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작가생활 50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지난 15년 동안 긴 호흡으로 오에의 문학을 지켜본 '요미우리신문' 문화부 담당기자 오자키 마리코와의 대담집이다. 오자키는 “훌륭한 작가가 훌륭한 비평가인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까지나 적절하면서도 통렬하고 집요한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비평가는 작가 자신뿐이지 않을까, 확신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오에 선생의 이야기를 통째로 기록해두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총 5시간 분량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것에, 문예지 '신초'의 인터뷰 등을 덧붙여 여섯 장으로 재편성해 책으로 출간했다.
“두 시간 동안이나 책을 힐끗 볼 수조차 없기 때문에” 영화관에 가지 않고,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새벽 6시면 일어나 생수 한 잔을 마시고 오후 2시까지 꼬박 여덟 시간 글을 쓰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책을 읽는다는 노(老)작가. 그는 이번 대담을 위해 데뷔 당시부터 50년간 쓴 소설을 모두 다시 읽었다고 한다. 장편소설만 해도 20여 권을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단순히 성실한 성품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대목이다. 문학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진지함을 넘어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대담집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오에의 정치적 신조는 분명하다.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윤리적 자세를 끊임없이 자문하는 가운데, 오에는 전후 민주주의자로서의 가치관을 작가 활동의 근간으로 삼는다. 베트남 반전운동, 히로시마 반핵운동 등에 참가하는가 하면, 천황제를 비판한 소설을 발표해 우익의 협박을 받기도 했고, 김지하와 솔제니친 등 정치적 탄압을 받는 작가들의 석방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일본 천황이 문화훈장을 수여하려고 하자 ‘자신은 전후 민주주의자로서 민주주의 이상의 권위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평생에 걸쳐 우직하게 관철해온 정치노선은 일본 국내에서 많은 적을 만들어왔지만, 그는 여전히 꼿꼿하다.
오에 겐자부로의 여러 매력과 수식어에도 불구하는 그는 결국 우리에게 소설가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50년을 정리하는 이 책의 제목도 “오에 겐자부로, 자신을 말하다”가 아닌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가 아닐까? 그는 말한다. “권력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늘 살아 왔지만, 데모에 가담할 경우에도 그것을 소설가로서의 생활보다 상위에 두지 않았습니다.” 사회에 대한 작가의 윤리도 중요하지만 더 좋은 소설을 쓰고자 하는 작가정신이야말로 그의 50년에 걸친 문학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Contents
제1장 / 시, 첫 소설 작품, 졸업논문
작가 생활 50년을 앞두고
-어린 시절에 발견한 언어의 세계
-이타미 주조와의 만남
-소설가를 지망하다
-와타나베 가즈오 선생과의 교분
제2장 / [기묘한 작업]초기단편[절규][히로시마 노트][개인적 체험]
-아쿠타가와상 수상 무렵
-소설은 이렇게 씌어진다
-‘전후파’에 대한 경외와 위화감
-‘안보비판을 위한 모임’과 ‘젊은 일본의 모임’
-[세븐틴]을 읽은 미시마 유키오로부터의 편지
-1963년 장남 히카리탄생
-[개인적 체험]간행 당시의 평가
제3장 /[만엔 원년의 풋볼][손수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던 날][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동시대 게임][M/T와 숲의 이상한 이야기]
-고향의 중학교에서
-1960년 안보투쟁
-[동시대 게임]을 지금 다시 읽다
-멕시코 체류기간의 자극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를 문단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M/T와 숲의 이상한 이야기]의 리얼리티
제4장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인생의 친척][조용한 생활][치료탑][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
-여성이 주역이 된 1980년대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와 윌리엄 블레이크
-[조용한 생활]의 가정상
-아버지라는 존재
제5장 /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타오르는 푸른 나무][공중제비돌기]
-1987년, 분수령이 된 해
-시의 인용과 번역을 둘러싼 고찰
-기원과 문학
-주제가 사건을 예지하다
제6장 / ‘수상한 2인조’ 3부작 [2백 년의 아이들]
-노벨문학상 수상의 밤
-조코 고기토라는 화자
-[2백 년의 아이들]의 판타지
-어디부터가 픽션인가
-성성(聖性)과 고요함
-자폭테러에 대해서
-젊은 소설가들에게
오에 겐자부로, 106개의 질문 앞에 서다
인터뷰 후기
옮긴이의 말 | 노작가의 육성으로 쓰는 자서전
오에 겐자부로 연보
일본 소설가.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1935년 일본 에히메현의 유서 깊은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4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했고, 논문 「사르트르 소설의 이미지에 관하여」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발표한 단편소설 「기묘한 아르바이트」(1957)가 [마이니치신문]에 언급되면서 주목받고 평론가들의 좋은 평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듬해에 단편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등단 초기에는 전후 일본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의 방황과 좌절을 그려냈고 60년대에는 미일안보조약 재개정 반대 시위와 학생운동 등 민주주의로 향하는 진보적인 흐름을 작품 속에 그려냈다.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대표작으로 언급된 『만엔 원년의 풋볼』(1967)에서는 이러한 주제를 100년 전의 농민 봉기와 연결하기도 했고,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1973)에서는 일본의 급진 좌파가 몰락하게 되는 ‘아사마 산장 사건’을 다루었다.
1960년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사회파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의 여동생 이타미 유카리와 결혼했다. 1963년 장남 오에 히카리가 뇌 이상으로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를 계기로 『개인적인 체험』, 『허공의 괴물 아구이』, 『핀치러너 조서』 등 지적 장애아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모색하는 여러 작품을 집필했다. 폭력 앞에 놓인 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국경을 넘어 사회적인 약자,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작품 속에 그려 냈다. 대표작인 『개인적인 체험』(1964)은 실제 오에 히카리가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쓴 소설이다.
이후 소설뿐만 아니라 르포르타주인 『히로시마 노트』, 『오키나와 노트』 등을 발표하면서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주요 과제들을 주목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일본의 두 번째 수상자가 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작가 스스로 마지막 소설 3부작이라고 명한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을 발표했고 근래까지 장편소설 『익사』(2009), 단편집 『오에 겐자부로 자선 단편』(2014) 등을 발표하면서 현역 작가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