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첨재 2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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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11/28
Pages/Weight/Size 210*297*35mm
ISBN 9791128855696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Description
조야에서 보고 들은 것을 모두 기록했다

『조야첨재』는 당나라의 문인 장작(張?)이 지은 역사쇄문류 필기문헌이다. 총 6권에 371조의 고사가 수록되어 있다. 『조야첨재』에 수록된 고사의 시대 범위는 대부분 수나라 말부터 당나라 현종 개원 연간 초기까지이며, 남북조 시대의 고사가 일부 들어 있다. 그중에서 측천무후 집정시기(690∼705)의 고사가 150조 가까이 되어 전체 고사의 약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고사의 내용은 ‘조야에서 보고 들은 것을 모두 기록했다’는 서명처럼 상당히 광범위한데, 이를 크게 조정의 고사와 재야의 고사로 개괄해 볼 수 있다.

먼저 조정의 고사는 정치에 대한 풍간(諷諫)이 주를 이룬다. 특히 측천무후 집정 시기를 중심으로 당시 정치의 암흑상과 부패상, 간신배와 아첨배의 음험한 모략과 전횡, 혹리들의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 전체 관료 집단의 나약함과 무능함, 관리 선발의 난맥상, 잔혹한 권력 투쟁 등에 대해 풍자하고 비판했다. 반면에 근검을 실천하고 선정을 베푼 청렴한 관리들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작은 인물을 품평하길 좋아하고 시정을 규탄하길 즐겨 당시 사인들에게 경박하다고 미움을 받았는데, 그의 평소 생각과 성격이 이러한 고사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한 그의 이러한 비판 정신은 매우 귀중한 시대적 의미를 지닌다.

다음으로 재야의 고사는 굉장히 다양하다. 여러 계층의 인물의 특이한 언행과 일화, 부인들의 투기, 환술·인요(人妖)·귀신·요괴·정령·재생(再生)·무덤·명기(銘記) 등에 관한 괴이한 고사, 불교와 도교에 관한 고사, 방사와 무당에 관한 고사, 참어(讖語)·징조·점복·해몽에 관한 고사, 민간 풍속과 전설, 민간 가요, 여러 지방의 특이한 풍물, 천문과 의약 등 실로 광범위하다. 이 같은 특징은 당시 사회 전반의 다양한 특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Contents
권5

5-1(253) 왕경
5-2(254) 이걸
5-3(255) 배자운
5-4(256) 위창
5-5(257) 장초금
5-6(258) 동행성
5-7(259) 장작
5-8(260) 장송수
5-9(261) 원가
5-10(262) 모준의 아들
5-11(263) 누사덕
5-12(264) 이적
5-13(265) 이일지
5-14(266) 주전의
5-15(267) 나흑흑
5-16(268) 왕기
5-17(269) 혜범
5-18(270) 사숭현
5-19(271) 영남의 부정한 제사
5-20(272) 하현경
5-21(273) 영주의 부인
5-22(274) 설회의
5-23(275) 호승 보엄
5-24(276) 호초승
5-25(277) 고양이와 앵무새를 길들이다
5-26(278) 낙빈왕
5-27(279) 풍칠이
5-28(280) 고유지
5-29(281) 풍도의 무덤
5-30(282) 번흠분
5-31(283) 과보산
5-32(284) 달리는 바위
5-33(285) 석교
5-34(286) 날아간 비탈
5-35(287) 추낙타
5-36(288) 낙하 사람
5-37(289) 수 문제의 사자총
5-38(290) 장눌지
5-39(291) 송찰
5-40(292) 뱀 언덕
5-41(293) 원수 갚는 뱀
5-42(294) 녹색 뱀
5-43(295) 독사
5-44(296) 종서래사
5-45(297) 수제가
5-46(298) 마령산
5-47(299) 필건태
5-48(300) 보관사
5-49(301) 낙안전
5-50(302) 화용현 농장의 코끼리
5-51(303) 정음
5-52(304) 설직
5-53(305) 조이온
5-54(306) 장급
5-55(307) 길욱
5-56(308) 종초객
5-57(309) 최융
5-58(310) 최식
5-59(311) 장열
5-60(312) 정백헌
5-61(313) 왕경융

