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기 저작 Ⅱ (1795~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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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8/10
Pages/Weight/Size 152*225*35mm
ISBN 9788935676521
Categories 인문 > 서양철학
Description
〈칸트전집〉 제11권 『비판기 저작 Ⅱ(1795~1804)』은 칸트의 비판 사상이 체계적으로 완성된 1795~1804년에 발표한 저술 7편을 모은 것이다. 특히 1795년에 출간된 『영구평화론』은 칸트의 정치철학을 알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

칸트는 이상적인 국가 체제는 인간의 행복이 아닌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며, 영구 평화를 위해서는 국제연합을 창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칸트에게 정치란 보편타당한 이성법 아래에서 실정법을 입법하고 집행하는 활동이다. 그렇기에 정치가는 단순히 법전에 나와 있는 글자들의 수행을 넘어 지혜의 최상 원리인 정언명령의 실현이다.

이 막중한 책임 아래에서 실현되는 이성법은 전적으로 인간의 자율성, 즉 정치에 의존한다. 정치가는 법과 법이론에 정통한 것은 물론이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 사태에 대한 판단력과 문제 해결의 현명함을 갖추어야 한다.

칸트의 형이상학은 기존의 형이상학과 달리 더는 이성을 이론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실천적 관점의 이 새로운 형이상학은 곧 ‘지혜론’이었다. 비판철학 이전에 존재하던 모든 철학에 ‘종말’을 고한 칸트는 마침내 지혜론을 통해 인간 이성은 ‘실천적 실재성’을 ‘믿음’으로써 도덕적인 결단과 행동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Contents
『칸트전집』을 발간하면서
『칸트전집』 일러두기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철학적 기획
철학에서 임박한 영구평화조약 체결 고지
철학에서 요즈음 생겨난 고상한 논조
오해에서 비롯한 수학 논쟁의 해결
인류애 때문에 거짓말할 왜곡된 권리
1791년 베를린 왕립학술원이 공모한 현상과제: 라이프니츠와 볼프의 시대 이후 독일에서 형이상학이 이룬 실질적 진보는 무엇인가?
학부논쟁

해제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철학적 기획』 · 정성관
『철학에서 임박한 영구평화조약 체결 고지』 · 정성관
『철학에서 요즈음 생겨난 고상한 논조』 · 배정호
『오해에서 비롯한 수학 논쟁의 해결』 · 홍우람
『인류애 때문에 거짓말할 왜곡된 권리』 · 배정호
『1791년 베를린 왕립학술원이 공모한 현상과제: 라이프니츠와 볼프의 시대 이후 독일에서 형이상학이 이룬 실질적 진보는 무엇인가?』 · 염승준
『학부논쟁』 · 이진오

옮긴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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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임마누엘 칸트,정성관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