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12·12 그날을 100인의 관련자 증언과 사진으로 재구성한 책.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전격 조사와 하나회 숙청 등이 벌어질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저자는 12·12의 핵심 인물인 정승화, 장태완을 비롯해 100여 명의 관련자를 인터뷰 및 심층 취재해 1년 동안 신문 연재했고, 이때의 기록이 이 책 『12·12』의 토대가 되었다.
기자 특유의 취재력과 문장력으로 1979년 12월 12일의 긴박한 상황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이 책은 당시의 역사 현장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관련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 그날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MZ세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게 된 전후 맥락을 살필 수 있게 했으며, 인물에 대한 상세한 주와 관련 사진을 풍부하게 실었다.
Contents
책을 펴내며: 다시 돌아본 12·12 그날의 진실과 사실
초판 후기: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대한 허기짐
프롤로그
전두환 보안사령관 임명의 역사적 의미 | 1973년 윤필용 사건의 본질 |
전두환 보안사령관 취임 이후의 정국
제1부 전초전
1.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위세
전두환과 정승화, 군의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 | 1979년 11월, 장태완 장군의 수경사령관 기용과 반발
2. 정승화와 전두환, 서로 헤어질 결심을 하다
12·12 군사반란 사건 3일 전의 골프 회동 | 전두환 경질설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치밀하게 준비된 정승화 총장 연행 계획
3. 군사반란 암호 ‘생일집 잔치’
전두환이 경복궁 30경비단 모임을 조직한 까닭 | ‘생일집 잔치’라는 암호명은 어떻게 나왔나 | 한 명의 이탈자 없이 모인 경복궁 30경비단 모임
4. 한남동의 총성
저녁 7시 20분의 총성으로 시작된 12·12 | 마침내 실행된 정승화 총장 연행 작전 | 역사의 방향을 바꾼 총성
5. 총격 아수라장 속 연행된 정승화 총장
총장님, 가시죠! | 엇갈린 진술, 누구의 말이 사실인가
6. 때늦은 공관 앞 격전
7분 만에 이루어진 연행 작전 | 다시 경비대 막사 | 정승화 총장 부인 신 씨의 증언 | 합수부 측 헌병을 제압한 해병경비대
7. 전군 비상경계령이 내려지다
‘진돗개 하나’ 비상경계령이 내려지다 | B2벙커에서의 육본 수뇌 모임 | 연희동 요정집의 세 장군 | 총장 공관 상황 보고에 흙빛이 된 전두환 | 공관 외곽초소 경비의 강화
8. 전두환의 특전· 수경사령관 유인작전
미리 계획된 세 장군과의 선약 | 저녁 7시 35분, 총장 공관 총격 사건 보고가 들어오다
9. 장태완 수경사령관, 경복궁에 강제 진압을 선언하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빠른 대응 | 육본 B2벙커로 모여든 참모들
10. 전두환, 대통령 공관을 봉쇄하다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한 전두환 | 육본 지휘부의 뒤늦은 상황 판단 | 외부세계와 차단된 총리 공관
제2부 12월 12일 밤, 그날의 기록
11. 3군사령부의 병력 장악 비상
12월 12일 저녁 7시, 경기 용인 계엄간담회 | 12월 12일 저녁 9시, 필동 수경사령부의 대응 | 굉장히 불순한 장난
12. 신군부 장성들, 최 대통령에게 재가를 집단으로 요구하다
“각하, 재가를 해주셔야 합니다” | 최규하 대통령, “지난밤 죽을 뻔했다” | 2시간 동안 사라진 노재현 국방부장관 | 전두환의 발빠른 대응
37. 전두환의 청와대 입성 그 후
전두환, 청와대 입성에 성공하다 | 문민정부, 5공을 단죄하다 | 12·12 사건의 교훈
에필로그
영화 〈서울의 봄〉에는 없는 ‘서울의 봄’ | 신군부의 희생 제물, 김대중
Author
이계성
1957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했다. 광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일반 정치와 외교안보 분야를 주로 취재했고 국제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을 역임했다.
대학 4학년이던 1980년 5월 17일 밤 학교 캠퍼스에서 학우들과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군 부대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해산했는데, 귀가하지 않고 교내 기숙사로 친구를 찾아갔다가 다음 날 새벽 기숙사를 포위한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혀 그들의 군홧발에 무자비하게 맞았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할 때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로서 ‘12·12’를 심층 취재해 기사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사건이 5·17, 5·18과 연결된 점에 주목하고 그날을 떠올렸다. 내가 겪었던 폭력을 넘어 광주학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12·12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소명을 가지고 취재에 임했다. 이 책은 그 소명의식의 산물이다.
1957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했다. 광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일반 정치와 외교안보 분야를 주로 취재했고 국제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을 역임했다.
대학 4학년이던 1980년 5월 17일 밤 학교 캠퍼스에서 학우들과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군 부대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해산했는데, 귀가하지 않고 교내 기숙사로 친구를 찾아갔다가 다음 날 새벽 기숙사를 포위한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혀 그들의 군홧발에 무자비하게 맞았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할 때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로서 ‘12·12’를 심층 취재해 기사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사건이 5·17, 5·18과 연결된 점에 주목하고 그날을 떠올렸다. 내가 겪었던 폭력을 넘어 광주학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12·12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소명을 가지고 취재에 임했다. 이 책은 그 소명의식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