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고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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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12/31
Pages/Weight/Size 153*224*35mm
ISBN 9791155503638
Categories 인문 > 한국철학
Description
『풍고집(楓皐集)』은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문집이다. 1854년에 16권 8책의 정리자(整理字) 활자로 간행하였다. 최고급 지질에 정교한 장황(裝潢), 단정하고 균형 잡힌 활자 인쇄 등 책 자체로서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그뿐 아니라 책머리에는 철종(哲宗)의 어제(御製) 서문을 얹었고, 책 뒤에는 정원용(鄭元容), 김흥근(金興根), 조두순(趙斗淳) 3인이 지은 발문을 실었다. 하나같이 영의정을 지낸 당대의 저명한 명사이자 권력자이다. 설령 뛰어난 문인이었다고 해도 저와 같은 호화찬란한 문집을 가지는 영광을 누릴 수 없다. 정조 사망 이후 60년 안동김씨 세도정치(世道政治)의 기반을 닦은 권력자이자 문인인 김조순의 대단한 위상을 문집 자체가 보여준다.

이 책은 김조순이 사망하고 20년이 지난 뒤에 간행되었다. 1854년 8월에 조카 김흥근(金興根)은 발문에서 책을 간행하게 된 경위를 밝히고 있다. 맏아들인 김유근(金?根, 1785~1840)이 김조순의 사망 이후에 저술을 문체별로 편집하였고, 김유근이 미처 간행하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자 그 편집본을 저본으로 삼아 셋째 아들 김좌근(金左根)이 간행하였다고 밝혔다. 사망 직후에 문집이 서둘러 출간되지 못한 이유는 김유근이 1840년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때문이나 그렇다고 해도 십여 년이나 늦게 책을 간행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 책은 문집 편찬 관례를 따라 편집되어 서문과 문집 본문, 마지막에 발문을 수록하는 편제로 되어 있다. 문집의 본문은 시집을 앞세워서 1권부터 6권까지 실었고, 이후 7권부터 16권까지는 문장을 수록하였다. 시에서는 시체(詩體)별로 따로 구분하여 수록하지 않았으나 문장에서는 세부 문체로 따로 나누어서 수록하였다.
Contents
일러두기

풍고집 제3권
시詩

풍고집 제4권
시詩
Author
김조순,이성민,김채식
1765(영조41)~1832(순조32).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으로, 부친은 부사를 지낸 김이중(金履中)이다. 21세 때인 1785년(정조9)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조로부터 조순(祖淳)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1786년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뽑혔다. 1792년(정조16)에 담정(?庭) 김려(金?)와 함께 《우초신지(虞初新志)》를 모방하여 《우초속지(虞初續志)》를 만들었다. 이해 10월에 동지겸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연행하였으며, 패관소설의 탐독으로 문체가 바르지 못하다는 정조의 견책을 받고 연행 도중 자송문(自訟文)을 지어 올렸다. 1800년(정조24) 6월 정조가 승하한 뒤 정조의 시책문(諡冊文)을 지어 올렸다. 병조?예조?이조의 판서를 거친 뒤 1802년(순조2)에 문형이 되었으며, 이해 9월에 딸이 순조의 비(妃)가 되자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에 봉해졌다. 1804년(순조4) 무렵 삼청동(三淸洞)에 별장인 옥호정(玉壺亭)을 조성하였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많은 문인들과 시회를 펼쳤다. 이후 훈련대장과 금위대장을 역임하였고, 1826년(순조26)에 다시 문형이 되었다. 1832년(순조32) 4월 3일 세상을 떠나 여주(驪州) 효자리(孝子里)에 묻혔으며, 1841년(헌종7)에 이천(利川) 가좌동(加佐洞)으로 이장되었다.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과 여주의 현암서원(玄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풍고집》이 있다.
1765(영조41)~1832(순조32).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으로, 부친은 부사를 지낸 김이중(金履中)이다. 21세 때인 1785년(정조9)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조로부터 조순(祖淳)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1786년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뽑혔다. 1792년(정조16)에 담정(?庭) 김려(金?)와 함께 《우초신지(虞初新志)》를 모방하여 《우초속지(虞初續志)》를 만들었다. 이해 10월에 동지겸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연행하였으며, 패관소설의 탐독으로 문체가 바르지 못하다는 정조의 견책을 받고 연행 도중 자송문(自訟文)을 지어 올렸다. 1800년(정조24) 6월 정조가 승하한 뒤 정조의 시책문(諡冊文)을 지어 올렸다. 병조?예조?이조의 판서를 거친 뒤 1802년(순조2)에 문형이 되었으며, 이해 9월에 딸이 순조의 비(妃)가 되자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에 봉해졌다. 1804년(순조4) 무렵 삼청동(三淸洞)에 별장인 옥호정(玉壺亭)을 조성하였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많은 문인들과 시회를 펼쳤다. 이후 훈련대장과 금위대장을 역임하였고, 1826년(순조26)에 다시 문형이 되었다. 1832년(순조32) 4월 3일 세상을 떠나 여주(驪州) 효자리(孝子里)에 묻혔으며, 1841년(헌종7)에 이천(利川) 가좌동(加佐洞)으로 이장되었다.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과 여주의 현암서원(玄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풍고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