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사기 3

은본기·주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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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03/16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91196948238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오랜 연구 끝에 펴낸 『사기』 완역본이다. 본문뿐 아니라 대표주석서 3권까지 함께 번역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새로운 관점의 주석까지 추가하여 우리의 시각으로 중국사를 볼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총 40여 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은 은나라를 연구하는 전 세계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사마천은 은나라 시조 설의 어머니 간적이 현조가 떨어뜨린 알을 삼키고 설을 낳았다는 난생사화로 은본기를 시작했다. 동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난생사화는 동이족 건국사화이다. 간적은 제곡의 두 번째 비인데, 제곡은 동이족 소호의 손자다.

중국인들은 하남성 안양시에서 은허(殷墟)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지 하·은(夏殷)을 실존했던 국가로 여기지 않았다. 은허가 발굴된 이후부터 은나라를 국가로 여겼는데, 이는 중국 국가사의 시작이 동이족임을 뜻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하나라를 실존 국가로 만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역사공정을 계속하는 이유는 은나라를 중국사의 시작으로 설정해서는 하화족의 중국사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본기도 마찬가지다. 사마천은 주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 스스로 주 시조 후직의 어머니 강원이 제곡의 첫 번째 비라는 사실을 서술함으로써 주나라 또한 동이족의 국가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신주사기』는 그간 주나라를 서이(西夷)라고 부른 것은 은나라의 서쪽에 있었다는 뜻이며, 중국이라는 개념이 지금과 달리 주나라 수도 낙양과 그 북쪽 황하를 뜻하는 하락(河洛)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Contents
「은본기」

제1장. 은나라는 동이족 국가이다
은나라는 난생사화의 나라
탕임금의 덕
탕임금이 붕어했다

제2장. 은나라의 중흥과 쇠퇴
반경이 다시 중흥시키다
제신帝辛 주紂가 서다
무왕이 제주帝紂를 죽이다

「주본기」

제1장. 주나라가 일어서다
주의 시조 기棄는 소호의 증손
고공단보의 맏아들은 태백이다
무왕이 은殷을 정벌하다
주왕이 무왕과 싸우다
무왕이 병으로 죽다

제2장. 주나라가 쇠퇴하다
성왕이 죽고 강왕이 서다
목왕이 ‘보형甫刑’을 만들다
여왕이 체?로 달아나다
웃지 않는 포사

제3장. 동주와 서주가 나뉘다
제환공이 패자가 되다
동주와 서주로 나뉘다
동주와 서주가 충돌하다
동주, 서주가 진秦나라에 들어가다
Author
사마천,배인,사마정,장수절,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
사마천은 자가 자장子長으로서 하양(지금 섬서성 한성시) 출신이다. 한무제 때 태사공을 역임하다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을 당했다. 기전체 사서이자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집필해 역사서 저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후세 사람들이 태사공 또는 사천이라고 높여 불렀다. 《사기》는 한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중국민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삭제하거나 한족의 역사로 바꾸기도 했다.
사마천은 자가 자장子長으로서 하양(지금 섬서성 한성시) 출신이다. 한무제 때 태사공을 역임하다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을 당했다. 기전체 사서이자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집필해 역사서 저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후세 사람들이 태사공 또는 사천이라고 높여 불렀다. 《사기》는 한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중국민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삭제하거나 한족의 역사로 바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