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로 전집 2

남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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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10/07
Pages/Weight/Size 153*224*60mm
ISBN 9791159054174
Categories 인문 > 기호학/언어학
Description
영화 [말모이]의 실제 주인공,이극로를 아시나요?

2019년 1월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 분)과 판수(유해진 분) 등이 모여 『조선말 큰사전』을 만들었던 일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이었던 이는 이극로로 현재까지 그 행적을 온전히 알기 어려운 비운의 한글학자이다.

『이극로 전집』은 ‘全集’이라는 이름에 맞게 이극로의 행적과 그가 남긴 글들을 총망라했다. 이 전집은 I-유럽 편에서 IV-북한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는 3편의 글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이극로 작성의 모든 글, 이극로와 관계된 사료들을 모두 엮었다. 각 권에는 영인 및 사진 사료들을 풍부하게 제시해 연구자들의 후속연구에 이용하도록 했다. 가령 『이극로 전집』 I-유럽 편에서는 이극로의 독일 유학 시절의 행적을 엿볼 수 있는 학적 자료나 박사논문 등을 영인과 번역문, 원문 등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글은 당시 표기 및 조판을 최대한 살려 편자의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도록 했다.

『이극로 전집』 II-남한 편의 핵심은 이극로의 국어학 관계 자료 집대성에 있다. 책의 제1부는 단행본으로 그가 출간했던 『한얼노래』, 『실험도해 조선어 음성학』, 『국어학논총』을 영인으로 실었다. 제2부 제1장은 한글 관계 논설로 국어사, 음운론, 문법론, 방언학, 고전문학, 국어정책론과 국어교육론 등 그가 연구한 한글 관련 자료를 모두 제시함으로써 이극로를 종합적이고 다채로운 연구자로서 재조명하고자 했다. 제2부 제2장에서는 기타 논설들로 연구자 이극로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뿐 아니라 해방 후 새로운 나라의 탄생에 일조하고자 했던 정책가로서의 면모 또한 살필 수 있다. 단행본 『한얼노래』에서 알 수 있듯 이극로는 단군계 종교인 대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한얼노래』와 제4부 시가에서는 그가 작사한 [한얼노래]들과 [한글노래]를 살펴볼 수 있다.
Contents
제1부_ 단행본

제1장_ 한얼노래(神歌)
제2장_ 實驗圖解 朝鮮語 音聲學
제3장_ 國語學論叢

제2부_ 기고글

제1장_ 한글 관계 논설
제1절_ 국어사
朝鮮民族과 한글
조선어학회의 발전
한글 發達에 對한 回顧와 및 新展望-確乎한 그의 進展을 必期함(上)
한글 發達에 對한 回顧와 및 新展望-確乎한 그의 進展을 必期함(下)
言語의 起源說
(朝鮮學界總動員 夏期特別論文(16)) 한글發達史
한글날을 맞으며
한글에 바친 一生-桓山, 曉蒼을 悼함
朝鮮語學會의 苦鬪史
한글 頒布 五百周年 記念日을 마즈며
이미 세상을 떠난 朝鮮語學者들
어문운동의 회고

제2절_ 음운론
한글整理는 어떻게 할가(十三)-斯界專門家의 意見
조선말소리갈(朝鮮語音聲學)
말소리는 어디서 어떠케 나는가
조선말의 홋소리(朝鮮語의 單音)
소리들이 만나면 어찌 되나-音의 互相關係
二講-조선말소리(朝鮮語聲音)
한글 바루 쓰고 바루 읽는 법(一)
한글 바루 쓰고 바루 읽는 법(二)
한글 바루 쓰고 바루 읽는 법(三)
한글 바루 쓰고 바루 읽는 법(四)
한글 바루 쓰고 바루 읽는 법(五)
한글 바루 쓰고 바루 읽는 법(完)
課外講義(二) 한글通俗講座
課外講義(三) 한글通俗講座
한글 바루 아는 법
한글 바루 아는 법(二)
한글 바루 아는 법(三)

