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소재(?齋)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의 시문집이다. 노수신은 서예에 뛰어났으며 양명학(陽明學)에 조예가 있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회재 이언적은 바로 노수신의 스승인데 노수신의 대표적인 철학 저작인 〈인심도심변(人心道心辨)〉은 주희(朱熹)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에 대해 이견을 제시한 글로 주희의 학문적 입장을 적극 따르는 스승 이언적과는 묘한 대비를 보인다.
Contents
제5권
시詩
16일 밤에 탄식하며 시를 짓다 十六夜感嘆成詩|20일 밤에 두 분을 받들어 생각하다 二十夜奉懷二公|조가 곧 온다는 말을 듣다 聞趙且至|벽파진에서 두 사람과 만나서 석교의 시를 기억하여 차운하다|波津會二人記次石橋韻|13일에 벽파정에 이르러 사람을 기다리다 十三日到碧亭待人|지씨 노인의 귤정에서 술 마시며 동네 서생 홍이원에게 보이다 池老橘亭飮示洞生洪理元|준마를 꿈꾸다 夢驥|극포수에게 올리다.……홍, 한 두 군자에게 보이다|上極浦守……示洪韓二君子|5월 3일 고을 사람이 시냇가에서 나를 맞아 위로해 주었다 五月三日邑人邀勞溪上|조카의 연적에 대한 절구에 차운하다 次韻從子硯滴絶句|송면에서 松面|아버지께서 차운하라고 명하셨으므로 지어 올리다 家君命次韻製上|외삼촌의 시에 차운하다 次舅氏韻|오미자와 석청을 부쳐 준 제천 군수에게 사례하다 謝堤川宰寄五味子石淸|궂은비를 읊어 외삼촌께 받들어 올리다 苦雨奉呈舅氏|조카 지의 시에 차운하여 주다 次姪沚韻贈|용탄 선생의 묘를 배알하다 謁龍灘先生墓|허 영천에게 부쳐 주다 寄贈許永川|동쪽 언덕에 오르다 登東皐|은명을 받고 이배되어 우거하면서 예전 일에 느꺼워 감회를 적어 여섯 수를 지어서 헌가 성주의 안석 아래 받들어 올리고 화답하기를 요구하다 恩移寓居感舊書懷六首奉呈獻可城主?下乞和|오상인에게 주다. 상인이 스스로 마하연에 오래 머물렀다고 말하였다 贈悟上人上人自言久住摩訶衍|박의 운에 화답하여 이에게 주다 和朴韻贈李|용탄 선생의 운을 기억하여 화답해서 장극업에게 주다 記和龍灘先生韻贈張克業|철곡 鐵谷|김희의 시에 차운하다 次韻金禧|앞 시내에서 고기를 잡다 漁于前溪|진사 김우갑이 밤을 보내 주므로, 절구 한 수를 지어 사례하다 金進士友甲惠栗作一絶謝|9일에 비가 오므로 태수에게 두 수를 받들어 올리다 九日雨奉太守二首|태수의 문축 가운데서 서, 윤 두 분의 시에 차운하다 守文軸中次徐尹兩公韻|15일에 전적 정탁이 나를 방문하고자 했는데, 때마침 창병을 앓고 있었으므로 시로써 사절하다 十五日鄭典籍琢欲相訪時屬病瘡詩以謝之|앓고 난 뒤에 다시 두 편을 짓다 病後復題二篇|소오에 대한 만사 두 수를 짓다 挽蘇澳二首|김희의 시에 차운하다 次韻金禧|중양운을 사용하여 윤 사군에게 주다 用重陽韻贈尹使君|구 주서, 윤 태수와 더불어 마시다 與具注書尹太守飮|무회가 오는 도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송면의 운을 사용하다 得報無悔在道用松面韻|위의 송면 시에 차운하여 무회에게 보이다 次松面示無悔|송면으로 돌아가 홀로 자는데 강풍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쳤다 歸松面獨宿遇大風雨雪|아 자 운을 사용하다 用兒字韻|송면의 도중에 눈을 읊다 松面途中賦雪|10월 16일에 천둥이 쳤고, 29일에 천둥이 쳤고, 이달 5일에 또 천둥이 쳤다 十月旣望雷?