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전문의로 50여 년간 4만 명 이상의 암 환자를 진료했다. 1948년생. 1973년에 게이오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976년부터 동 대학병원의 방사선과에서 근무하면서 1983~2014년에는 동 대학 의학부 강사로 활동했다.
게이오대학병원에서 ‘암 방치 요법’으로 40여 년간 암 환자를 돌봤으며, 2013년에 도쿄 시부야에 ‘곤도 마코토 암 연구소·세컨드 오피니언 외래’를 설립해 8년간 1만 건 이상의 상담에 응해왔다. 현재도 암 표준치료를 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암 표준치료를 거부한 채 암의 상태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진료하고, 암이 진행되는 과정을 관찰하며 그들이 여생을 편안히 보내도록 안내하고 있다.
1988년에는 게이오대학 전임강사의 신분으로 <유방암은 유방 절제를 하지 않고도 낫는다>를 문예춘추에 기고함으로써 일본에서 최초로 ‘유방 온존요법’을 주장했다. 2012년에는 유방 온존요법의 선구자로서 ‘암 수술의 위험성, 항암제의 독성 등의 암 표준치료(3대 암 치료)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고 계몽’한 공적을 인정받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화상 제60회 기쿠치칸상을 받았다.
곤도 마코토가 다른 의사들과 다른 점은 ‘암의 조기 발견, 조기 치료’는 암 사망률을 줄어들게 하지 못하며, 오히려 치료가 필요 없는 암까지 발견해 표준치료를 하게 함으로써 암이 더 날뛰게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점이다. 또한 최선의 암 치료 방법은 ‘암 방치 요법’임을 설파한다. 실제로 게이오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시절에도 암을 방치한 수백 명의 환자들을 돌봤으며, ‘암 방치 요법’으로 암 환자를 가장 길게는 24년간 정기적으로 진료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환자여, 암과 싸우지 마라》, 《암 방치 요법의 권유-환자 150명의 증언》, 《의사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47가지 마음가짐》 등 다수가 있다. 이 저서들은 모두 일본 내에서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으며, 특히 《의사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47가지 마음가짐》은 130만 부나 판매됐다.
암 전문의로 50여 년간 4만 명 이상의 암 환자를 진료했다. 1948년생. 1973년에 게이오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976년부터 동 대학병원의 방사선과에서 근무하면서 1983~2014년에는 동 대학 의학부 강사로 활동했다.
게이오대학병원에서 ‘암 방치 요법’으로 40여 년간 암 환자를 돌봤으며, 2013년에 도쿄 시부야에 ‘곤도 마코토 암 연구소·세컨드 오피니언 외래’를 설립해 8년간 1만 건 이상의 상담에 응해왔다. 현재도 암 표준치료를 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암 표준치료를 거부한 채 암의 상태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진료하고, 암이 진행되는 과정을 관찰하며 그들이 여생을 편안히 보내도록 안내하고 있다.
1988년에는 게이오대학 전임강사의 신분으로 <유방암은 유방 절제를 하지 않고도 낫는다>를 문예춘추에 기고함으로써 일본에서 최초로 ‘유방 온존요법’을 주장했다. 2012년에는 유방 온존요법의 선구자로서 ‘암 수술의 위험성, 항암제의 독성 등의 암 표준치료(3대 암 치료)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고 계몽’한 공적을 인정받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화상 제60회 기쿠치칸상을 받았다.
곤도 마코토가 다른 의사들과 다른 점은 ‘암의 조기 발견, 조기 치료’는 암 사망률을 줄어들게 하지 못하며, 오히려 치료가 필요 없는 암까지 발견해 표준치료를 하게 함으로써 암이 더 날뛰게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점이다. 또한 최선의 암 치료 방법은 ‘암 방치 요법’임을 설파한다. 실제로 게이오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시절에도 암을 방치한 수백 명의 환자들을 돌봤으며, ‘암 방치 요법’으로 암 환자를 가장 길게는 24년간 정기적으로 진료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환자여, 암과 싸우지 마라》, 《암 방치 요법의 권유-환자 150명의 증언》, 《의사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47가지 마음가짐》 등 다수가 있다. 이 저서들은 모두 일본 내에서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으며, 특히 《의사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47가지 마음가짐》은 130만 부나 판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