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상서고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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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03/31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91162471722
Categories 인문 > 한국철학
Description
이 책들은 다산이 유배지에서 지은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과 『상서고훈수략』을 통합 발전시켜 돌아가기 1년 전인 1835년에 완성한 『상서고훈』을 국내 최초로 번역한 책이다. 이 상서고훈?을 바탕으로 매색의 위서를 답습한 공영달 등의 상서정의(尙書正義)와 채침의 서집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펴서 1811년에 완성한 책이 상서지원록19이다.

놀랍게도 다산은 출간된 지 백여 년도 넘은 염약거의 획시대적 거작 상서고문소증을 보지 못했고, 거듭 놀라운 것은 염약거와 거의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에 돌아온 뒤, 다산은 홍석주(洪奭周)와 홍현주(洪顯周) 형제의 호의로 염약거의 상서고문소증을 볼 수 있게 되었고, ‘폐문조거(閉門造車) 출이합철(出而合轍)’의 놀라움을 느낀 동시에 정보의 부족으로 헛수고를 했음에 실망하고 오랜 공을 들인 이 책을 폐기 처분하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염씨의 책에도 미진한 곳이 적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다시 붓을 들어 적거(謫居) 시기의 ‘상서 3부작’을 바탕으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저작 『상서고훈』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Contents
實學飜譯叢書를 펴내며
『다산 정약용의 상서고훈』전5권 총목차
일러두기

『상서고훈』권1
01. 요전 상 堯典上

『상서고훈』권2
02. 요전 하 堯典下
03. 고요모 陶謨

부록 1: 상서의 傳本
부록 2: 경학가 일람
Author
정약용,실시학사 경학연구회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