을 설하였다면, 이 마지막 「여래성소작사품如來成所作事品」은 '무등의 과果'를 설하였다. 원측의 주석에 따르면, 이 품에서는 법신法身과 화신化身과 수용신受用身 등 삼신三身에 의거해서 여래의 불가사의한 과의 세계를 설한다. 그런데 여래는 무엇보다 중생을 요익饒盆되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기 때문에 화신에 초점을 맞춰 여래가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교화 사업을 성취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설하였다. 여래의 화신이 시현하는 방편선교方便善巧는 무궁무진하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팔상성도八相成道이다. 또한 이 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화신이 행하는 사업의 일환으로서 여래의 불가사의한 언음言音을 설하는 가운데 후대 불교논리학(因明)의 기초 교리를 연상시키는 교설들이 설해진다는 점이다.
스님의 휘諱는 문아文雅이고 자字는 원측圓測이며, 신라 국왕의 자손이다. 3세에 출가해서 15세(627)에 입당하였다. 처음에는 경사京師의 법상法常과 승변僧? 등에게 강론을 들으면서 중국 구舊유식의 주요 경론들 을 배웠다. 정관 연간正觀年間(627~649)에 대종문황 제大宗文皇帝가 도첩을 내려 승려로 삼았다. 장안의 원법사元法寺에 머물면서 「비담론?曇論」, 「성실론成實論」 「구사론俱舍論」, 「대비바사론大昆婆沙論」 등 고금 의 장소章疏를 열람하였다. 현장호?이 귀국한 이후에 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을 통해 신新유식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서명사西明寺의 대덕이 된 이후부터 본격적 저술 활동에 들어가서 「성 유식론소成唯識論疏」,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인왕경소仁王經疏」 및 「관소연론觀所綠論」, 「반야심경般若心經」, 「무량의경無量義經」 등의 소疏를 찬술하였다. 지금은 「인왕경소」 3권과 「반야바라밀다심경찬般若波羅 蜜多心經?」 1권, 그리고 「해심밀경소」 10권만 전해진다. 말년에 역경에 종사하다 낙양洛陽의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84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후대에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서명파西明派를 탄생 시킨 장본인으로 추앙받았다.
스님의 휘諱는 문아文雅이고 자字는 원측圓測이며, 신라 국왕의 자손이다. 3세에 출가해서 15세(627)에 입당하였다. 처음에는 경사京師의 법상法常과 승변僧? 등에게 강론을 들으면서 중국 구舊유식의 주요 경론들 을 배웠다. 정관 연간正觀年間(627~649)에 대종문황 제大宗文皇帝가 도첩을 내려 승려로 삼았다. 장안의 원법사元法寺에 머물면서 「비담론?曇論」, 「성실론成實論」 「구사론俱舍論」, 「대비바사론大昆婆沙論」 등 고금 의 장소章疏를 열람하였다. 현장호?이 귀국한 이후에 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을 통해 신新유식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서명사西明寺의 대덕이 된 이후부터 본격적 저술 활동에 들어가서 「성 유식론소成唯識論疏」,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인왕경소仁王經疏」 및 「관소연론觀所綠論」, 「반야심경般若心經」, 「무량의경無量義經」 등의 소疏를 찬술하였다. 지금은 「인왕경소」 3권과 「반야바라밀다심경찬般若波羅 蜜多心經?」 1권, 그리고 「해심밀경소」 10권만 전해진다. 말년에 역경에 종사하다 낙양洛陽의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84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후대에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서명파西明派를 탄생 시킨 장본인으로 추앙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