권6

6-1(314) 한조종
6-2(315) 신정
6-3(316) 공여선사
6-4(317) 진희민
6-5(318) 이응도
6-6(319) 요군경
6-7(320) 소영사
6-8(321) 고최외
6-9(322) 적인걸
6-10(323) 이안기
6-11(324) 윤신동
6-12(325) 안남의 코끼리
6-13(326) 말하는 성성이
6-14(327) 왕의방
6-15(328) 투녀묘
6-16(329) 두붕거
6-17(330) 시소의 동생
6-18(331) 이해고
6-19(332) 송영문
6-20(333) 팽박통
6-21(334) 이굉
6-22(335) 신승사
6-23(336) 팽달과 고찬
6-24(337) 유신
6-25(338) 노조린
6-26(339) 난릉왕
6-27(340) 유교
6-28(341) 장숭
6-29(342) 십이진거
6-30(343) 구리 술통
6-31(344) 은문량
6-32(345) 양무렴
6-33(346) 왕거
6-34(347) 설신혹
6-35(348) 주자공
6-36(349) 장역지
6-37(350) 이승가
6-38(351) 태주 사람
6-39(352) 양재언
6-40(353) 수안현의 남자
6-41(354) 유숭
6-42(355) 장작
6-43(356) 서경업
6-44(357) 두경전
6-45(358) 흑치상지
6-46(359) 고종
6-47(360) 장역지
6-48(361) 최현위
6-49(362) 송선위
6-50(363) 이처감
6-51(364) 국선충
6-52(365) 원건요
6-53(366) 보지
6-54(367) 위징
6-55(368) 누사덕
6-56(369) 왕현
6-57(370) 이순풍
6-58(371) 왕무애

보집(補輯)

보-1 노반
보-2 잠군모
보-3 원사중
보-4 소정
보-5 지선사
보-6 양 무제
보-7 장손무기
보-8 왕진
보-9 강융
보-10 이소덕
보-11 궁사업
보-12 주흥
보-13 어사훤
보-14 색원례
보-15 장초금
보-16 최일지
보-17 학처준
보-18 반언
보-19 장승요
보-20 비고
보-21 장조택
보-22 유계지
보-23 종현성
보-24 맹신상
보-25 비기
보-26 한영규
보-27 이굉
보-28 장손흔
보-29 장역지 형제
보-30 권회은
보-31 송지손
보-32 팽선각
보-33 영천현령
보-34 마추
보-35 고예의 부인
보-36 왕담
보-37 서작
보-38 이덕림
보-39 학처준
보-40 서적
보-41 풍목인
보-42 삼릉초
보-43 남주
보-44 여우 신
보-45 장간
보-46 비단뱀 쓸개
보-47 위영
보-48 동화조
보-49 진랍국의 낭조
보-50 백설
보-51 나주의 붉은 자라
보-52 장사공
보-53 누리 떼
보-54 유구국
보-55 곽무정
보-56 천후
보-57 배면
보-58 성도의 거지
보-59 후미허
보-60 노씨 부인
보-61 옥영
보-62 왕효걸
보-63 내준신
보-64 돌궐
보-65 주인궤
보-66 위월장
보-67 왕거
보-68 예약수
보-69 배율
보-70 마주
보-71 서언백
보-72 백랍명경
보-73 오금
보-74 작미표
보-75 육여경
보-76 은안
보-77 호랑이 점
보-78 소미도
보-79 방상시의 조카
보-80 맹홍미
보-81 사대부의 숲과 못
보-82 장씨
보-83 후사지
보-84 유형
보-85 사면될 징조
보-86 비 올 징조
보-87 삼백
보-88 재상의 직분
보-89 당검
보-90 왕구례
보-91 배비서
보-92 장이섭
보-93 장역지
보-94 상관소용
보-95 장창령
보-96 울지경덕
보-97 위원충
보-98 삼구·오후
보-99 태세
보-100 유인궤
보-101 최혼
보-102 배최
보-103 제갈앙
보-104 등왕
보-105 적인걸
보-106 장구아
보-107 서리 내리는 날
보-108 장회숙·임정명
보-109 곽무정
보-110 의성공주
보-111 화앙
보-112 내관
보-113 삼족우
보-114 동귀부
보-115 조태

