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롯데장학재단의 후원을 받아 세계 최초로 사마천의 사기 본문 및 삼가주석을 모두 번역하고 새 관점의 주석을 다는 사기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이제 그 세 번째인 『신주 사마천 사기 세가(전9권)』이 완간되었다. 2020년 3월 『신주 사마천 사기 본기(전9권)』, 2021년 4월 『신주 사마천 사기 표·서(전7권)』에 이은 세 번째 출간이다. 이후 『신주 사마천 사기 열전(15권)』이 출간되면 역사적인 『신주 사마천 사기(전40권)』 출간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에서 출간된 『사기』 번역 및 주석본 중 가장 방대한 저작물이다. 일본은 물론 중화민국(대만)과 중국도 『사기』 3가주석까지 백화문(현대문)으로 완간하지는 못했다.
『신주 사마천 사기 본기』에서는 사마천이 왜 중국인들이 시조로 여기는 삼황(三皇)을 삭제하고, 오제(五帝)를 중국사의 시조로 삼았는지 최초로 밝혀내었다. 사마천은 오제의 첫 제왕인 황제(黃帝)를 중국사의 시조로 삼았지만 그 맏아들 소호 김천씨가 동이족인데서, 그 부친 황제도 동이족임을 밝혀내어 중국사의 시작이 동이족임을 밝혀냈다. 또한 중국 고대사의 시작으로 삼는 하·은·주(夏殷周)의 시조들도 모두 동이족임을 밝혀내었다. 이는 다름 아닌 사마천의 『사기』와 3가주석에 담긴 내용들을 가지고 밝혀낸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이는 중국이 국가차원에서 진행하는 여러 역사관련 국가공정들이 도로로 그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주 사마천 표·서』에서는 일반 독자들은 물론 『사기』 전문가들도 쉽게 해득하기 어려웠던 〈표(表)〉를 완벽하게 번역하고, 그 틀린 부분까지 대부분 잡아냈다. 아마도 이 〈표〉 이상의 〈표〉는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나오기 어려우리라고 자부한다. 또한 〈서〉도 역대의 해석에 우리의 관점을 담은 신주를 달아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신주 사마천 사기 본기(전9권)』가 『사기』 시리즈의 서론이고, 『신주 사마천 사기 표·서(전7권)』가 전문 분야의 집대성이라면 이번에 새로 출간한 『신주 사마천 사기 세가(전9권)』는 격동의 역사에서 명멸하는 각 나라와 그 군주들의 운명이 담긴 본론이라고 볼 수 있다. 반고는 『한서』에서 〈세가〉 자체를 없애 버리고 〈열전〉만 설정했다. 사마천은 제후들의 사적인 〈세가〉를 따로 설정했지만 반고는 한나라에는 황제 한 사람만이 군주이고 나머지는 모두 신하라는 사상에서 〈세가〉를 설정했다. 어떤 측면에서 〈세가〉는 『사기』 전체 부분에서 가장 드라마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ontents
머리말 사기 「세가」에 관하여 - 7p
정세가 (사기 제42권)
들어가기 - 16p
1장. 동쪽으로 나라를 옮기다 - 19p
2장. 장공과 그의 아들들 - 30p
3장. 진나라와 초나라의 틈바구니 - 53p
4장. 마지막 불꽃 자산 - 77p
지도
지도1 : 정세가 - 102p
조세가 (사기 제43권)
들어가기 - 106p
1장. 창성하는 조씨 - 110p
2장. 간자와 양자 - 139p
3장. 삼진의 맹주 타툼 - 178p
4장. 강대국을 만든 무령왕 - 208p
5장. 굶어죽은 무령왕 - 245p
6장. 전국시대의 소용돌이 - 257p
7장. 참패한 장평대전 - 292p
8장. 마지막 저항 - 307p
지도
지도2 : 조세가 - 327p
찾아보기 - 328p
Author
사마천,배인,사마전,장수천,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
사마천은 자가 자장子長으로서 하양(지금 섬서성 한성시) 출신이다. 한무제 때 태사공을 역임하다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을 당했다. 기전체 사서이자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집필해 역사서 저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후세 사람들이 태사공 또는 사천이라고 높여 불렀다. 《사기》는 한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중국민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삭제하거나 한족의 역사로 바꾸기도 했다.
사마천은 자가 자장子長으로서 하양(지금 섬서성 한성시) 출신이다. 한무제 때 태사공을 역임하다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을 당했다. 기전체 사서이자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집필해 역사서 저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후세 사람들이 태사공 또는 사천이라고 높여 불렀다. 《사기》는 한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중국민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삭제하거나 한족의 역사로 바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