제3절_ 문법론
課外講義(四) 한글通俗講座
課外講義(五) 한글通俗講座

제4절_ 방언학
조선말의 사투리
質疑應答

제5절 고전문학
訓民正音과 龍飛御天歌
(讀書餘響-新秋燈下에 읽히고 싶은 書籍) 龍歌와 松江歌辭
語學的으로 본 「林巨正」은 鮮語鑛區의 노다지

제6절_ 국어정책론
九萬語彙로 完成된 朝鮮語大辭典 登?, 개성 리상춘씨의 칠년 로력, 修正만 하여 印刷한다
朝鮮語辭典과 朝鮮人
(한글硏究家 諸氏의 感想과 提議-사백여든넷재돌을 맞으며) 知識과 物質로 援助하라
標準文法과 標準辭典
外來語의 淨化
讀者 여러분? 보내는 名士 諸氏의 年頭感-年賀狀 代身으로 原稿着順
(日集-時人時話) 朝鮮語辭典編纂
交叉點
(한글綴字에 대한 新異論 檢討) 後日에 嚴正批判
『한글』使用의 正確은 民族的 重大責任, 文筆從仕者 講習會을 大大的 計劃
朝鮮語辭典編纂에 對하야
內容發表는 保留, 신중한 태도로 하겟다는 朝鮮語學會 李克魯氏 談
最終的 一致는 무엇보다 깃분 일
(새 철자법 사용에 대한 각게 인사의 감상과 히망) 철자법 채용엔 물론 찬성입니다
朝鮮語辭典編纂에 對하여
(社會人이 본 朝鮮言論界) 朝鮮新聞雜誌 長點短點
(한글날 第四百八十八回) 한글綴字法統一案 普及에 對하야
한글마춤법통일안解說-第五章·第六章·第七章·附錄
한글運動
朴勝彬氏에게, 合作交涉의 顚末
朝鮮語文整理運動의 今後
朝鮮語文整理運動의 今後計劃
辭典 編纂이 웨 어려운가?
한글 所感
朝鮮語文整理運動의 現狀
“文筆方面에서 먼저 活用하기를”, 大任을 完成한 後에 李克魯氏 談
한글 統一運動의 社會的 意義
(한글記念四百九十週年) 標準語 發表에 際하야
外國辭典 못지 안케 內容의 充實을……, 朝鮮語學會 李克魯氏 談
標準語와 辭典
完成途程의 朝鮮語辭典(上)
完成途程의 朝鮮語辭典
朝鮮語技術問題座談?
(越圈批判(3)) 朝鮮의 文學者일진댄 朝鮮말을 알라
辭典 註解難
바른 글과 바른 말을 쓰라
한글 바루 아는 법(完)-第三章 받침 알아보는 法과 새받침 一覽
語文整理와 出版業
地下의 周時經氏 기뻐하겟지요-朝鮮語學會 李克魯氏 談
한글은 한 時間에
(朝鮮語辭典 完成段階에! 一部, 出版許可申請)“하루라도 빨리”, 語學會 李克魯氏 談
大方의 批判을, 朝鮮語學會 李克魯氏 談

제7절 국어교육론
朝鮮語 敎育 廢止에 대한 감상
(共學制와 各界輿論(三)) 共學制度가 實施되면 朝鮮말은 업서진다
建國과 文化提言-朝鮮文化와 한글(上)
今後의 義務敎育-朝鮮文化와 한글(下)
朝鮮語學會의 任務
한자 폐지에 대하여
(한글) 머리ㅅ말
專門學校의 國語 入學試驗에 對하여
漢字 廢止의 可否

