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대 (新時代) : 1943년 3월 -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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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5/03/20
Pages/Weight/Size 155*265*35mm
ISBN 9791168879591
Categories 인문 > 독서/비평
Description
1941년, 신시대사에서 노익형이 시사적인 내용과 문예물을 수록한 월간 잡지.

이 잡지는 1941년 1월 창간되어 1945년 2월 통권 54호로 종간되었다. 주로 시사와 문예물을 실었던 종합지로서, 기사의 내용은 친일색이 농후하였다. 이 잡지는 쉽고 재미있는 시국 선전용 대중잡지를 목표로 창간되었다. 발행인은 조선 굴지의 출판사 박문서관의 창업주였던 노익형(盧益亨)이었으며, 그가 사망한 1941년 이후에는 아들 노성석(盧聖錫)이 계속 발행하였다. 이 잡지의 호당 평균 쪽수는창간 당시인 1941년에는 253쪽이었으나, 일제 말 종이 값의 상승 등으로 인해 1943년에는 151쪽으로 줄었다. 가격은 1944년 6월호까지 줄곧 50전을 유지하였다. 표지와 화보는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을 선전하는 그림과 사진으로 장식되었다.

이 잡지에는 시사적 내용과 함께 문예물이 폭넓게 실렸다. 수필란, 시단, 연재소설란, 희곡란 등을 따로 갖추고 있었다. 소설의 경우는 중장편 연재소설을 매호마다 실었으며, 내용은 가정소설, 역사소설, 명랑소설, 과학소설 등으로 다양하였다. 주요 연재 소설가로는 이광수, 이태준, 김동인을 꼽을 수 있다. 한편 기성시인의 시와는 별도로 신인들의 시를 주로 싣는 신시대시단 코너를 따로 둔 점도 눈에 띈다. 신인들은 친일과는 거리를 둔 순수서정시를 많이 발표하였다. 일제 말 한국어의 공적 사용이 전면 금지된 상황 속에서 한글과 일본어를 혼용하여 발행한 월간잡지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Author
노익형
박문서관 창업주
일제강점기의 출판인이자 언론인이다.

생애
신상 정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대한제국 시기에 양기탁, 주시경, 이준 등 개화파 청년들과 가까이 지낸 인물이었다. 주시경이 교사를 맡았던 상동교회의 상동청년학원 설립에 찬조금을 내 도운 바 있고, 주시경 번역으로 《월남망국사》를 출판하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경성부에서 서점을 경영하고 있었다.[2] 1938년 《조광》과의 인터뷰에서, 개화기의 상황을 언급하며 "그때 우리 조선에도 신문화가 수입되기 시작하는데 역시 책전 같은 것도 필요"할 것으로 보고 출판사를 설립했다고 말한 바 있다.[3] 이때 노익형은 출판사 겸 서점인 박문서관의 경영인 자격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1년에 잡지 《신시대》를 발행하는 신시대사를 설립하고 초대 사장 겸 발행인을 지냈다. 《신시대》는 월간 잡지로 《박문》의 자매지였으며, "시국하 반도민중에게 필요한 일체의 국민지식과 훈련과 사상의 보급, 전달"을 목표로 삼는 전형적인 친일 매체였다.

노익형은 이 잡지를 통해 전쟁 수행과 근로 동원에 적극 협력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함흥, 청진, 대구에 지사를 두고 도쿄와 오사카시에도 지사가 있었다. 초기에는 일부 지면을 활용하여 일본어 기사를 실었으나, 곧 내선일체 취지에 맞도록 일본어와 한국어를 혼용하고 집필도 일본인과 한국인인 공동으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신시대사의 제2대 발행인은 아들인 노성석이 이어 맡았다.[4] 이밖에 경성상공협회의 이사를 역임했다.
박문서관 창업주
일제강점기의 출판인이자 언론인이다.

생애
신상 정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대한제국 시기에 양기탁, 주시경, 이준 등 개화파 청년들과 가까이 지낸 인물이었다. 주시경이 교사를 맡았던 상동교회의 상동청년학원 설립에 찬조금을 내 도운 바 있고, 주시경 번역으로 《월남망국사》를 출판하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경성부에서 서점을 경영하고 있었다.[2] 1938년 《조광》과의 인터뷰에서, 개화기의 상황을 언급하며 "그때 우리 조선에도 신문화가 수입되기 시작하는데 역시 책전 같은 것도 필요"할 것으로 보고 출판사를 설립했다고 말한 바 있다.[3] 이때 노익형은 출판사 겸 서점인 박문서관의 경영인 자격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1년에 잡지 《신시대》를 발행하는 신시대사를 설립하고 초대 사장 겸 발행인을 지냈다. 《신시대》는 월간 잡지로 《박문》의 자매지였으며, "시국하 반도민중에게 필요한 일체의 국민지식과 훈련과 사상의 보급, 전달"을 목표로 삼는 전형적인 친일 매체였다.

노익형은 이 잡지를 통해 전쟁 수행과 근로 동원에 적극 협력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함흥, 청진, 대구에 지사를 두고 도쿄와 오사카시에도 지사가 있었다. 초기에는 일부 지면을 활용하여 일본어 기사를 실었으나, 곧 내선일체 취지에 맞도록 일본어와 한국어를 혼용하고 집필도 일본인과 한국인인 공동으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신시대사의 제2대 발행인은 아들인 노성석이 이어 맡았다.[4] 이밖에 경성상공협회의 이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