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고전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역·주·해·소·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역(譯)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번역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고전은 번역만으로는 내용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에 모내기를 할 때 물을 주듯 번역한 글에도 물을 대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글이 살아나는데 이것이 주(注)다. 해(解)는 해석을 뜻한다. 역과 주를 통한 글이라도 여전히 거칠거나 딱딱하므로 해석이 이루어져야 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는데 이것이 해(解)다. 그렇더라도 이 내용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밝혀야 하는데 이것이 통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소(疏)이다. 마지막으로 이 내용에 대한 비판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이 논(論)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동아시아 고전의 내용이 제대로 밝혀진다.
이 책에선 내편에 이어 외편의 해(解)와 소(疏)를 다룬다. [장자]는 크게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성되는데 내편은 장자가 직접 쓴 글이고, 외편과 잡편은 장자 추종자들이 보탠 글이라고 보아진다. 그렇다면 이름이 왜 내편, 외편, 잡편으로 붙여졌을까? 이는 내전(內傳)과 외전(外傳)의 구분이라는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불가에선 내전인 불경을 공부한 뒤 외전을 반드시 읽히도록 했다. 내전을 통해 안에서부터 학습하고 외전을 통해 바깥으로부터 보충하는 교육방식 때문이다. 이는 불가사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아이러니하게 [장자]는 오랫동안 불가의 대표적인 외전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면 [장자]에 있어 외편은 어떤 역할을 담당할까? 물론 내편에서 다룬 내용을 확장하거나 설명을 보완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내편이 교과서라면 외편은 참고서쯤에 해당한다.
한편 내편과 외편의 서술 방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발견된다. 내편은 서술이 전체적으로 체계성을 유지하면서 이루어지는 반면 외편은 전체로서의 체계성을 유지하기보다는 각 편마다 독립을 유지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각 편의 앞부분이 이론적 틀에 해당하고, 이어서 관련된 각론이 펼쳐진다. 이처럼 외편의 각 편들은 독립적으로 서술이 이루어지므로 서로 간의 연계성을 발견하기 힘들다.
외편 구성에 있어 흥미로운 점은 내편이 소요유(逍遙遊)로 시작하는데 반해 외편도 지북유(知北遊)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유(遊)’로 시작해 ‘유(遊)’로 끝나는 셈이다. 유는 [장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아마도 [논어]에서 인(仁)의 개념만큼이나 많이 등장한다. 장자는 그만큼 유를 강조한다. 장자가 이처럼 강조하는 유가 장자서의 시작과 끝의 제목을 장식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이에 따라 외편도 내편과 마찬가지로 유의 관점에서 읽으면 장자사상에 보다 가깝게, 또 깊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 경상도 쪽 언저리 산청군 생초면이 그의 고향이다. 이곳엔 경북 영양의 주실마을, 전북 임실의 삼계면과 더불어 남한의 삼대 문필봉(文筆峰)이 있다. 고향의 이런 정기를 이어받은 탓인지 대학에선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해선 신문사를 첫 직장으로 택했다. 기자로서 3년여를 보내고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미주리대에서 언론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받은 뒤 1985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에 교수로 부임해 지금까지 재직해 오고 있다. 『禮와 藝: 한국인의 의사소통 사상을 찾아서』, 『노장·공맹 그리고 맥루한까지』, 『玄: 노장의 커뮤니케이션』, 『소통의 사상가 장자』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