제2장_ 기타 논설/설문·좌담/수필
제1절_ 일제강점기
(소년에 대한 바람) 極端으로 하라
自作自給의 本義
(新春 멧세이지) 有形財産과 無形財産
헤매기 쉬운 갈림길
(우리가 가질 結婚禮式에 對한 名士의 意見-各界 名士의 意見) 壯嚴한 古典的 儀式
自作自給
生産과 愛用의 調和
科學的 管理法과 勞?能率(一)
學校選擇體驗談 先輩諸氏
科學的 管理法과 勞?能率(三)
科學的 管理法과 勞?能率(四)
科學的 管理法과 勞?能率(五)
(朝鮮人의 經濟的 活路) 一鬪一得主義로 不斷努力 農業을 爲主로 商工業을 倂進
小作制度改善에 對한 諸氏의 意見!!
(歡樂境인 카페-와 카페-出入의 學生問題) 學生들의 「카페-」 出入을 社會的 制裁로 斷絶케
1932年 紀念塔
잊을 수 없는 어머니 말씀
(朝鮮經濟樹立에는 重工? 重商? 重農?) 千年古土를 固守함에 意義가 잇다
(迷信打破策具體案) 몬저 民智를 열어야
地球는 人類文化의 公園
送舊迎新의 感懷
新春移動座談會 우리의 病根打診(二)-安逸病
(家庭으로부터 出發할 우리의 新生活運動(其三) 結婚披露宴의 是非, 인습과 페풍을 버리고 실질 잇는 생활로) 일생 一차의 경사 형편대로 질길 것
絶對로 必要한 것
社會科學振興에 對한 諸大家의 高見
我觀 「蔣介石, 간듸, 트로츠키」
短彩錄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의 抱負
(나의 스승-各界 諸氏의 스승 禮讚記) 剛毅의 人, 尹檀崖 先生
西間島 時代의 申采浩先生
學生들은 어떠한 書籍과 雜志가 必要한가?
나의 警句
(어린이 相互間에 敬語를 쓸가) 너무 形式的이 된다
戀愛·結婚·新婚
仁川 海水浴行
잊이 못할 그 山과 그 江
知名人士의 避暑플랜
잘 때에는 전등을 끄라
가을의 探勝處
혼례식은 구식, 다시 차질 민요와 가사, 버릴 것은 경제적 페해 잇는 것
文化問答
趣味問答
渡世問答
生活問答
유모아問答
心境設問
유모어設問
讀書設問
人生設問
空想設問
生活設問
演藝設問
유모-어設問
旅行設問
(종아리 맞은 이야기) 문쥐노름한다고
鄕愁設問
日記設問
유모어設問
(새少年讀本-다섯째課) 제자리
(나의 一年總決算) 나는 언제나 成功뿐
나의 十年計劃
(生活의 文化化, 科學化, 經濟化) 舊慣陋習打破-社會各界人士의 高見
舊慣陋習打破(中)-各界人士의 高見
舊慣陋習打破(下)-各界人士의 高見
(꿈의 巡禮) 아부지 棺 앞에서, 그러나 깨니 一場春夢
(制服을 벗는 智識女性에게-社會 各方面 先輩들의 懇篤한 訓托) 家庭으로 드러가는 女性들에게
資源으로 開發되는 金剛山-金剛山을 資源으로 開發해도 좋은가
(나의 困境時代의 안해를 말함) 金비녀 金반지가 流質이 돼도
設問
(나 사는 곳) 꽃농사를 짓는 북바위 동네
講演(?六日後八,??)-씨름이야기
(一家言) 씨름의 ?育的 價値
新年의 願望
(朝鮮固有運動競技의 現代化·大衆化-各界 人士의 提言?) 音樂의 協調가 必要
나의 趣味·娛樂 淨化策(四)
名士漫問漫答
(나의 苦學時代) 인단장수·머슴살이
(아까운 동무들 어쩌다 그렇게 되었나?) 엿장수가 되고 농부가 되고
名士漫問漫答
飮食道德
(시방 생각해도 미안한 일) 때린 아이 집에 불을 놓으려고
(나의 主張) 행복된 가정
(中等學校 入學難과 그 對策) 根本策과 臨時策
結婚當日의 感激-誓約文을 交換하던 날
(나는 무엇이 되려고 했나) 放浪客
(座談會) 朝鮮飮食에 對하야
葉書回答-近日の 感激
(各界人士들의 賢答-나의 生活哲學) 學術硏究機關
학생에게 조흔 숙소를 주자! 학생과 숙소문제 좌담회
(年頭頌) 緊張한 生活
우리 家庭 카-드
나의 二十歲 靑年時代(二) 西間道에서 赤手로! 上海 가서 大學에 入學, 三錢짜리 勞?宿泊所의 身勢로, 스믈時節을 말하는 李克魯氏
世界大戰은 어떻게 되나-名家諸氏의 興味있는 諸觀測(六月十日 回答 全部 到着分)
斷想
文化の自由性
我觀『近衛首相』
我觀『히틀러總統』
奢侈品禁止令과 時局下生活刷新-名士의 葉書回答
京城改造案
交通道德
公衆道德
說問
(鄕土藝術과 農村娛樂의 振興策) 씨름은 體育的 藝術
善惡의 觀念
朝鮮住宅問題座談
나의 資源愛護
(結婚을 勸하는 書(上)) 독신은 국책위반-국가의 번영을 위하야 적령기를 노치지 말자

