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져가는 결혼제도와 '남편'과 '아내'로 산다는 것의 온갖 의미를 농축시켜놓은 소설 『남편과 아내 』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첫선을 보인 이스라엘 작가 살레브의 두번째 소설. 거침없는 전개와 심리학적 통찰로 가득한 아름다운 문체가 이번에는 육감적이며 때로는 굴욕적이기까지 한 성적 묘사와 만났다. 일 년여에 걸쳐 진행되는 한 여성의 일탈적 연애를 다루고 있다. 시종일관 여자가 느낄 수 있는 온갖 죄의식, 그리고 율법적인 족쇄와 만난다.
성실하고 사랑스러운 남편 요니를 두고 야아라는 부모님의 집에서 아리에를 본 순간부터 그 남자의 에로틱한 매력에 휘둘린다. 자기 나이의 두 배나 된 이 남자와의 관계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동물적인 아우라와 타락한 성품, 서서히 바스러져가는 정신과 잔인할 정도의 이기심이 한데 어우러진 아리에는 친구의 딸인 야아라에게 굴욕과 환멸과 자기모멸을 경험하게 할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바보 같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사랑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귀로 흘러들어가면서 그 사랑이 의미와 정당성을 얻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적어도 이 소설 화자인 야아라의 희망은 거기에 있는 듯하다. 맹목적인 열정과 그 뒤에 따르게 마련인 회한을 반복하면서도 그녀는 중독과도 같이 아리에에게 매달린다. 아리에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정은 이제까지 쌓아왔던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와해시킨다. 사랑했지만 너무나도 정직한 남편과의 미래, 학문적 경력과 전망, 여타 인간관계에서의 신뢰와 정조관념도 그녀는 포기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폭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아리에의 살멩 드리워진 그늘이 하나씩 드러나고 야아라 자신의 성장기를 짓눌렀던 부모의 끝없는 불화, 도저희 화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삶,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사랑의 삶'이라는 일 년 간의 혹독한 체험을 통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게 되는 야아라에게는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탈출구가 열린다.
전작 《남편과 아내》(전2권)에서 보여준 에로티시즘이 훨씬 더 격렬하고 노골적인 색채로 드러나는 이 소설은 불륜소설이란 외피를 입고 있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타포는 훨씬 중층적이다. 표면의 미친 듯한 사랑, 모든 걸 파괴해가며 감행한 사랑은 주인공 야아라가 새로운 삶의 유형을 개척해가는 지난한 투쟁이었음을 독자들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야 비로소 눈치채게 된다. 작가 특유의 정밀함과 독특한 사유는 이 책에서도 예외 없이 발휘되는데 바로 이 지점이 이 소설을 단순한 연애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 빼어난 성장소설 나아가 심리소설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리는 갈림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