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정승화, 장태완 등 관련자 100인의 증언과 사진으로 재구성한 12·12 그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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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5/18
Pages/Weight/Size 152*225*27mm
ISBN 9791157063536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12·12 그날의 역사적 진실이 궁금한 이들에게 권하는 단 하나의 책!

1979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12·12 그날을 100인의 관련자 증언과 사진으로 재구성한 책.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전격 조사와 하나회 숙청 등이 벌어질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저자는 12·12의 핵심 인물인 정승화, 장태완을 비롯해 100여 명의 관련자를 인터뷰 및 심층 취재해 1년 동안 신문 연재했고, 이때의 기록이 이 책 『12·12』의 토대가 되었다.

기자 특유의 취재력과 문장력으로 1979년 12월 12일의 긴박한 상황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이 책은 당시의 역사 현장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관련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 그날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MZ세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게 된 전후 맥락을 살필 수 있게 했으며, 인물에 대한 상세한 주와 관련 사진을 풍부하게 실었다.
Contents
책을 펴내며: 다시 돌아본 12·12 그날의 진실과 사실
초판 후기: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대한 허기짐

프롤로그
전두환 보안사령관 임명의 역사적 의미 | 1973년 윤필용 사건의 본질 |
전두환 보안사령관 취임 이후의 정국

제1부 전초전

1.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위세
전두환과 정승화, 군의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 | 1979년 11월, 장태완 장군의 수경사령관 기용과 반발

2. 정승화와 전두환, 서로 헤어질 결심을 하다
12·12 군사반란 사건 3일 전의 골프 회동 | 전두환 경질설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치밀하게 준비된 정승화 총장 연행 계획

3. 군사반란 암호 ‘생일집 잔치’
전두환이 경복궁 30경비단 모임을 조직한 까닭 | ‘생일집 잔치’라는 암호명은 어떻게 나왔나 | 한 명의 이탈자 없이 모인 경복궁 30경비단 모임

4. 한남동의 총성
저녁 7시 20분의 총성으로 시작된 12·12 | 마침내 실행된 정승화 총장 연행 작전 | 역사의 방향을 바꾼 총성

5. 총격 아수라장 속 연행된 정승화 총장
총장님, 가시죠! | 엇갈린 진술, 누구의 말이 사실인가

6. 때늦은 공관 앞 격전
7분 만에 이루어진 연행 작전 | 다시 경비대 막사 | 정승화 총장 부인 신 씨의 증언 | 합수부 측 헌병을 제압한 해병경비대

7. 전군 비상경계령이 내려지다
‘진돗개 하나’ 비상경계령이 내려지다 | B2벙커에서의 육본 수뇌 모임 | 연희동 요정집의 세 장군 | 총장 공관 상황 보고에 흙빛이 된 전두환 | 공관 외곽초소 경비의 강화

8. 전두환의 특전· 수경사령관 유인작전
미리 계획된 세 장군과의 선약 | 저녁 7시 35분, 총장 공관 총격 사건 보고가 들어오다

9. 장태완 수경사령관, 경복궁에 강제 진압을 선언하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빠른 대응 | 육본 B2벙커로 모여든 참모들

10. 전두환, 대통령 공관을 봉쇄하다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한 전두환 | 육본 지휘부의 뒤늦은 상황 판단 | 외부세계와 차단된 총리 공관

제2부 12월 12일 밤, 그날의 기록

11. 3군사령부의 병력 장악 비상
12월 12일 저녁 7시, 경기 용인 계엄간담회 | 12월 12일 저녁 9시, 필동 수경사령부의 대응 | 굉장히 불순한 장난

12. 신군부 장성들, 최 대통령에게 재가를 집단으로 요구하다
“각하, 재가를 해주셔야 합니다” | 최규하 대통령, “지난밤 죽을 뻔했다” | 2시간 동안 사라진 노재현 국방부장관 | 전두환의 발빠른 대응

13. 육본 지휘부, 수경사로 이동하다
육본으로 날아든 급보 | 견고한 지하벙커를 포기한 육본 지휘부의 실책 | 육본 지휘부와 합수부 측의 ‘전화 전쟁’

14. 불복종과 배반의 밤
충정부대 동원 요청을 하다 | 노재현 국방부장관의 증언 | 깨어진 신사협정

15. 12·12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던 9공수여단
유일하게 육본의 지휘를 따른 9공수여단 | 9공수여단의 출동과 회군

16. 보안사의 통신 장악으로 가능했던 병력 봉쇄
운명을 바꾼 9공수여단의 회군 | 보안사 통신 장악이 가져온 행운

제3부 12월 13일 새벽의 대이동

17. 행주대교 통해 서울로 진입한 1공수여단
1공수여단장 박희도에게 떨어진 전두환의 명령 | 1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과정

18. 1공수여단, 육본과 국방부를 유혈장악하다
빈껍데기 육본을 장악한 1공수여단 | 벌컨포가 불을 뿜은 국방부 청사 |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의 차를 타고 나타난 유병현 대장 | 공수부대에 장악된 국방부