제2절_ 광복 이후
(새 朝鮮 當面의 重大課題-偉大한 建國은 敎育에서) 言語 ?나 敎育 업다, 兒童에겐 國語부터-初等部=李克魯氏 談
쓰는 것과 呼稱을 統一, 二重式 서울市名의 矛盾 업세라-朝鮮語學會 李克魯氏 談
(여성에게 보내는 말) 어머니의 責務
그날의 表情
國民大會와 無關, 李克魯博士 聲明
(죽엄으로 信託統治에 抗拒하자-各界人士들의 抗議) 다만 血戰主義로. 손을 맞잡고 民族統一, 李克魯氏 談
(信託統治反對特輯) 4千年의 歷史가 있다
士道三素
藝術과 道德
敎育의 機會均等要求, 民族의 한 權利다
民衆의 소리를 들으라! 獨立 아니어든 죽음으로, 피로써 擊碎
(새조선의 문화는 어?케-獨自的의 「얼」을 찻자) 國民의 質的向上-國語, 李克魯氏 談
國家·民族·生活·言語
(庭訓巡禮) 우리 집의 庭訓, 朝鮮語學會 李克魯氏 宅
卑俗한 洋風逐出, 朝鮮語學會 李克魯氏 談
文化統一에 支障, 朝鮮語學會 李克魯氏 談
(美蘇 援助 업시 獨立 不能, 兩國 輿論 能動的으로 誘導하자) 續開될 줄 민는다, 朝鮮語學會 李克魯氏
全的 廢止 要望 朝鮮健民會 李克魯氏談
그들만의 것, 朝鮮健民會 李克魯氏 談
民主主義 精神에 矛盾, 朝鮮語學會長 李克魯氏 談
歷史的 事實로 보아 自主獨立할 能力잇다, 朝鮮語學會 李克魯氏 聲名
(먼저 政府를 세우자, 비록 記念塔이 億千이라도 無用) 八·一五記念行事에 擧族的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開學期를 압두고 浮浸하는 國大案) 人民의 反對, 李克魯氏 談
左右合作原則批判…諸氏-設問
左右合作은 可能한가?
前進하는 民族
民族 將來를 爲하야
三頭政治論
美蘇共委 促開와 나의 提言(五) 急務는 障壁撤廢, 民族叛逆者排除도 絶對條件
(要路者에게 보내는 忠告의 말슴) 政治道德 높이고 三頭政治로 臨政 세우라-朝鮮健民會 李克魯氏 談
(民族的 大反省과 奮鬪) 爲公忘私로서 經國의 道를 踐實, 李克魯氏 談
設問
航海大王 「申性模」
民族將來를 憂慮, 李克魯氏 談
『人道와 正義를 確信』, 金元鳳氏 等 軍裁에 李克魯氏 談
非公開裁判은 不當, 朝鮮健民會 李克魯氏 談
共委續開와 左右輿論
美蘇公約을 實踐, 美쏘共委 促成, 李克魯 談
故 李允宰氏 長男 等 極刑求刑, 李克로博士 特別辯論
反託 除外는 當然, 健民會 李克魯氏 談
(幽靈反託團體除外, 本報 設問에 中間及右側主張) 反託鬪委系列 除外, 健民會 李克魯氏 談
合委와 共協意見, 團體整理當然, 共協主席 李克魯博士 談
單政은 亡國을 意味, 美蘇共委는 期必코 成功, 愛國者 投獄·親日派執權은 곧 顚覆, 來釜한 李克魯氏 記者에 所信披瀝
朝鮮國民運動의 理念과 靑年運動의 指針(一) 健民主義
民聯 發足에 關하야, 宣傳局長 李克魯氏 談
(祖國의 運命은 어데로, 朝鮮問題의 兩個提案, 各界輿論은 이다) 南北會合同時 撤兵하라, 民聯 李克魯氏
兩軍撤兵을 要求, 單政前提의 總選擧는 反對, 民聯 李克魯氏 談
軍政의 延長建議는 浪說, 民聯 李克魯氏 談話
軍政延長建議, 虛說에 不過하다, 李克魯博士 談
統一 願하는 政黨과 協力, 民聯 宣傳局長 記者團會見 談
敎育朝鮮建設論
듼 長官 歡迎談話-愛國者 登用하라, 民聯 李克魯博士
時局과 나의 提案, 撤兵期日 明示한 印度 提案을 歡迎, 健民會 委員長 李克魯
UN決定檢討는 當然, 民聯宣傳局長 李克魯氏 談
南北統一 不可能이라 假測키 싫다, 民聯 李克魯氏 談
約憲保留에 贊意, 民聯 宣傳局長 談
單政陰謀粉碎하자, 當面問題 民聯 宣傳局長 談
UN決議協調, 民聯 宣傳局 談
統一政府樹立 主張, 民聯 談話
(韓國民主黨 政治部長 張德秀氏 怪漢에 被殺) 民聯 李克魯氏 談
南北統一을 積極的 推進, 民聯 宣傳局長 談
(送舊迎新의 ?(下)) 混亂의 敎訓
民聯의 新路線, 李克魯 代辨人 談
(UN委員?을 마지면서 그들에 보내는 朝鮮人民의 소리) 現狀調査에 不過, 民聯 李克魯 博士
統一없이는 獨立없다, 民族自主聯盟 談話를 發表
事大思想 버리고 統一戰線 배풀자, 民聯 宣傳局長 談話
外軍駐屯不願, 健民會委員長 談
(三一節에 생각나는 愛國者들) 義兵의 李大將 正義感과 血鬪精神, 李克魯氏 談
設問
恨嘆調와 打罵의 말, 朝鮮語學會 李克魯氏 談
(金九主席召喚과 輿論!) 미들 수 업다, 李克魯氏 談
南北統一政府 위해 온 겨레가 밀고 나가자, 朝鮮語學會 理事·健民會 ?長 李克魯博士 談
同族相殘招來, 寒心할 일이다, 李克魯氏 談
日本 再建과 民族의 進路
自主獨立을 위하여 분투하자
金九氏 等 主席團에, 南北連席會議에 李克魯氏 祝辭
自主統一에 邁進, 朝鮮民族의 政治理念確固, 李克魯氏 熱叫
李克魯氏 祝辭
朝鮮 民族性과 民主政治
나의 獄中回想記

