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3

Les Ess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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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6/24
Pages/Weight/Size 150*223*36mm
ISBN 9788937472268
Categories 에세이
Description
10년의 번역, 5년의 검수, 국내 초역 후 반세기 만에 탄생한 완역본!
시시각각 변하는 ‘나, 미셸’을 드러내고 증언하는 초상화 같은 글

“이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종류의 책으로, 외골수의 황당무계한 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1571년 법관직을 사직한 뒤 몽테뉴 성으로 은퇴한 몽테뉴는 1592년 죽을 때까지 이십여 년간 107편의 짧고 긴 에세들을 집필했으며, 글쓰기를 시작한 지 칠 년째 되던 해에 그간에 쓴 글들을 묶어 ‘에세(Les Essais, 에세들)’라는 제목으로 초판을 출간하며 새로운 글쓰기 형식의 탄생을 알렸다. 에세(essai)는 ‘시험하다’, ‘경험하다’, ‘처음 해 보다’ 등을 뜻하는 동사 ‘에세이예(essayer)’에서 몽테뉴가 만들어 낸 명사로, 이 특별한 글쓰기 형식인 에세에서 영어로 통용되는 글쓰기 형식인 ‘에세이’가 탄생했다.

사건이 아니라 생각을 기술하는 몽테뉴의 에세들은 107가지의 다양한 제목 아래 인간사를 만드는 온갖 정념과 인간 세상의 오만 양상을 펜 끝에 소환하여, 마치 법정에서처럼 그의 정신과 마음, 영혼 안에서 서로 반박하거나 거들며 ‘나, 미셸’을 드러내고 증언하고 만들어 간다. 조상들이 정성을 쏟은 몽테뉴 성을 개축하고 고대인과 인문주의자들이 선망하던 ‘사색적 삶’을 살아보고자 은퇴한 몽테뉴는 ‘자기만의 방’에서 정신적 위기를 맞았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정신의 움직임을 글로 기록하기로 한다. 그의 글쓰기는 자기 정신을 관찰하고 제어하여, 자신의 본래 성정과 반대되는 우울에서 벗어나고, 그리하여 스스로 자기 정신의 고삐를 쥔 자가 되기 위한 ‘자기 탐구’의 방편이었다. 몽테뉴는 의문을 자극하거나 마음을 사로잡는 주제가 떠오르면 서적에서건 풍문에서건, 역사적 사실이나 일상 이야기에서건 그 에피소드와 관련한 예화들을 나열하고 대비하며, 서로 상충하고 모순되는 사례들이 만들어 내는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가 처음 자기 안에서 발견한 것은 그 혼란스런 정신 이외에는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기 탐구의 과정을 통해 몽테뉴는 자기 안에서 인간 정신의 잡다함과 유동성을, 인간 감각과 이성의 허술함과 편파성을 발견하고, 그 한계를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인식한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 je?)’
Contents
1장 실리와 도리에 관하여 [011]
2장 후회에 관하여 [037]
3장 세 가지 사귐에 관하여 [060]
4장 기분 전환에 관하여 [080]
5장 베르길리우스의 시 몇 구절에 관하여 [099]
6장 수레에 관하여 [211]
7장 권세의 불편함에 관하여 [241]
8장 대화의 기술에 관하여 [250]
9장 헛됨에 관하여 [294]
10장 자기 의지를 조절하는 것에 관하여 [399]
11장 절름발이에 관하여 [439]
12장 외모에 관하여 [459]
13장 경험에 관하여 [511]

부록: 몽테뉴의 서재와 천장의 금언 [609]
몽테뉴 연보 [636]
Author
미셸 드 몽테뉴,최권행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최고의 교양인, 사상가, 철학자, 때로는 정치인으로 부각되기도 하는 몽테뉴. 그러나 곧 덧붙여 말해야 한다. 그는 당대 인문학자들과 달리 라틴어가 아닌 속어(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나아가 장바닥의 생생한 말로만 쓰고 싶다고 한 교양인이요, 어려운 개념도 체계도 교화적 목적도 없이, 누구나 부딪히는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인간적이고 온당한 답, 주어진 삶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사는 길을 찾고자 하는 보통 사람의 “자기 탐구”로 사상가, 철학자가 된 최초의 사람이다. 내란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중재자로, 보르도의 시장으로 일했지만, 공적 생활에 염증을 느껴 서른여덟 살에 은퇴하여 ‘자기만의 방’으로 물러났고, 왕이 하사하는 은전을 거절하고, 억지로 시장직을 맡았으며, 사적 삶의 문제로도 벅찬 사람으로서, 공적인 일에 ‘손’과 ‘어깨’까지는 빌려줄 수 있어도 그 일을 ‘간과 폐’에 담지는 않겠다고 공언한 사람이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면서, 유대인 핍박과 신대륙에서 저지른 유럽인들의 잔인한 행위를 큰 소리로 비판한 유일한 문인이요, 농부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얻은 사람, 그가 읽고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여기 20여 년 동안 써 내려간 『에세』에서 그의 시대만큼 혼란스런 시대를 사는 21세기 독자에게 들려준다.

