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인식의 한계 내에서 위대함을 꿈꾸었던 계몽주의적 인간상을 그려낸 서양 철학의 위대한 고전, 『순수이성비판』. 서울대 철학과 백종현 교수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된 『순수이성비판』1, 2권은 최근까지 칸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방대한 ‘연구번역본’으로 800여 쪽의 원전 번역과 함께, 각각 13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해제와 찾아보기로 구성되어 있다.
Contents
책을 내면서
제1부 『순수이성비판』 해제
I. 칸트의 철학 과제
II. 『순수이성비판』의 체제
III. ‘순수 이성 비판’과 그 결실
IV. 칸트 초월철학의 체계
1. 초월적 감성학
1) 순수 직관으로서의 공간·시간
2) 공간·시간 표상의 주관성
3) 주관적 표상인 공간·시간의 경험적 직관 형식으로서의 객관적 실재성
(1) 감성의 일람(一覽)작용과 그 형식
(2) 공간·시간의 경험적 실재성과 초월적 관념성
(3) 현상의 ‘형식’과 ‘질료’로부터 얻는 결론
2. 초월적 논리학
1) 순수 지성개념들의 연역
(1) 순수 지성개념들의 형이상학적 연역
(2) 순수 지성개념들의 초월적 연역
2) 순수 지성의 종합적 원칙들
(1) 양(量) 개념의 객관적 사용의 원칙
(2) 질(質) 개념의 객관적 사용의 원칙
(3) 관계(關係) 개념의 객관적 사용의 원칙들
① 제1유추의 원칙―실체 개념의 객관적 사용 원칙
② 제2유추의 원칙―인과 개념의 객관적 사용 원칙
③ 제3유추의 원칙―상호작용 개념의 객관적 사용 원칙
(4) 양태(樣態) 개념의 객관적 사용의 원칙들
V. 이성적 형이상학 비판 : 초월적 변증학
1. 초월적 가상의 체계들
2. 순수 이성의 오류추리 비판
3.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해명
1) 첫째 이율배반
2) 둘째 이율배반
3) 셋째 이율배반
4) 넷째 이율배반
4. 순수 이성의 이상 해명
1) 신의 현존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의 불가능함
2) 신의 현존에 대한 우주론적 증명의 불가능함
3) 신의 현존에 대한 물리신학적 증명의 불가능함
VI. 순수 이성의 완벽한 체계를 위한 조건들에 대한 마무리 반성 : 초월적 방법론
1. 순수 이성의 훈육
2. 순수 이성의 규준
3. 순수 이성의 건축술
4. 순수 이성의 역사
VII. 『순수이성비판』 저술사
『순수이성비판』 관련 주요 문헌
I. 원전 Kritik der reinen Vernunft의 주요 판본
1. 주요 판본
2. 원전 및 주요 판본 비평
II. 사전류
III. 학술지
IV. 주석서
V. 국외 연구논저
1. 개괄 연구서
2. 종합 연구논저
3. ‘초월적 감성학’ 관련 논저
4. ‘초월적 논리학 I : 개념의 분석학’ 관련 논저
5. ‘초월적 논리학 II : 원칙의 분석학’ 관련 논저
6. ‘초월적 논리학 III : 변증학’ 관련 논저
7. 영향사 관련 연구논저
VI. 국내 연구논저
제2부 『순수이성비판』 역주
역주의 원칙
유사어 및 상관어 대응 번역어표
『순수이성비판』 번역 및 주석
찾아보기
일러두기
인물 찾아보기
개념 찾아보기
Author
임마누엘 칸트,백종현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