九日雷今五日又雷|윤 태수를 받들어 모시다 奉待尹太守|김희를 불쌍히 여기며 예전의 운을 사용하다 悼金禧用舊韻|증산으로 가는 아우를 보내다 送舍弟至甑山|앞의 운을 사용하여 광주목에 부쳐 사례하다 用前韻附謝廣州牧|경상 감사 유에게 주다 贈慶尙監司柳|최 선위사의 행차에 12일에 발송한 무회의 서신을 얻었다 崔宣慰行得無悔十二日書|매를 잃었다 失鷹|노새를 장사 지내다 葬?|김 정언이 귤을 준 데 대하여 사례하고 겸하여 느낀 바를 쓰다 謝金正言贈橘兼書所感|승려 조담에게 주면서 예전의 운을 사용하다 贈僧祖淡用舊韻|탄금대에서 눌재의 운을 사용하여 두 수를 짓다 彈琴臺用訥齋韻二首|광주 목사에게 매를 요구하다 從廣使覓鷹|구을현에서 求乙峴|대곡 처사에게 주다 贈大谷處士|청천을 출발하다 發靑川|이십칠 일에 느낌이 있어 짓다 二十七日有感|제석 除夕|원조 元朝|진사 김우갑이 멀리서 사슴 고기를 보내 주었다 金進士友甲遠??肉|다시 김 정언에게 답하다 復答金正言|황제가 붕하다 皇帝崩|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마을 사람들이 달을 보고 점치느라 매우 떠들썩하다 上元夕隣里占月?甚|점필재의 〈공화어제망원정시〉에 추화하여 여덟 수를 짓다 追和?畢恭和御製望遠亭詩八首|김경로가 숙도와 중구가 인중에게 준 시를 전해 보여 주므로, 그 시에 우러러 차운하다 金慶老傳示叔道仲久贈仁仲詩仰次其韻|또 앞의 운을 사용하여 경로의 시자에게 주다 又用前韻贈慶老侍|뒤따라가 작별하면서 또 차운하다 追別又次韻|김경로의 시에 차운하다 次韻金慶老|이 승지의 부인에 대한 만사 李承旨夫人挽詞|봄날이 개다 春晴|김 정자에게 부치다. 이때 다리를 다쳤다는 말을 들었다 寄金正字時聞脚傷|탄금대에서 노닒을 가정하여 예전의 운을 사용하다 擬遊琴臺用舊韻|중간에게 주고 겸하여 한형에게 바치다 贈仲簡兼呈韓炯|박지저가 준 운을 사용하여 그에게 주다 用朴之樗贈韻贈之|강 감사에게 주다 贈姜監司|괴남 도중에 槐南道中|환희사에서 歡喜寺|일훈의 시축 가운데서 퇴계와 귀계의 시를 보고 그리워하며 그 시에 차운하다 一訓軸中懷退溪龜谿次其韻|법잠의 시권 속에서 귀암, 귀계의 시에 차운하다 法岑卷裏次龜巖龜谿韻|파계에서 ?溪|송면에서 예전의 시에 차운하다 松面次舊韻|차전에서 車前|도중에서 道中|대곡이 차운한 시에 다시 차운하다 復次大谷次韻|윤 군수가 어떤 이의 좋은 시를 외기에 마침내 그 시에 화답하다 尹守誦人好詩遂和之|시냇가에서 극심한 더위를 읊다 溪上苦熱|이순인의 시에 차운하다 次韻李純仁|진승이 제군의 시를 가지고 와서 화답하기를 독촉하였다 眞僧袖二三子詩督和|탑계에서 塔溪|현감 전순필과 탄금대에 오르다 與全舜弼宰登琴臺|다시 한 편을 짓다 復題一篇|서원사에게 사례하다 謝西原使|퇴계의 행차에 부치다 寄退溪行軒|퇴계에게 답한 시를 다시 부치다 復寄答退溪|주재 윤에게 주다 贈主宰尹|이튿날 또 만나다 翌日又會|천붕을 통도하다 慟天崩|용비를 보다 覩龍飛|박하와 작별하다 別朴夏|최형에게 시로써 사례하다 詩謝崔兄|공 광문이 세 가지 물품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시로써 사례하다 貢廣文餉以三物詩以謝之|허, 위 두 조사가 수양산을 지나면서 