19. 사라진 노재현 국방부장관
국방부장관 없는 장관실을 점령하다 | 단순 하극상에서 군사쿠데타로 |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찾아

20. 3공수여단의 정병주 사령관 체포 작전
정병주 사령관 체포를 지시한 전두 | 최세창 3공수여단장에게 배신당한 정병주 사령관 | 김오랑 소령의 안타까운 죽음 | 배반의 밤을 맞이한 정병주의 그 후

21. 노태우, 전방 9사단을 서울로 동원하다
노태우 소장의 결심 | 포탄을 장전한 전차대대의 출동 | 국가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선택

22. 장태완 수경사령관, 보안사·30경비단 전차공격 준비
서빙고 공격 작전 취소가 불러온 파장 | 장태완 사령관의 7가지 명령 | 병력 동원 반대에 부닥친 장태완

23. 미8군의 반응
미국도 전혀 몰랐던 12·12 | 전두환을 예의 주시했던 미국의 정보통 | “한국군 내 중대 사태 발생” 워싱턴에 긴급 타전 | 미국은 12·12를 방조, 묵인한 것일까 | 북한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추가 경계 강화 지시

24. 수경사 헌병단, 육본 지휘부를 체포하다
장태완, 출동 준비를 마쳤으나 | 합수부 측으로 기운 승리의 여신 | 합수부, 수경사령부를 점령하다

25. 최규하 대통령, 총장 연행 열 시간 만에 사후 재가
드디어 나타난 노재현 국방부장관 | 마침내 이루어진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제4부 신군부의 칼날 아래

26. 12·12 당시 정승화 총장의 혐의는 타당한가
12·12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전두환이 제기한 정승화 총장의 혐의는 사실인가

27. 전두환, 12·12 이전부터 군부 개편을 구상하다
김윤호 소장, 군 개혁안을 전두환에게 전달하다 | 하나회 회원들의 수상한 동향

28. 12·12 당일을 다시금 가다
전두환, 거사 당일 정승화 총장 호출에 당황 | 총장 연행 작전에 대한 전두환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 국가의 이익으로 포장된 12·12

29. 납치된 정승화 총장은 어떻게 되었나
밤새 이루어진 정 총장 고문 조사 | “살아서 진실을 밝히겠다” | 서빙고 분실에 조사받은 또 다른 사람들

30. 신군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다
군권 수술에 나선 6인의 장성 | 군 내부 수습에 나선 신군부

31. 신군부 칼날 아래 스러지는 별들
별들의 대학살 | 완벽하게 군을 장악한 신군부의 별 잔치

32. 신군부, 미국에 ‘12·12 승인받기’ 다각 작전
주한미대사관을 방문한 김윤호 소장 | 미국의 현실적인 선택

33. 위컴 주한미군사령관과 전두환의 갈등
위컴 사령관의 사표 제출 소동 | 위컴과 전두환의 신경전

34. 초고속으로 진행된 정승화 총장 재판
서울의 봄 | 8일 만에 끝난 내란방조 사건 재판

35. 전두환, 국가의 핵심 권력을 장악하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하다 | 집권 의지를 키워간 전두환

36. 신군부의 5·17 전국계엄확대와 ‘정권잡기 시동’
백지 위임장으로 마무리된 전군지휘관회의 | 계엄확대 선포의 의미

37. 전두환의 청와대 입성 그 후
전두환, 청와대 입성에 성공하다 | 문민정부, 5공을 단죄하다 | 12·12 사건의 교훈

에필로그
영화 〈서울의 봄〉에는 없는 ‘서울의 봄’ | 신군부의 희생 제물, 김대중
Author
이계성
1957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했다. 광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일반 정치와 외교안보 분야를 주로 취재했고 국제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을 역임했다.
대학 4학년이던 1980년 5월 17일 밤 학교 캠퍼스에서 학우들과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군 부대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해산했는데, 귀가하지 않고 교내 기숙사로 친구를 찾아갔다가 다음 날 새벽 기숙사를 포위한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혀 그들의 군홧발에 무자비하게 맞았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할 때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로서 ‘12·12’를 심층 취재해 기사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사건이 5·17, 5·18과 연결된 점에 주목하고 그날을 떠올렸다. 내가 겪었던 폭력을 넘어 광주학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12·12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소명을 가지고 취재에 임했다. 이 책은 그 소명의식의 산물이다.
1957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했다. 광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일반 정치와 외교안보 분야를 주로 취재했고 국제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을 역임했다.
대학 4학년이던 1980년 5월 17일 밤 학교 캠퍼스에서 학우들과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군 부대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해산했는데, 귀가하지 않고 교내 기숙사로 친구를 찾아갔다가 다음 날 새벽 기숙사를 포위한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혀 그들의 군홧발에 무자비하게 맞았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할 때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로서 ‘12·12’를 심층 취재해 기사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사건이 5·17, 5·18과 연결된 점에 주목하고 그날을 떠올렸다. 내가 겪었던 폭력을 넘어 광주학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12·12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소명을 가지고 취재에 임했다. 이 책은 그 소명의식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