부록
장작전(張?傳)
역대저록(歷代著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Author
장작,김장환
『조야첨재(朝野僉載)』의 찬자 장작(張?, 650?∼722?)은 당나라의 문인으로, 자는 문성(文成)이고 호는 부휴자(浮休子)이며 심주(深州) 육택[陸澤 : 지금의 허베이성 선현(深縣) 북쪽] 사람이다. 고종(高宗)·측천무후(則天武后)·중종(中宗)·예종(睿宗)과 현종(玄宗) 초기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출중했다. 고종 조로(調露) 연간(679∼680)에 진사에 급제했는데, 당시 저명한 문인이자 주고관(主考官)이었던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건미도(騫味道)로부터 “천하무쌍(天下無雙)”이라는 칭찬을 받고, 기왕부(岐王府)의 참군(參軍)에 제수되었다. 또한 황제가 주관한 여덟 번의 제거(制擧)와 이부에서 치른 네 번의 관리 선발 시험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해, 장안현위(長安縣尉)에 제수되었다가 홍려승(鴻?丞)으로 승진했다. 그래서 당시 저명한 문인이었던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 원반천(員半千)이 그를 “청전학사(靑錢學士)”라고 칭찬했는데, 이는 나중에 재학(才學)이 뛰어나 시험을 볼 때마다 합격하는 사람을 뜻하는 성어가 되었다.

측천무후 증성년(證聖年 : 695)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기용되었다. 그는 성격이 편협하고 조급했으며 선비로서 품행을 지키지 못해, 당시 재상이었던 요숭(姚崇)에게 미움을 받았다. 결국 장안(長安) 연간(701∼704) 초에 처주사창(處州司倉)과 유주사호(柳州司戶)로 폄적되었다가 나중에 덕주(德州) 평창현령(平昌縣令)으로 전임되었다. 현종 개원(開元) 2년(714)에 시정(時政)을 비방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탄핵당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으며, 몇 년 후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사문원외랑(司門員外郞)을 지내다가 73세에 죽었다. 그는 화려한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나 그의 문장이 당시에 크게 유행했으며, 신라와 일본의 사신들이 값을 아끼지 않고 그의 문장을 사 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전해지는 저작으로는 『조야첨재』 외에 당나라의 판례를 모아 놓은 『용근봉수판(龍筋鳳髓判)』과 전기소설(傳奇小說)로 유명한 『유선굴(遊仙窟)』 등이 있다. 그의 전(傳)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장천전(張薦傳)>에 실려 있다.
『조야첨재(朝野僉載)』의 찬자 장작(張?, 650?∼722?)은 당나라의 문인으로, 자는 문성(文成)이고 호는 부휴자(浮休子)이며 심주(深州) 육택[陸澤 : 지금의 허베이성 선현(深縣) 북쪽] 사람이다. 고종(高宗)·측천무후(則天武后)·중종(中宗)·예종(睿宗)과 현종(玄宗) 초기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출중했다. 고종 조로(調露) 연간(679∼680)에 진사에 급제했는데, 당시 저명한 문인이자 주고관(主考官)이었던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건미도(騫味道)로부터 “천하무쌍(天下無雙)”이라는 칭찬을 받고, 기왕부(岐王府)의 참군(參軍)에 제수되었다. 또한 황제가 주관한 여덟 번의 제거(制擧)와 이부에서 치른 네 번의 관리 선발 시험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해, 장안현위(長安縣尉)에 제수되었다가 홍려승(鴻?丞)으로 승진했다. 그래서 당시 저명한 문인이었던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 원반천(員半千)이 그를 “청전학사(靑錢學士)”라고 칭찬했는데, 이는 나중에 재학(才學)이 뛰어나 시험을 볼 때마다 합격하는 사람을 뜻하는 성어가 되었다.

측천무후 증성년(證聖年 : 695)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기용되었다. 그는 성격이 편협하고 조급했으며 선비로서 품행을 지키지 못해, 당시 재상이었던 요숭(姚崇)에게 미움을 받았다. 결국 장안(長安) 연간(701∼704) 초에 처주사창(處州司倉)과 유주사호(柳州司戶)로 폄적되었다가 나중에 덕주(德州) 평창현령(平昌縣令)으로 전임되었다. 현종 개원(開元) 2년(714)에 시정(時政)을 비방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탄핵당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으며, 몇 년 후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사문원외랑(司門員外郞)을 지내다가 73세에 죽었다. 그는 화려한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나 그의 문장이 당시에 크게 유행했으며, 신라와 일본의 사신들이 값을 아끼지 않고 그의 문장을 사 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전해지는 저작으로는 『조야첨재』 외에 당나라의 판례를 모아 놓은 『용근봉수판(龍筋鳳髓判)』과 전기소설(傳奇小說)로 유명한 『유선굴(遊仙窟)』 등이 있다. 그의 전(傳)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장천전(張薦傳)>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