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두 철학자가 다섯 차례에 걸쳐 만나고 수많은 이메일, 전화 통화를 주고 받았다. 탄탄한 기획을 바탕으로 127일간의 산고 끝에 태어난 한국 철학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날 수 있다.
첫 만남, '이제 철학이 천상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대담에 응하게 되었다'는 이승환의 말에 김용석은 '철학은 원래 땅에 있었던 거 아닌가요? 아니면 누가 천상에 올려놓았던 모양이죠?'라고 반문한다. 만만찮은 대화다. 두 학자는 이전에 한 번도 함께 대화를 나눴던 일이 없다. 한국을 떠나 한 쪽은 대만과 미국, 다른 한 쪽은 이탈리아에서 배웠던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학문적 배경, 관심분야 사이의 거리가 또한 만만찮아 보인다. 하지만, 철학은 우선 넓은 학문이다. 거리가 먼 두 사람이 만난 이유, 그저 철학이라고 한 마디하면 된다.
대담은 두 사람의 거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거기에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거리까지 겹쳐지며 때론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멀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승환은 서양철학에게 보편의 천상에서 내려오라고 하지만 김용석은 서양철학은 그곳에 있지 않다고 한다. 대담, 논쟁은 기합과 함께 달려드는 진검승부가 아니라 몇 수를 내다보는 수담과 같다. 하지만, 한담풍의 대담글을 기대했던 독자들이 당황하기엔 충분하다. 서양과 동양이란 문제를 잡아당기자, 근대와 탈근대, 전통과 현대, 세계화와 한국문화, 한국 사회의 발전 방향까지 덩쿨에 감자 달리듯 줄줄이 끌려나오기 때문이다.
줄기가 길다보니 가지도 많다. 철학자가 된 이유, 어린 시절의 애독서, 철학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 유학 시절의 기억, 철학자로서의 생활, 안전철학과 탈지구화까지.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폐해로 찌든 한국사회와 인문학을 고사시키는 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비판한다.
대담을 마친 후 주고 받은 편지에서 김용석은 이번 대담이 한 배에서 맨 처음 나오는 새끼, 무녀리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이승환은 '모두 깊이 잠든 밤 나 홀로 깨어'라는 시구로 화답했다. 말마따나 한국에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전통과 현대, 세계와 한국의 대화는 이제 첫새벽이다.
Contents
1장 삼고초려 끝에 두 철학자가 마주하다
첫 만남, 인터뷰하기/노자와 공자 이야기로 말문을 열다
2001년 8월 23일 오후 8시. 김용석과 이승환은 처음 만났다. 무척 긴장한 모습이다. 간단한 수인사를 나눈 뒤, 담소를 주고받는다. e-mail을 몇 차례 주고받아서인지 긴장감은 곧 사라지고 서로에게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답하기 시작한다.
2장 서양과 동양의 창을 열고 말과 몸짓을 섞기 시작하다
동서양 사유의 첫 부딪힘/서양은 보편이고 동양은 부분인가
첫 만남, 그리고 최근의 동양철학 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말문을 연 김용석과 이승환. 이제 그들은 서양의 철학은 어떻게 변해와 근대적 사유를 낳게 했는지, 그리고 유가철학은 어떻게 변해와 현재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펼쳐보일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이 섞이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묻어나오기 시작한다.
3장 서구 중심주의와 정체성에 대해 두 가지 시선으로 파고들다
왜곡된 서양과 억압된 동양/자아 정체성과 근대 사이의 불화
학계와 문화계에 만연한 서구 중심주의를 테마로 논쟁이 시작된다. 자본주의적 근대성을 바라보는 두 철학자의 대립이 드러난다. 당신은 서구 중심주의자인가? 그러면 당신은 절충주의자인가? 근대성이 가져온 폐단이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대안은 근대성을 만들어낸 사람에게서 올 수 있다. 그것을 찾아야 할 때다. 아니다! 오히려 근대가 아닌 다양한 지적 자원으로부터 가져와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곳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이다. 두 시각이 교차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각의 가능성을…….
4장 혼합의 시대, 변화와 욕망의 길 찾기에 나서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짝짓기/섞임의 시대를 여는 다섯 가지 개념들/변화에 대한 철학적 성찰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섞여 있는 혼합의 시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할 것인가! 조용한 변화인가, 놀라운 변신인가! 두 철학자는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선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개념이 요구된다. 인간의 삶의 조건으로서 지구, 자연, 환경. 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생활, 욕망과 관계, 그리고 앎과 지식들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의를 통해 미래 세계를 보는 혜안을 갖게 된다.
5장 127일간을 기억하고 미래를 기약하다
미지의 세계를 항해한 문화 탐험의 순간들 / 벗과의 만남을 통해 인(仁)을 보강한 127일
대담을 마치고 두 철학자는 긴 편지를 주고받았다. 김용석 선생이 지나간 127일간의 문화적 탐험을 떠올리면서 동서양철학자의 만남을 정리하고 성찰하는, 속 깊은 마음씀이 배어 있는 편지를 이승환 선생에게 띄웠다. 말과 몸짓을 섞어가며 보낸 넉 달 동안의 특별한 기억을 회상하는 이승환 선생이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결실을 김용석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