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방소학교(수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보통학교(광주일고)를 다니다가 서울 중앙중학교로 옮겼으며, 다시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교 제일고등학교에 들어갔다. 1940년 와세다 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에 철학과로 옮기고는, 칸트, 헤겔, 하이데거, 야스퍼스, 하르트만을 공부하고 1943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 그동안 아테네 프랑세즈에서 프랑스어, 라틴어, 희랍어를 공부했고, 조치 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독일어를 배웠다.
1945년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전임강사를 거쳐 1946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되었는데, 35년 재직 기간 동안 행정직은 한 번도 맡지 않고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여 형이상학을 파고들었다. 1984년 정년퇴임 후 철학과 명예교수를 지내고, 1986년 한국서양고전학회를 창립했으며, 1994년 3월 간경화증으로 별세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하게도 희랍 철학과 프랑스 철학을 연구했으며, 저술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제자들을 키우는 데에만 전력을 다했다.
1919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방소학교(수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보통학교(광주일고)를 다니다가 서울 중앙중학교로 옮겼으며, 다시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교 제일고등학교에 들어갔다. 1940년 와세다 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에 철학과로 옮기고는, 칸트, 헤겔, 하이데거, 야스퍼스, 하르트만을 공부하고 1943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 그동안 아테네 프랑세즈에서 프랑스어, 라틴어, 희랍어를 공부했고, 조치 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독일어를 배웠다.
1945년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전임강사를 거쳐 1946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되었는데, 35년 재직 기간 동안 행정직은 한 번도 맡지 않고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여 형이상학을 파고들었다. 1984년 정년퇴임 후 철학과 명예교수를 지내고, 1986년 한국서양고전학회를 창립했으며, 1994년 3월 간경화증으로 별세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하게도 희랍 철학과 프랑스 철학을 연구했으며, 저술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제자들을 키우는 데에만 전력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