제3장_ 여행기
(本號特輯-神域三千里八道名山巡禮) 白頭山
滿洲王 張學良氏 會見記
(風雲 中의 巨物들) 總司令 張學良 會見-一年前의 回想
白頭山 곰 산양
諸氏冒險談
내가 좋아하는 山水
白頭山印象
(名士들의 感化集) 死線突破의 最後一線
(이긴 이야기) 빈주먹 하나로 도적을 쫓아
(死線을 넘어선 그 時節) 馬賊에게 死刑宣告를 當한 瞬間-白頭山에서 산양하다 부뜰리어
(一生에 잊지 못하는 感激의 이야기) 金剛勝景의 土窟
(三一運動의 追憶) 上海에서 留學生總務로
마리산에 올라서

제4장_ 시가
朝鮮硏武?歌
한얼노래
한글노래
한글노래
한글노래
漢陽의 가을
獄中吟-咸興監獄에서
한글노래
한글노래
丁亥 除夕詩
한글노래

제5장_ 편지와 엽서, 명함
日本 京都 金泰鳳 수신 편지
(경남 의령) 정세 수신 편지
申性模 수신 편지
義本淨世(이정세) 수신 편지
朝鮮國內事情報告書
朝鮮健民會 명함
제6장_ 서문/서평/성명서/축사
(本社 新社屋 落成式과 各界祝辭) 過去蓄積된 經驗의 産物
(紙面 ?張에 ?한 各界 讚?) 刮目할 躍進
(第三回 全朝鮮 男女專門學校 卒業生 大懇親會 後記-開會辭와 來賓祝辭) 祝辭
(本社社屋新築落成及創刊滿四週年記念-各界名士의 祝辭) 높은 새집 빛이로다
(學海) 머리말
(紙齡百號突破에 際하여 各界名士의 祝辭) 날래게 달리시라
(날아다니는 사람들) 머리말
[부록] 노양근, 오세억-이숙모 부부 사진
千이란 數字는 意義가 深重
新刊評-李熙昇 近著 『歷代朝鮮文學精華』
INTRODUCTION
나의 履歷書-半生記
(新世紀에 보내는 말) 일하면 기쁨이 있다
(大倧敎報) 祝辭
(卒業生에게 붙이는 말) 굳건한 信念을 가지도록 합시다
널리 펴는 말
(本紙 創刊과 各界의 聲援) 公正한 言論 期待
(本誌 創刊과 各界의 激勵) 民族의 伴侶가 되라
(婦人) (祝辭)婦人의 燈臺가 되라
한얼의 첫걸음을 축복하며
(朝鮮健民會) 綱領及規約
(朝鮮健民會) 聲明書
朝鮮健民會의 理念
無限한 實力의 培養
大倧敎報의 續刊에 對하야
(원본훈민정음풀이) 머리말
(古文新?) 머리말
(兒童敎育) 祝辭
(時調譯本) 머리말
(東亞情報) 揮毫
(新刊評) 읽고 느낌
(世界偉人 世界富豪 成功實記) 머리말

제3부_ 기타 자료(타인글)

