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바르와 페퀴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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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59318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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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01/06
Pages/Weight/Size 128*205*20mm
ISBN 9791159318887
Categories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Description
두 친구를 통해 본
인간의 지성에 대한 풍자와 해학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플로베르는 평생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주제에 사로잡혔는데, 소설 속의 사랑을 동경하다가 타락하는 여인을 그린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이나 개인이나 집단, 사랑, 혁명의 실패를 다룬 『감정 교육L’Education sentimentale』(1845) 등 그의 대표작 역시 이 주제의 변주로 볼 수 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플로베르의 모든 경험, 그리고 인간과 인간사의 모든 일에 대한 판단이 집약된 방대한 통합체로 평가받고 있다. 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덤벼드는 두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엉뚱한 소동을 유쾌하게 그려내며 인간의 어리석음과 과학에 대한 환상을 꼬집는다. 희화화된 인물과 심미적인 주제, 순환구조가 반복되는 형식으로 구축한 독특한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Contents
부바르와 페퀴셰 2
작가 인터뷰
작가 연보

*《부바르와 페퀴셰 1》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Author
귀스타브 플로베르,진인혜
노르망디의 중심 도시 루앙에서 1821년 12월 12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루앙 시립병원의 외과부장이고 어머니는 노르망디 태생이다. 아버지가 외과 의사였던 사실은 그가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고 세밀하고 객관적인 관찰을 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열다섯 살 여름휴가 때 트루빌에서 만난 젊고 아름다운 엘리자 슐레징거 부인에게 격렬하고도 신비스러운 애정을 기울인다. 『감정교육』(1869)에서 마리 아르누 부인의 윤곽이 슐레징거 부인의 모습을 통하여 표현되어 있다.

1840년에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파리의 법과대학에 등록하지만, 『감정교육』 초고 집필 중이던 1843년 10월에 신경병 발작 이후 법학을 그만두고 문학에만 몰두한다. 이 무렵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는다. 이후 플로베르의 인생은 여행과 친구들(특히 시인 루이 부예)이 중심이 된다. 그 무렵 ‘뮤즈’라고 불리던 여류 시인 루이즈 콜레와의 관능적 연애도 경험한다.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는 당시 플로베르가 쓰고 있던 작품이나 문학에 관한 생각들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다.

1851년 이집트 여행에서 돌아와 『마담 보바리』 집필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1857년 1월에 기소되어 경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시인 라마르틴이 변호 서한을 보내주었고 2월 7일에 무죄판결이 났다. 이듬해는 소설 『살람보』를 준비하기 위해서 튀니지를 여행한다. 1862년에는 『살람보』가 미셸 레비 서점에서 출판되어 성공을 거둔다.

5년의 시간을 바쳐 1869년에 『감정교육』을 탈고했으나, 평이 별로 좋지 않아 실망하게 된다. 그해에는 친구 부예와 동료 생트뵈브를 잃고 신경병이 재발했다. 1870년에는 쥘 공쿠르를, 1872년에는 어머니를, 1876년에는 조르주 상드를 잃었다. 만년은 『성 앙투안의 유혹』(1874) 등이 호평을 얻지 못하여 낙담했으나 『세 가지 이야기』(1877)가 좋은 평을 받았다.

또한 그가 대부가 된 모파상의 성공은 침체되어 있던 그의 만년에 생기를 주었다. 1880년 5월 8일, 뇌출혈로 급사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미완성작으로 사후에 출판(1881)되었다. 한편 아홉 권에 이르는 『서간집』은 비평가들에게 최대의 걸작으로 간주된다.
노르망디의 중심 도시 루앙에서 1821년 12월 12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루앙 시립병원의 외과부장이고 어머니는 노르망디 태생이다. 아버지가 외과 의사였던 사실은 그가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고 세밀하고 객관적인 관찰을 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열다섯 살 여름휴가 때 트루빌에서 만난 젊고 아름다운 엘리자 슐레징거 부인에게 격렬하고도 신비스러운 애정을 기울인다. 『감정교육』(1869)에서 마리 아르누 부인의 윤곽이 슐레징거 부인의 모습을 통하여 표현되어 있다.

1840년에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파리의 법과대학에 등록하지만, 『감정교육』 초고 집필 중이던 1843년 10월에 신경병 발작 이후 법학을 그만두고 문학에만 몰두한다. 이 무렵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는다. 이후 플로베르의 인생은 여행과 친구들(특히 시인 루이 부예)이 중심이 된다. 그 무렵 ‘뮤즈’라고 불리던 여류 시인 루이즈 콜레와의 관능적 연애도 경험한다.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는 당시 플로베르가 쓰고 있던 작품이나 문학에 관한 생각들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다.

1851년 이집트 여행에서 돌아와 『마담 보바리』 집필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1857년 1월에 기소되어 경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시인 라마르틴이 변호 서한을 보내주었고 2월 7일에 무죄판결이 났다. 이듬해는 소설 『살람보』를 준비하기 위해서 튀니지를 여행한다. 1862년에는 『살람보』가 미셸 레비 서점에서 출판되어 성공을 거둔다.

5년의 시간을 바쳐 1869년에 『감정교육』을 탈고했으나, 평이 별로 좋지 않아 실망하게 된다. 그해에는 친구 부예와 동료 생트뵈브를 잃고 신경병이 재발했다. 1870년에는 쥘 공쿠르를, 1872년에는 어머니를, 1876년에는 조르주 상드를 잃었다. 만년은 『성 앙투안의 유혹』(1874) 등이 호평을 얻지 못하여 낙담했으나 『세 가지 이야기』(1877)가 좋은 평을 받았다.

또한 그가 대부가 된 모파상의 성공은 침체되어 있던 그의 만년에 생기를 주었다. 1880년 5월 8일, 뇌출혈로 급사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미완성작으로 사후에 출판(1881)되었다. 한편 아홉 권에 이르는 『서간집』은 비평가들에게 최대의 걸작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