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오랜 연구 끝에 펴낸 『사기』 완역본이다. 본문뿐 아니라 대표주석서 3권까지 함께 번역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새로운 관점의 주석까지 추가하여 우리의 시각으로 중국사를 볼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총 40여 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사마천이 사기본기를 쓴 순서를 주목해보자. 항우본기는 사기 제7권, 고조본기는 제8권이다. 중원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한 고조 유방보다 항우를 앞에 내세웠다. 사마천이 살았던 한나라의 시각으로 볼 때 항우는 반역자였고, 그래서 반고는 『한서』에서 항우를 본기는커녕 일종의 반란자들의 사적인 〈진승 항적열전〉에 수록했다. 그러나 사마천은 항우를 한고조 유방보다 앞서 본기에 수록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마천이 항우를 크게 높인 것은 아니었다. 사마천은 “태사공은 말한다”라는 사평(史評)에서 (항우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군사를 잘못 움직인 죄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크게 비판했다. ‘옛날 일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패왕의 사업만을 말하면서 힘으로 천하를 정벌’하려다가 패했다면서 천명이 아니라 항우 자신의 잘못 때문에 패했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천명 자체는 거부하지 않았지만 그 천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 행위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시각이 유방과 항우의 홍문연(鴻門宴)에 대한 기술에 들어있다. 이때 항우가 유방의 목을 벴으면 중원의 패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함의였다. 항우의 왕사(王師) 범증(范增)이 “오호라! 어린아이와는 일을 도모할 수 없구나. 항왕의 천하를 빼앗을 자는 반드시 패공일 것이다.”라고 한탄한 말은 이래서 인용한 것이다.
Contents
「신주사기 6 - 항우본기」
제1장. 초나라 후예 항적의 등장
진승과 유방이 군사를 일으키다
항량의 부상
항량, 정도에서 죽다
항우, 거록을 구원하다
장함이 항우에게 귀의하다
유방, 항백에게 도움을 청하다
패공이 항왕에게 사죄하다
사마천은 자가 자장子長으로서 하양(지금 섬서성 한성시) 출신이다. 한무제 때 태사공을 역임하다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을 당했다. 기전체 사서이자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집필해 역사서 저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후세 사람들이 태사공 또는 사천이라고 높여 불렀다. 《사기》는 한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중국민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삭제하거나 한족의 역사로 바꾸기도 했다.
사마천은 자가 자장子長으로서 하양(지금 섬서성 한성시) 출신이다. 한무제 때 태사공을 역임하다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을 당했다. 기전체 사서이자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집필해 역사서 저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후세 사람들이 태사공 또는 사천이라고 높여 불렀다. 《사기》는 한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중국민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삭제하거나 한족의 역사로 바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