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의 이름은 이오(夷吾)이고, 자는 중(仲)이며, 시호는 경(敬)이다. 그의 생애는 『춘추좌씨전』, 『국어』, 『사기』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관안열전(管晏列傳)」 및 『관자』의 「대광(大匡)」, 「중광(中匡)」, 「소광(小匡)」 등에 실린 자료들을 통해 고찰할 수 있다. 젊은 시절에 포숙아와 의기투합하여 친하게 교제를 맺고, 그의 만년에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자는 포자(鮑子)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관중이 살던 시대는 봉건제로 대표되는 주(周)나라 초기의 문물과 제도가 붕괴되어 가던 난세로서 새로운 질서의 정립이 시급한 때였다. 관중은 국가 질서의 유지에서 도덕보다는 경제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면모를 보였다. 『관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자주 인용되는, “곡식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입고 먹는 게 풍족하면 영광과 욕됨을 안다.”는 바로 그의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Contents
東洋古典譯註叢書를 발간하면서
凡 例
管子 6卷
제16편 법으로 법을 행하다 法法 외언7 外言 七 / 11
제17편 군대를 다스리는 방법 兵法 외언8 外言 八 / 44
管子 7卷
제18편 왕의 잘못을 바로잡다(1) 大匡 내언1 內言 一 / 60
管子 8卷
제19편 왕의 잘못을 바로잡다(2) 中匡 내언2 內言 二 / 115
제20편 왕의 잘못을 바로잡다(3) 小匡 내언3 內言 三 / 125
제21편 왕언[王言] 내언4 內言 四(결락) / 184
管子 9卷
제22편 패도 정치에 대한 형세 ?形 내언5 內言 五 / 185
제23편 패도 정치에 대한 말씀 ?言 내언6 內言 六 / 198
제24편 자세히 살피고 묻다 問 내언7 內言 七 / 225
제25편 모실 謀失 내언8 內言 八(결락) / 249
관중 (管仲, 기원전 725년-645년). 삼국시대의 제갈량은 포의지사布衣之士로 있을 때 자신을 춘추시대 중엽 제환공을 도와 사상 최초로 패업?業을 이룬 관중에 비유한 바 있다. 관중은 포숙아와 더불어 관포지교管鮑之交 고사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문화대혁명 당시 4인방四人幇이 관중을 법가사상의 효시로 칭송했으나 관중은 법가뿐만 아니라 유가와 도가, 병가 등 제자백가의 효시에 해당한다. 그는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사상가에 해당한다. 공자가 제자들 앞에서 관중을 수시로 언급하며 그가 이룬 업적을 최고의 인仁으로 풀이한 게 그렇다. 아편전쟁 이후 청조와 조선조의 패망은 『관자』의 키워드인 경세제민經世濟民과 부국강병富國强兵 이치를 폐기한 후과로 볼 수 있다. 청조 말기에 내로라하는 유학자들이 뒤늦게 『관자』의 주석 작업에 매달렸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관중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최하층으로 분류된 상업을 농업만큼 중시하는 농상병중農商竝重을 천명한 최초의 인물이다.
관중 (管仲, 기원전 725년-645년). 삼국시대의 제갈량은 포의지사布衣之士로 있을 때 자신을 춘추시대 중엽 제환공을 도와 사상 최초로 패업?業을 이룬 관중에 비유한 바 있다. 관중은 포숙아와 더불어 관포지교管鮑之交 고사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문화대혁명 당시 4인방四人幇이 관중을 법가사상의 효시로 칭송했으나 관중은 법가뿐만 아니라 유가와 도가, 병가 등 제자백가의 효시에 해당한다. 그는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사상가에 해당한다. 공자가 제자들 앞에서 관중을 수시로 언급하며 그가 이룬 업적을 최고의 인仁으로 풀이한 게 그렇다. 아편전쟁 이후 청조와 조선조의 패망은 『관자』의 키워드인 경세제민經世濟民과 부국강병富國强兵 이치를 폐기한 후과로 볼 수 있다. 청조 말기에 내로라하는 유학자들이 뒤늦게 『관자』의 주석 작업에 매달렸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관중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최하층으로 분류된 상업을 농업만큼 중시하는 농상병중農商竝重을 천명한 최초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