읊은 시와 학문을 논한 율시 두 수를 보고 느낌이 있어 마침내 차운하다 觀許魏過首陽及論學二律有感遂次|다시 차운하여 친구에게 보이다 復次韻示友|오조천에 대한 시를 얻고 차운하여 느낌을 쓰다 得吾助詩次韻書感|윤 태수의 자리에서 윤자온이 화답한 운에 화답하다 尹太守席和尹子溫所和韻|이흠재가 윤에게 부친 시에 화답하다 和李欽哉寄尹詩|아우 무회와 작별하다 別弟無悔|개향산 도중에서 읊다 開香道中|인중에게 준 시운을 사용하여 경회에게 주다 用贈仁仲韻贈景晦|취중에 다시 짓다 醉中復題|도중에서 읊다 道中|지비 고개에서 느낌이 있어 예전의 운을 사용하여 짓다 知非有感用舊韻|돌아가는 길에 지어서 두 아이에게 보이다 歸路作示二子|취중에 읊다 醉中|괴산의 윤재를 유별하다 留別槐山尹宰|시냇가에서 윤재의 시에 화답하다 溪上和尹宰|오극심의 시에 차운하다 次韻吳克諶|강 동자에게 주다 贈康童子|용안역관에서 판상의 시에 차운하다 用安驛館次板上韻|제천정에서 마중 나온 여러 친지에게 보이다 濟川亭示相?諸親|옥당에 부쳐 당직하면서 기 전한에게 주다 寓直玉堂贈奇典翰|봉은사에서 주지 신묵의 시에 차운하다 奉恩寺次韻住持信?|지진에게 주다 贈知眞|용인에서 차운하다 次韻龍仁|진위에서 차운하다 次韻振威|직산에서 차운하다 次韻稷山|홍양의 판상에 쓰인 조 태허공의 시에 차운하여 목백 충경에게 받들어 보이다 次洪陽板上曺太虛公韻奉示牧伯沖卿|취하여 충경에게 주다 醉贈沖卿|서원의 판상시에 차운하여 목백 흠재에게 받들어 올리다 次西原板上韻奉呈牧伯欽哉|피반대령에 오르다 登皮盤大嶺|회인의 판상시에 차운하다 次懷仁板上韻|대곡을 방문하여 술을 마시다 訪大谷飮|대곡의 시에 차운하여 취중에 초하다 次大谷韻醉草|현조 동지의 묘소를 배알하고 감탄하여 짓다 謁玄祖同知墓感歎有作|희정에게 주다 贈希正|앞의 운을 다시 사용하다 復用前韻|박이 나에게 열한 구를 주고 정이 화답하도록 강요하므로, 내가 취하여 첫머리와 맨 끝의 두 글자만 뽑아서 장난삼아 수답하다 朴贈予十一句正也强之和予醉摘首尾二字?酬|복성에게 주다 贈復誠|배를 타고 가서 형지와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그가 오지 않았다 舟行期泂之不至|신륵사 각 장로의 시축 가운데서 차운하다 神勒寺覺長老軸中次韻|감탄 感歎|한 사인에 대한 만사 두 장을 짓다 韓舍人挽詞二章|경사에 조회 가는 이 정을 보내면서 율시 두 수를 짓다 送李正朝京二律|민 의정에 대한 만사 閔議政挽詞|옥당에 우직하면서 두 노선생의 시를 보고 차운하여 소감을 부치다 寓直玉堂觀兩老先生詩次韻寓感|이 정에게 부쳐 작별하다 寄別李正|족친들이 모여 의정의 영정을 배알하고 집으로 옮겨 봉안하다 會謁議政影子移安于家|왕심리 친구의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취중에 독촉을 받고 차운하다 枉心里宿友家醉中見迫次韻|신씨정에서 무회 아우를 생각하다 愼氏亭懷無悔甫弟|여주 대수리에 가서 이 참판을 방문하고 그의 죽은 백씨를 생각하다 驪州大愁里訪李參判懷其亡伯|청심루에서 차운하다 淸心樓次韻|양근에서 느낌이 있어 판상의 기재의 시에 차운하다 楊根有感次板上企齋韻|용추의 절벽에 쓰다 題龍湫崖|문경에서 차운하여 감회를 쓰다 聞慶次韻書感|차운하다 次韻|퇴계에게 부쳐 올리다 寄上退溪|선외조고의 〈전중계축시〉에 차운하다 次韻先外祖考殿中契軸詩|월계의 배 안에서 月溪舟中|대탄에서 두 수를 읊다 大灘二首|갈산에서 자다 宿葛山|정강에서 井江|준암에서 박 목사의 시에 추화하다 ?