[鄭元澤] 정원택 1913년 일지
遠足會
[李相龍] 辛酉年 一月二十四日
獨逸哲學博士=李克魯氏 歸國
獨逸哲學博士 李克魯氏 歸鄕
朝鮮最初의 經濟學博士, 재작년 이월에 백림대학 졸업, 錦衣還鄕한 李克魯氏
李博士歡迎會 扶餘 水北亭서, 本報支局 發起로
[李晟煥] 東京에서 申性模氏를 만나고
讀書顧問
[一記者] 朝鮮語辭典編纂會 訪問記
在滿同胞慰問次, 李克魯氏 今日 出發
李克魯博士 歡迎會를 開催
[李秉岐] 이병기 1929·1930년 일기
[李秉岐] 이병기 1931∼1933·1935·1949년 일기
[編輯部] 萬華鏡
[編輯部] 街頭에서 본 人物(3)-李克魯氏
[金泰鳳] 물불 克魯氏 말
[一記者] 朝鮮物産?勵會 主催의 朝鮮經濟振興策 座談會記
[編輯部] 第六官-紳士들의 體育熱
李克魯
[多言生] 秘中?話-百人百話集
[編輯部] 萬華鏡-李博士의 ㅺㅏㄱ둑이 罰
[編輯部] 各界人物漫畵展
[金恭淳] (設問) 夫君을 처음 뵈였을 때
[이근정] (글월) 이극로 박사에게
[楊相殷] 正音紀念日에 對하야-李克魯氏의 錯覺을 警함
[尹檀崖] (私信公開) 李克魯氏에게(1935.12.18)
[一記者] 玉에서 틔 골르기 縷心刻骨半生獻身, 한글標準語査定에는 으뜸 되는 殊勳者 朝鮮語辭典編纂에 血汗勞心
[編輯部] (家庭太平記) 한글을 硏究하시는 李克魯氏 家庭-妻子를 위해서는 犧牲치 않겠다고 宣言
[崔鉉培] 朝鮮語辭典完成論-各國辭典編纂엔 國家援助가 莫大?
[一記者] 한글學者 李克魯氏 住宅, 石造山과 蓮못과 花壇 닭소리조차 閑暇한 田園味!
國防獻金·慰問金
[記者] (우리 團?의 新年計劃) 한글運動과 朝鮮語辭典-朝鮮語學會의 飛躍的 事業
[K記者] 朝鮮語辭典編纂과 그 經過報告書
[韓洛奎] 李克魯 先生의 講演-『科學化한 朝鮮語文의 ㅽㅏㄹ리 아는 法』을 듣고서
[一記者] 동키호-테, 朝鮮의 騎士 李克魯氏, 悠然見南山, 世界遍歷 奇談도 가지가지
[南水月] 路傍人物評-李克魯
朝鮮文人協會創立-朝鮮文人協會 發起人氏名
[沙雲山人] 長安名士訪問印象記-朝鮮語學界의 先驅者 李克魯
[金恭淳] 令夫人層 藝術 愛玩記
[金恭淳] 李克魯氏-孤高한 學者生活, 靑春과 戀愛도 모르시는 듯
[金恭淳] 脫線된 매무새
[金恭淳] (나의 初産記) 냉면 食傷
[金恭淳] 우리집의 새生活
二千萬이 愛國戰士로 銃後奉公을 義勇化, 臨戰對策協議會서 實踐決議
二千萬 總力의 愛國運動 實踐에 歷史的 發足 昨日, 빗나는 臨戰報國團 結成
[高等法院刑事部] 李克魯 外 3人 高等法院 判決文
[金鍾範·金東雲] 李克魯氏
한글普及講演, 李博士 嶺南巡廻
大倧敎 第七回 總本司職員會(1946.3.26)
大倧敎 第十回 總本司職員會(1946.4.11)
大倧敎 倧理硏究室 會議(1946.4.6) 참석 기록
敎諭 第四三號-倧理硏究室 職員 發佈(1946.4.8)
[유열] 고루 이극로 박사를 모시고
朝鮮健民會 發足 李克魯氏 等 中心 昨日 結成
[大倧敎倧經倧史編修委員會] 國學講座
[金丞植] 政界要人錄-李克魯
[CIC生] 人物短評 【第十二回】 朝鮮語學會會長 李克魯論
新刊紹介-苦鬪四十年(李克魯 著)
[金丞植] 政界人名錄-李克魯
[조선어학회 편집부] 회원소식·광고
李克魯氏 平壤着
洪命熹氏와 李克魯氏 殘留
[李耘虛] 回顧錄
[李仁] 『半世紀의 證言』(발췌)
[정인승] 국어운동 50년-朝鮮語學會시절⑤
[金永韶] 李克魯先生 회고
[공병우] 공 안과에 찾아온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
[박지홍] 고루 이극로 박사의 교훈(발췌)
Author
이극로,조준희
