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최고의 변론, 국내 최초 완역!
리시아스의 빛나는 변론들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현장을 그려보다
고대 그리스 최고의 변론가 중 하나로 꼽히는 리시아스의 변론들이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출간되었다. 리시아스는 민주정을 지지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자 수사학의 대가로,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꽃이었던 변론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간결하고 정확한 문체를 구사하는 그의 변론은 그 자체로서도 뛰어난 작품이지만, 그 안에 고대 아테네인의 삶과 역사의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자료다. 정치가의 변(辯)부터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 개인 간의 사적 분쟁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변론들로 아테네의 법률 및 소송제도, 아테네인의 사회 인식, 펠로폰네소스전쟁 이후 격동했던 아테네의 정치상황 등을 알 수 있다. 『리시아스 변론집』의 번역 출간은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체제의 역동적인 현장을 2천 5백 년의 세월을 넘어 현대의 언어로 전한다는 의의가 있다.
Contents
제 1 부 변론
20. 폴리스트라토스를 변호하여 9
21. 특정되지 않은 뇌물 혐의에 대한 변호 23
22. 곡물상들을 비난하여 33
23. 플라타이아인이 아닌 사실에 관련하여 판클레온을 비난하여 43
24. 무능력자를 위하여 51
25. 민중해체 혐의에 대한 변호 61
26. 에우안드로스의 자격심사에 대하여 75
27. 에피크라테스와 그 동료 사신들을 비난하는 맺음말 87
28. 에르고클레스를 비난하는 맺음말 95
29. 필로크라테스를 비난하는 맺음말 103
30. 니코마코스를 비난하여: 서기직 감사에 따른 고발 109
31. 자격심사에 임한 필론을 비난하여 123
32. 디오게이톤을 비난하여 135
33. 올림피아코스 (올림픽에 부치는 찬사) 147
34. 아테나이의 전통적 정치체제의 해체에 반대하여 151
제 2 부 단편들 157
부록 1. 리시아스의〈에라토스테네스 살해를 변호하여〉를 통해 보는 유죄살인이 아닌 정당방위 살해 199
부록 2. polis, chora, asty, demos, phyle 용어의 차이 225
부록 3. 아테나이 송사의 절차법 240
부록 4. 리시아스 변론 원제목의 그리스어 표기 287
옮긴이 해제 - 리시아스의 작품과 생애 297
용어 해설 309
찾아보기 317
지은이ㆍ옮긴이 약력 327
Author
리시아스,최자영
리시아스는 시라쿠사 출신인 시켈로스 케팔로스의 아들이었고, 아테네에서 태어났던 것으로 추측되는 거류외인(metoikos)이다. 출생연대는 기원전 459년 혹은 445년경, 사망연대는 기원전 380년경으로 추정될 뿐 확실하지 않다. 아버지 케팔로스는 아테네의 외항 페이라이에우스에서 방패 제조산업을 경영했다. 리시아스의 형제로는 폴레마르코스와 에우티데모스가 있었다. 15세쯤 되었을 때 리시아스는 형제들과 함께 아테네를 떠나 이탈리아 남부 투리오이로 갔고, 코라카스의 제자인 시라쿠시오스 테이시아스에게서 변론술을 배웠다. 시라쿠사에서 아테네의 전함이 스파르타에게 패전했던 기원전 413년 이후 친아티카 노선에 섰던 리시아스는 투리오이를 떠나 아테네로 오게 되었다. 리시아스는 그 아버지처럼 ‘동일세 납부자’의 자격으로 아테네에 거주했다.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마침내 패배하고 30인 참주정이 수립되었을 때, 30인은 리시아스의 재산을 노려 재물과 집을 몰수해 갔다. 당시 리시아스의 형제 폴레마르코스는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다. 리시아스도 체포되었으나 구사일생으로 도주했고, 기원전 403년 가을 아테네에 민주정이 회복되었을 때 다시 아테네로 들어온다. 이후 변론작가로서 활동하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리시아스는 시라쿠사 출신인 시켈로스 케팔로스의 아들이었고, 아테네에서 태어났던 것으로 추측되는 거류외인(metoikos)이다. 출생연대는 기원전 459년 혹은 445년경, 사망연대는 기원전 380년경으로 추정될 뿐 확실하지 않다. 아버지 케팔로스는 아테네의 외항 페이라이에우스에서 방패 제조산업을 경영했다. 리시아스의 형제로는 폴레마르코스와 에우티데모스가 있었다. 15세쯤 되었을 때 리시아스는 형제들과 함께 아테네를 떠나 이탈리아 남부 투리오이로 갔고, 코라카스의 제자인 시라쿠시오스 테이시아스에게서 변론술을 배웠다. 시라쿠사에서 아테네의 전함이 스파르타에게 패전했던 기원전 413년 이후 친아티카 노선에 섰던 리시아스는 투리오이를 떠나 아테네로 오게 되었다. 리시아스는 그 아버지처럼 ‘동일세 납부자’의 자격으로 아테네에 거주했다.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마침내 패배하고 30인 참주정이 수립되었을 때, 30인은 리시아스의 재산을 노려 재물과 집을 몰수해 갔다. 당시 리시아스의 형제 폴레마르코스는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다. 리시아스도 체포되었으나 구사일생으로 도주했고, 기원전 403년 가을 아테네에 민주정이 회복되었을 때 다시 아테네로 들어온다. 이후 변론작가로서 활동하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