巖追和朴使|청천에서 목사 이공에게 주다 靑川贈牧使李公|보은의 도중에서 읊다 報恩道次|경윤 유순중에게 부쳐 주다 寄贈慶尹柳純仲|방생이 내방하였으므로 부질없이 써서 주다 房生來訪?書爲贈|앞의 운을 사용하여 청주 목사에게 부치다 用前韻寄淸牧|도수 선생에게 수답하다 酬陶?先生|봉산서원에서 느낌이 있어 취중에 쓰다 鳳山書院有感醉筆|다시 차운하다 復次韻|근심 속에 앉아서 읊다 憂坐|노음산을 생각하다 懷露陰山|성덕에 관한 일을 기록하다 紀聖德事|정사의 ‘11월 초하루에 조서를 내려 의례를 마치고 기쁨을 기록하다.’라는 제목의 시에 차운하다 次正使暢月朔日宣詔禮成志喜韻|‘조서 선포의 예를 마치자 국왕이 만류하여 근정전에서 관대해 주었는데 문밖으로 전송 갈 때에 갠 하늘에서 갑자기 눈송이 두어 점이 날리다.’라는 제목의 시에 차운하다 次宣詔禮成國王留款勤政殿送出門外時晴空忽飛雪數點韻|정사의 ‘국왕이 경회루로 초치해 앉히고 인하여 시한을 요구하므로 이 시를 바치다.’라는 제목의 시에 차운하다 次正使國王邀坐慶會樓因索詩翰呈此韻|정사의 ‘사명을 받들고 조선에 온 지 3일 만에 선성의 문묘를 알현하고 명륜당으로 물러 나와서 제생들과 상견례를 갖고 이 시를 남겨 주었다. 홍산 선생의 운을 사용하였다.’라는 제목의 시에 차운하다 次正使奉使至朝鮮三日謁宣聖廟退於明倫堂與諸生相見留此用鴻山先生韻|정사의 ‘한강의 누각에 오르다.’라는 제목의 시에 차운하다 次正使登漢江韻|부족한 내가 칙사를 접반하게 되어……기록하여 경당대인께 바쳐서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鄙人獲?陪侍……錄呈敬堂大人斤正|부족한 내가 수일 동안 따라 노닐면서 등용문의 행운을 감당치 못했는데, 행차가 돌아가는 이때 이별의 슬픔이 갑자기 더해지므로 삼가 근체시 2수를 받들어 기록하여 금강대인께 바치면서 황공해하는 바이다 鄙人數日攀遊不勝登門之幸玆當回御別思遽劇謹奉近體二首錄呈錦江大人惶恐|정사가 동지일에 태평관에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 次正使至日太平館作韻|돌아가는 행차를 바라보면서 나의 진정을 문장에 드러내어 두 대인 선생에게 바치다 奉瞻行軒情見于辭呈兩大人先生|부사가 준 시에 차운하다 次副使贈韻|시약청에서 읊다 侍藥廳|처음으로 병환이 약간 차도가 있다는 말을 듣다 初聞少間|주찬을 하사하신 데 대하여 감격하여 울다 賜酒饌感泣|일재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다 聞一齋捐館|칠석에 괴로이 읊다 七夕苦吟|들리는 말이 있어 밤중에 울다가 새벽에 쓰다 有聞夜泣晨書|사실을 기록하다 紀事|일재 선생에 대한 만사 一齋先生挽詞|시약청에서 읊다 侍藥廳|절구 두 수를 읊다 兩絶|울면서 율시 두 수를 쓰다 泣書二律|스스로 애도하다 自悼|이 일 저 일을 섞어 기록하여 번민을 제거하다 雜書撥悶|주찬을 하사하다 賜酒饌|울면서 절구 세 수를 쓰다 泣書三絶|스스로 탄식하다 自歎|앞의 운을 거듭 쓰다 疊前韻|동지에 축수드리는 말 冬至祝言|주찬을 하사하여 나누어 주었다 賜酒饌分遺|여의가 왕후의 병세가 조금 우선해진 듯하다고 말하였다 女醫言內候似少解|재계만 하고 참사하지 않았다 齋不祭|울면서 40언을 쓰다 泣寫四十言|밤에 앉아서 회운을 거듭 사용하다 夜坐疊回韻|경 자 운을 거듭 사용하다 疊更韻|무제 亡題|사운을 입으로 불러 읊다 口占四韻|동사에 참배하고 어머니를 알현하다 參東祠謁北堂|직숙하면서 축수드리는 말 直宿祝言|상전께서 슬피 통곡하시었다 上殿哭之慟|상께서 삭훈을 명하였다 上命削勳
