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공동체를 조망하기 위해 어제를 돌아보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필수적인 작업이다. 『동서양의 문명과 한국』은 역사, 신화, 전통, 종교, 문명 등 우리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해 주는 정체성의 원천을 살핀다. 특히 동서양 문명이 교차하는 가운데 전통문화가 형성되어 온 과정과 그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아울러 살핌으로써 지금의 한국 사회를 낳은 정신적 문화의 기원을 고찰한다.
「단군신화와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서 도진순 교수는 역사란 과거의 한 순간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그것을 호명해 내는 주체의 욕망 또는 이데올로기가 결합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치우와 웅녀, 홍산문화, 북한의 단군릉 등 남북한 및 중국을 넘나들며 단군신화와 관련된 역사적 논란들의 맥락을 짚는다. 「조선에서의 이질적 동서양 두 과학의 만남」에서는 문중양 교수가 조선 시대의 과학이 세종 대 절정에 달한 후 퇴보를 거듭했다는 일반적 인식이 사실(史實)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천문학, 의약학, 지리학, 우주론 등의 변천을 살피고, 조선 과학사를 동서양 과학의 이질적인 두 패러다임이 충돌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과학의 면모로 이해하고자 한다. 심경호 교수의 「전통 시대 학문의 의미와 실천, 그리고 방법」은 의리지학(義理之學)에서 잡학(雜學)에 이르기까지 전통 시대의 다양한 학문 층위와, 초록(抄錄)과 풍송(諷誦)에서 시문 짓기(作詩)로 나아가는 공부의 방법을 살펴보면서 학문의 의미를 살핀다.
김기봉 교수의 「동서양의 역사관」은 동서양에서 각각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마천과 헤로도토스에서 시작해 근대의 랑케, 칸트, 헤겔, 마르크스를 지나 현대의 탈식민주의와 지구사까지 역사 서술 방식을 일별하며 인간, 시간, 공간의 삼간(三間)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역사 이념이 도출됨을 보인다. 「오늘의 한국 종교」에서는 정진홍 교수가 ‘수평과 수직’ 구조, ‘중심과 정점’ 지배 지향성을 두 축으로 설정할 때 현재 한국의 각 종교들이 어떤 좌표들을 오가고 있는지 설명하고, ‘단일종교문화’에서 ‘다종교문화’, ‘다문화종교’로 바뀌어 가는 상황, 그리고 ‘시장적’ 상황 속에 놓인 종교들이 내보이는 거대화, 극단화 추세의 의미를 묻는다. 전경수 교수의 「하청 제국주의 틀 속의 문명과 원시」는 이 책에서 가장 넓은 틀로서 문명과 그 바깥의 관계를 묻는 글이다. 특히 논의의 배경을 동아시아로 설정하여,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에서 수행해야 했던 근대화 과정을 각각 ‘하청’과 ‘재하청’으로 명명하고 문명과 근대를 따라 하는 과정에서 탈각된 근대성의 여러 모습을 진단하고 있다.
Contents
머리말(이승환)
역사와 기억, 그리고 이데올로기 | 단군신화와 영원히 여성적인 것(도진순)
동양과 한국의 과학 전통 | 조선에서의 이질적 동서양 두 과학의 만남(문중양)
전통에 있어서의 학문 | 전통 시대 학문의 의미와 실천, 그리고 방법(심경호)
역사의 이념 | 동서양의 역사관(김기봉)
종교와 역사 | 오늘의 한국 종교(정진홍)
문명과 원시 | 하청 제국주의 틀 속의 문명과 원시ㅡ뒤엉킨 이중 나선(전경수)
주
참고 문헌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