1533년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 성(현재의 생 미셸 드 몽테뉴 마을)에서 태어났다. 6세가 되어 보르도에 있는 귀엔 학교에 입학해 고전 공부에 열중했으며 13세에 전 과정을 마쳤다. 16세부터 툴루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해 1557년에 보르도 고등법원 심사관이 되었고 1568년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의 영주가 되었다. 1570년 법관생활에서 은퇴했는데, 은퇴 후에 신·구파의 종교전쟁에 휩쓸렸다. 프랑스의 광신적인 종교 시민전쟁 와중에 종교에 대한 관용을 지지했고 인간 중심의 도덕을 제창했으며 그러한 견해를 알리기 위해 ‘엣세essai’라는 독특한 문학 형식을 만들어냈다. 1580년 그간 써둔 수필을 간추려 『인생 에세이』(2권)를 보르도에서 간행했고, 신장결석 치료를 겸해 유럽 관광길에 올라 1년 넘게 외국에서 보냈다. 이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1774년 『여행기』를 집필했다. 1586년 몽테뉴 성으로 돌아가 『수상록』에 증보와 수정을 가하고 그 뒤에도 집필을 계속해 1588년 3권 107장에 이르는 『수상록』 신판을 간행했다. 『수상록』은 1676~1854년 성서를 인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티칸 금서 목록에 올랐으나 몽테뉴는 평생 온건한 가톨릭 신자였다. 1592년 59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최고의 교양인, 사상가, 철학자, 때로는 정치인으로 부각되기도 하는 몽테뉴. 그러나 곧 덧붙여 말해야 한다. 그는 당대 인문학자들과 달리 라틴어가 아닌 속어(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나아가 장바닥의 생생한 말로만 쓰고 싶다고 한 교양인이요, 어려운 개념도 체계도 교화적 목적도 없이, 누구나 부딪히는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인간적이고 온당한 답, 주어진 삶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사는 길을 찾고자 하는 보통 사람의 “자기 탐구”로 사상가, 철학자가 된 최초의 사람이다. 내란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중재자로, 보르도의 시장으로 일했지만, 공적 생활에 염증을 느껴 서른여덟 살에 은퇴하여 ‘자기만의 방’으로 물러났고, 왕이 하사하는 은전을 거절하고, 억지로 시장직을 맡았으며, 사적 삶의 문제로도 벅찬 사람으로서, 공적인 일에 ‘손’과 ‘어깨’까지는 빌려줄 수 있어도 그 일을 ‘간과 폐’에 담지는 않겠다고 공언한 사람이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면서, 유대인 핍박과 신대륙에서 저지른 유럽인들의 잔인한 행위를 큰 소리로 비판한 유일한 문인이요, 농부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얻은 사람, 그가 읽고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여기 20여 년 동안 써 내려간 『에세』에서 그의 시대만큼 혼란스런 시대를 사는 21세기 독자에게 들려준다.

1533년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 성(현재의 생 미셸 드 몽테뉴 마을)에서 태어났다. 6세가 되어 보르도에 있는 귀엔 학교에 입학해 고전 공부에 열중했으며 13세에 전 과정을 마쳤다. 16세부터 툴루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해 1557년에 보르도 고등법원 심사관이 되었고 1568년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의 영주가 되었다. 1570년 법관생활에서 은퇴했는데, 은퇴 후에 신·구파의 종교전쟁에 휩쓸렸다. 프랑스의 광신적인 종교 시민전쟁 와중에 종교에 대한 관용을 지지했고 인간 중심의 도덕을 제창했으며 그러한 견해를 알리기 위해 ‘엣세essai’라는 독특한 문학 형식을 만들어냈다. 1580년 그간 써둔 수필을 간추려 『인생 에세이』(2권)를 보르도에서 간행했고, 신장결석 치료를 겸해 유럽 관광길에 올라 1년 넘게 외국에서 보냈다. 이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1774년 『여행기』를 집필했다. 1586년 몽테뉴 성으로 돌아가 『수상록』에 증보와 수정을 가하고 그 뒤에도 집필을 계속해 1588년 3권 107장에 이르는 『수상록』 신판을 간행했다. 『수상록』은 1676~1854년 성서를 인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티칸 금서 목록에 올랐으나 몽테뉴는 평생 온건한 가톨릭 신자였다. 1592년 59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