Author
노수신,임정기
1515년(중종10)∼1590년(선조23).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지노인(茹芝老人)이다. 장인인 이연경(李延慶)을 사사하였다. 1543년 문과 식년시에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홍문관 수찬·시강원 사서·병조 좌랑 등을 역임하였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순천(順天)으로 유배되고, 다시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진도(珍島)·괴산(槐山)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1567년에 선조가 즉위하자 홍문관 교리로 서용되었다. 이후 홍문관 부제학·충청도 관찰사·대사헌·이조 판서·문형 등을 역임하고, 1573년(선조6)에 우의정, 1578년에 좌의정을 거쳐 1585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1589년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시·문·서예에 뛰어났으며 양명학(陽明學)에 조예가 있었다. 승려 휴정(休靜)·선수(善修) 등과도 교유하였다. 저술로는 《소재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의(文懿)였으나 뒤에 문간(文簡)으로 고쳤다.
1515년(중종10)∼1590년(선조23).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지노인(茹芝老人)이다. 장인인 이연경(李延慶)을 사사하였다. 1543년 문과 식년시에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홍문관 수찬·시강원 사서·병조 좌랑 등을 역임하였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순천(順天)으로 유배되고, 다시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진도(珍島)·괴산(槐山)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1567년에 선조가 즉위하자 홍문관 교리로 서용되었다. 이후 홍문관 부제학·충청도 관찰사·대사헌·이조 판서·문형 등을 역임하고, 1573년(선조6)에 우의정, 1578년에 좌의정을 거쳐 1585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1589년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시·문·서예에 뛰어났으며 양명학(陽明學)에 조예가 있었다. 승려 휴정(休靜)·선수(善修) 등과도 교유하였다. 저술로는 《소재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의(文懿)였으나 뒤에 문간(文簡)으로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