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3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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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28834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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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03/20
Pages/Weight/Size 210*297*30mm
ISBN 9791128834578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진시황제는 법가 사상을 기초로 부국강병책을 시행해 춘추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진시황제도 반한 인물, 한비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사상가로 명성을 얻었다. 유가를 배척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한 다스림을 추구한 한비의 글을 엮은 『한비자』는 훗날 중국의 지도자들이 즐겨 읽고 통치에 활용한 책이다. 사상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가치가 있다.

* 『한비자』 전체 55편을 1∼3권으로 나누어 출간했다. 그중 1권은 1편부터 29편을, 2권은 30편부터 35편을, 3권은 36편부터 55편을 수록했다.
Contents
제36편 난일(難一)-옛 이야기를 반박함 일 727
제37편 난이(難二)-옛 이야기를 반박함 이 759
제38편 난삼(難三)-옛 이야기를 반박함 삼 783
제39편 난사(難四)-옛 이야기를 반박함 사 815
제40편 난세(難勢)-권세를 밝힘 835
제41편 문변(問辯)-변론을 묻고 답함 847
제42편 문전(問田)-전구(田鳩)에게 물음 853
제43편 정법(定法)-법으로 제정함 859
제44편 설의(說疑)-신하들의 간교한 행위를 설명함 869
제45편 궤사(詭使)-법치의 원칙에 어긋남 891
제46편 육반(六反)-거꾸로 된 여섯 가지 현상 903
제47편 팔설(八說)-나라를 어지럽히는 여덟 가지 언행 921
제48편 팔경(八經)-나라를 다스리는 여덟 가지 법도 937
제49편 오두(五?)-나라에 해를 끼치는 다섯 가지 좀 961
제50편 현학(顯學)-유가와 묵가를 비판함 991
제51편 충효(忠孝)-선왕들의 충효를 비판함 1011
제52편 인주(人主)-군주가 해야 할 일 1023
제53편 칙령(飭令)-명령을 바르게 함 1031
제54편 심도(心度)-민심과 법도 1039
제55편 제분(制分)-상과 벌의 경계를 구분함 1047

해설 1055
지은이에 대해 1071
옮긴이에 대해 1073
Author
한비,권용호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으로 기원전 약 280년경 태어나 233년 세상을 떠났다. 원래 이름은 ‘한비’로 그의 이름을 높여 부른 것이 ‘한비자’이다. 그는 한나라 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후궁이었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고 말을 잘 꾸미지 못했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써 중국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이름난 사상가가 되었다. 그의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한 나라의 어려운 처지 안에서 발전했다. 약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오직 엄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나라의 힘을 한 길로 동원함으로써 부강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글은 한나라의 군주에게는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진왕만은 한비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시황이 진왕이던 시절,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는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한을 공격하여 실제로 한비자를 만난 진왕은 자신의 통일 대업에 한비자의 도움을 얻고 싶어 했으나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러다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이사의 모함을 받자 마음이 돌아서 한비자에게 사약을 보내고 만다.
사마천은 한비자의 죽음을 두고 “세난(說難, 유세와 설득의 어려움) 같은 훌륭한 글을 썼으면서도 자신은 그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죽였으나 진시황이 된 뒤 한비자의 법술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천하 통치의 이론적인 버팀목으로 활용했다.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으로 기원전 약 280년경 태어나 233년 세상을 떠났다. 원래 이름은 ‘한비’로 그의 이름을 높여 부른 것이 ‘한비자’이다. 그는 한나라 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후궁이었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고 말을 잘 꾸미지 못했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써 중국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이름난 사상가가 되었다. 그의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한 나라의 어려운 처지 안에서 발전했다. 약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오직 엄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나라의 힘을 한 길로 동원함으로써 부강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글은 한나라의 군주에게는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진왕만은 한비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시황이 진왕이던 시절,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는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한을 공격하여 실제로 한비자를 만난 진왕은 자신의 통일 대업에 한비자의 도움을 얻고 싶어 했으나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러다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이사의 모함을 받자 마음이 돌아서 한비자에게 사약을 보내고 만다.
사마천은 한비자의 죽음을 두고 “세난(說難, 유세와 설득의 어려움) 같은 훌륭한 글을 썼으면서도 자신은 그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죽였으나 진시황이 된 뒤 한비자의 법술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천하 통치의 이론적인 버팀목으로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