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트빌라 사람들 2 (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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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8/03/20
Pages/Weight/Size 188*273*20mm
ISBN 9788936475178
Categories 소설/시/희곡 > 북유럽소설
Description
‘스위스의 괴테’ 켈러의 대표 노벨레 연작선집

‘스위스의 괴테, 단편의 셰익스피어’라 불린 독일어권 시적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 고트프리트 켈러의 노벨레 연작선집 『젤트빌라 사람들』이 출간됐다. ‘노벨레’란 신기하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예술적 구성으로 간결하고 객관적인 묘사로 재현한 비교적 짧은 산문을 뜻한다. 켈러는 1840년대 중반에 이 노벨레 연작집 구상을 시작했고, 베를린에 거주하던 1851년 집필에 착수하여 1856년에 1부를, 1874년에 2부를 발표했다. 30여년에 걸친 작가적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젤트빌라 사람들』 1부와 2부는 각각 작가의 서언과 5편의 노벨레로 구성되어 있다. 본 선집에서는 1·2부 서언과 함께, 연작집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19세기 후반 산업화로 인한 수공업의 위기 속에서 배금주의와 물욕이 팽배하던 당시 세태가 적나라하게 그려진 「정의로운 빗 제조공 세사람」, 실제와 가상, 본질과 가면, 사회적 요소와 인간 내적 요소 간의 전형적 대조를 보여주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 당시 세태에 대한 풍자적 비판 「자기 행운의 개척자」 등 4편의 노벨레를 실었다.
Contents
2부
서언
옷이 사람을 만든다
자기 행운의 개척자

작품해설/사회사적 흐름에 대한 문학적 진단
작가연보
Author
고트프리트 켈러,권선형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어권 리얼리즘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선반공이었던 아버지는 켈러가 다섯 살 때 죽었으나 강한 의지의 소유자인 어머니가 그를 헌신적으로 교육시켰다. 그렇지만 사소한 장난 때문에 열다섯 살에 공업학교에서 쫓겨나 이것으로 그의 정규교육은 끝이 났다. 이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림 공부를 하던 중 1840~42년에는 예술의 도시인 독일의 뮌헨에서 체류했다. 하지만 화가로 입신하지 못한 채 취리히로 돌아와 작가의 길을 걷는다. 주로 자연시·정치적 소네트·연애시 등 다양한 장르의 시를 썼는데, 시인으로서의 데뷔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1848~50년 스위스의 정부 장학금으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여기서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1850년부터는 베를린에서 살았는데 1855년까지 계속된 베를린 체류기 동안 『초록의 하인리히』 초판이 총 4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해 그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작품이 실패하자 곧장 고향 취리히로 돌아왔고, 1891년 마흔 두 살의 나이로 취리히의 수상청 총서기로 선출됨으로써 뒤늦게나마 안정된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는 실패한 화가이자 경제적인 무능력에 허덕이던 전업작가로서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공직에 몸담고 있던 15년 동안에는 거의 글을 쓸 시간이 없었고 말년이 가까워서야 다시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은퇴 이후인 1879년부터 『초록의 하인리히』의 개정판을 출판하여 마침내 이듬해 마침표를 찍는다. 이 개정판이 30년 동안 작가의 업보였던 작품이지만, 오늘날 '스위스의 괴테'로 추앙받게 만든 대작이 된 것이다. 한 젊은이의 성장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괴테의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전통선상에 있다. 반면 작품의 기본구조가 일인칭 서술자에 의한 연대기 회상의 형식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은 전기적 또는 자서전적 소설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초록의 하인리히'라는 별명은 절약가였던 어머니가 아들의 옷을 전부 죽은 아버지의 유품인 초록색 옷으로 고쳐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주인공 하인리히가 늘 초록색 옷을 입고 다닌 데서 생겨난 것이다. 한편 켈러는 노벨레 작가로도 유명한데, 특히 10편의 노벨레 연작집 『젤트빌라 사람들 1·2부』(1856/74)와 『일곱 개의 전설』(1872)은 독일 노벨레 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어권 리얼리즘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선반공이었던 아버지는 켈러가 다섯 살 때 죽었으나 강한 의지의 소유자인 어머니가 그를 헌신적으로 교육시켰다. 그렇지만 사소한 장난 때문에 열다섯 살에 공업학교에서 쫓겨나 이것으로 그의 정규교육은 끝이 났다. 이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림 공부를 하던 중 1840~42년에는 예술의 도시인 독일의 뮌헨에서 체류했다. 하지만 화가로 입신하지 못한 채 취리히로 돌아와 작가의 길을 걷는다. 주로 자연시·정치적 소네트·연애시 등 다양한 장르의 시를 썼는데, 시인으로서의 데뷔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1848~50년 스위스의 정부 장학금으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여기서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1850년부터는 베를린에서 살았는데 1855년까지 계속된 베를린 체류기 동안 『초록의 하인리히』 초판이 총 4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해 그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작품이 실패하자 곧장 고향 취리히로 돌아왔고, 1891년 마흔 두 살의 나이로 취리히의 수상청 총서기로 선출됨으로써 뒤늦게나마 안정된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는 실패한 화가이자 경제적인 무능력에 허덕이던 전업작가로서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공직에 몸담고 있던 15년 동안에는 거의 글을 쓸 시간이 없었고 말년이 가까워서야 다시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은퇴 이후인 1879년부터 『초록의 하인리히』의 개정판을 출판하여 마침내 이듬해 마침표를 찍는다. 이 개정판이 30년 동안 작가의 업보였던 작품이지만, 오늘날 '스위스의 괴테'로 추앙받게 만든 대작이 된 것이다. 한 젊은이의 성장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괴테의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전통선상에 있다. 반면 작품의 기본구조가 일인칭 서술자에 의한 연대기 회상의 형식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은 전기적 또는 자서전적 소설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초록의 하인리히'라는 별명은 절약가였던 어머니가 아들의 옷을 전부 죽은 아버지의 유품인 초록색 옷으로 고쳐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주인공 하인리히가 늘 초록색 옷을 입고 다닌 데서 생겨난 것이다. 한편 켈러는 노벨레 작가로도 유명한데, 특히 10편의 노벨레 연작집 『젤트빌라 사람들 1·2부』(1856/74)와 『일곱 개의 전설』(1872)은 독일 노벨레 문학의 백미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