호는 물불·고루·동정, 독일명은 Kolu Li. 경남 의령 출신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마산 창신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일제강점 후 도만하여 환인현 동창학교와 무송현 백산학교 교사를 지내고 상하이 동제대학을 졸업했다. 1922년 독일 베를린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지금의 훔볼트대학)에 입학해 1927년 「중국의 생사공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벨기에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영국·프랑스·미국·일본을 시찰한 뒤 귀국해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지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경에 붙잡혀 6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조선말 큰사전』 첫째 권을 간행하고서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조선건민회 대표로 참석, 평양에 잔류해 북한 국어학의 토대를 닦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묘소는 평양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에 『한국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침략정책』(독일어), 『한국, 그리고 일제에 맞선 독립투쟁』(독일어), 『고투사십년』, 『조선어음성학』, 『국어학논총』, 『조선어 조 연구』가 있다.
호는 물불·고루·동정, 독일명은 Kolu Li. 경남 의령 출신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마산 창신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일제강점 후 도만하여 환인현 동창학교와 무송현 백산학교 교사를 지내고 상하이 동제대학을 졸업했다. 1922년 독일 베를린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지금의 훔볼트대학)에 입학해 1927년 「중국의 생사공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벨기에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영국·프랑스·미국·일본을 시찰한 뒤 귀국해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지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경에 붙잡혀 6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조선말 큰사전』 첫째 권을 간행하고서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조선건민회 대표로 참석, 평양에 잔류해 북한 국어학의 토대를 닦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묘소는 평양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에 『한국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침략정책』(독일어), 『한국, 그리고 일제에 맞선 독립투쟁』(독일어), 『고투사십년』, 『조선어음성학』, 『국어학논총』, 『조선어 조 연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