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초기작인 《슬픈 빌라》는 “잡히지 않는 인간의 운명을 환기시키는 기억의 예술”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작품이다.
스스로를 ‘빅토르 슈마라 백작’이라고 칭하는 무국적자인 ‘나’. 《슬픈 빌라》는 주인공인 ‘나’가 십여 년 전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영화배우를 꿈꾸는 이본느라는 여인,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자신을 파괴하는 의사 맹트,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데서 오는 불안에 시달리는 나 자신이 있다.
무국적자이면서 이름조차 확실치 않은 한 남자가 십여 년 전의 방황과 혼란의 한 시절을 되돌아보는 이 소설의 중심부에는 모디아노가 평생에 걸쳐 천착해온 기억과 정체성,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슬픈 빌라》는 모디아노가 작가 초반의 모색기를 거쳐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거장으로서의 전성기로 접어들기 직전의 긴장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독자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으로 대표되는 생의 근원적인 모호함을 신비로운 언어로 탐색해온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다. 1945년 프랑스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이탈리아계 유대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해 1968년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1972년 발표한 세번째 작품 『외곽도로』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거머쥐었고, 연이어 1975년에는 『슬픈 빌라』로 리브레리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78년 발표한 여섯번째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1984년과 2000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해 각각 프랭스 피에르 드 모나코상,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 문학 대상을 받았다. 또한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모디아노는 데뷔 이후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아왔으며, 그의 작품 중 『슬픈 빌라』 『청춘시절』『8월의 일요일들』 『잃어버린 대학』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른 주요작으로 『도라 브루더』(1997), 『신원 미상 여자』(1999), 『작은 보석』(2001), 『한밤의 사고』(2003), 『혈통』(2005)이 있다.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그의 소설은 항상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과거의 애틋한 흔적을 되살리는 데 바쳐진다. 아울러 유대인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애증으로 그의 소설은 유대인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추적과 기록의 면모를 보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