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墨子는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로 약육강식의 혼란기를 종식하고 민중의 삶을 구제하기 위해 겸애兼愛와 절용節用, 비공非攻 등을 강조하였다. 한비자韓非子는 묵가墨家를 유가儒家와 더불어 당대 2대 현학顯學으로 꼽았으며 장자莊子는 그들이 진정으로 천하를 사랑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묵자와 묵자 학파인 묵가墨家의 사상을 모은 책이 『묵자墨子』다.
예악禮樂을 중시했던 유가儒家와 달리, 묵가墨家는 재화를 절약하고(‘절용節用’), 장례를 소박하게 치루고(‘절장節葬’), 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음악을 삼갈 것(‘비악非樂’)을 주장했다. 그리고 친소親疏의 정도에 따라 친애하는 바도 달리할 것을 주장한 유가와 달리, 묵가는 차별 없이 모두 사랑할 것(‘겸애兼愛’)을 역설하였다. 차별 없이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말라고 하였으며(‘비공非攻’)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력 강화를 도모하였다. 민생의 안정을 위해서는 국정 개혁이 필수였기 때문에, 이를 위해 묵자는 공정한 인재 선발 제도를 확립할 것(‘상현尙賢’)과 하늘의 뜻(‘천지天志’)인 ‘의義’에 입각하여 국론을 통일할 것(‘상동尙同’)을 요구하였다. 이처럼 민중의 삶을 중시하였으며, 또 그를 저해하는 지배층의 사치와 침략전쟁을 비판하였던 묵자의 사상은 당대에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공묵孔墨’, ‘유묵儒墨’ 등 유가와 병칭될 정도의 위세를 자랑하던 묵가는 전국시대의 종말과 함께 급격히 쇠퇴하였다. 한漢나라에 이르러 유교가 국교로 확립되자 묵자는 급속히 자취를 감추었고, 관념적인 현학玄學이 성행하던 위진魏晉 시기에 이르면 묵가墨家는 지성계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Contents
東洋古典譯註叢書를 발간하면서
凡 例
參考書目
尙同 下 第十三 제13편 윗사람에 동조함 하 / 19
兼愛 上 第十四 제14편 아울러 사랑하라 상 / 52
兼愛 中 第十五 제15편 아울러 사랑하라 중 / 63
兼愛 下 第十六 제16편 아울러 사랑하라 하 / 110
非攻 上 第十七 제17편 攻戰을 비판하다 상 / 166
非攻 中 第十八 제18편 攻戰을 비판하다 중 / 174
非攻 下 第十九 제19편 攻戰을 비판하다 하 / 212
節用 上 第二十 제20편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다 상 / 279
節用 中 第二十一 제21편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다 중 / 293
節用 下 第二十二 闕 제22편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다 하 결락 / 312
節葬 上 第二十三 闕 제23편 葬禮를 절제하다 상 결락 / 312
節葬 中 第二十四 闕 제24편 葬禮를 절제하다 중 결락 / 312
節葬 下 第二十五 제25편 葬禮를 절제하다 하 / 313
天志 上 第二十六 제26편 하늘의 뜻 상 / 396
天志 中 第二十七 제27편 하늘의 뜻 중 /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