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에서 태어났다. 키이우(키예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불가코프는 의사였던 외삼촌들과 마찬가지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키이우(키예프) 대학교 의과 대학에 입학한다. 다음 해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불가코프는 적십자를 통하여 우크라이나 남서쪽에 있는 카메네츠-포돌스키, 체르놉치 등 최전방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한다. 의대 졸업을 앞두고 있던 불가코프는 1916년 여름에 갑작스레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스몰렌스크 현의 니콜스코예 마을로 파견된다. 1916년 러시아는 의대 졸업생들을 징병하여 각 지방으로 파견 보냈는데, 불가코프도 그 징병 대상에 속했던 것이다. 불가코프는 1년 후인 1917년 9월에 뱌지마로 파견되어 계속 의료 활동을 이어 간다.
한편 1917년 겨울, 러시아 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러시아가 볼셰비키의 손에 떨어지면서 내전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미 뱌지마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불가코프는 예기치 못한 징병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병역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수차례 요청한 끝에 1918년 2월에 건강상의 이유로 퇴역한 불가코프는 키이우(키예프)로 돌아와 성병 전문의로 활동한다. 하지만 불가코프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에 휘말린다. 수차례 키이우(키예프)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불가코프도 징병된다. 이후 키이우(키예프)를 점령한 데니킨의 백군 진영에서 군위관으로 활동하게 된 불가코프는 1919년, 퇴각하는 백군을 따라 러시아 남부의 블라디캅카스로 이동한다. 얼마 안 가 백군은 볼셰비키에게 패배하여 해외로 도주하지만 불가코프는 티푸스에 걸려 망명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남기로 한다. 이후 그는 의사직을 버리고 펜을 잡기로 결정한다. 1921년에 모스크바로 이사 오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불가코프는 궁핍한 생활을 견디며 『기적』, 『노동자』 등의 신문 또는 잡지에 사설, 단편 등을 왕성하게 투고했다. 1924년에 소설 『백위군』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1925년에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이 작품을 연극으로 각색해 달라는 요청도 받는다. 같은 해에 중편소설 『디야볼리아다』, 『비운의 알』, 단편소설 「중국인 이야기」 등이 포함된 소설집도 출판된다.
하지만 중편소설 『개의 심장』의 원고가 1926년, 압수당한 것을 시작으로 불가코프의 작품 출판에 제동이 걸린다. 1929년 불가코프의 모든 작품들이 출판 및 상연 금지되고 망명 신청마저도 거부당한다. 다음 해인 1930년에는 어렵게 창작에 매진하던 불가코프에게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던 희곡 『위선자들의 비밀 모임』 상연까지 금지된다. 스스로 작품 원고를 불태워 버릴 정도로 좌절한 불가코프는 결국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망명을 요청하였고, 얼마 후 스탈린이 직접 불가코프에게 전화를 걸어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일해 볼 것을 권한다. 극장에서 조연출로 일하게 된 불가코프는 고골의 『죽은 혼』, 『검찰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 고전 작품들을 각색하며 왕성하게 활동한다. 1939년에는 스탈린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 『바툼』을 집필하지만 역시 스탈린이 상연을 금지시켜 버리고,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진 불가코프는 시력을 상실하는 지경에 이른다. 병상에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 간 불가코프는 세 번째 아내인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실롭스카야의 도움을 받아 구술로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교정한다. 하지만 불가코프는 1940년 3월 10일 사망하고,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불가코프 사후 26년이 지난 1966년에야 출판된다.
1891년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에서 태어났다. 키이우(키예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불가코프는 의사였던 외삼촌들과 마찬가지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키이우(키예프) 대학교 의과 대학에 입학한다. 다음 해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불가코프는 적십자를 통하여 우크라이나 남서쪽에 있는 카메네츠-포돌스키, 체르놉치 등 최전방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한다. 의대 졸업을 앞두고 있던 불가코프는 1916년 여름에 갑작스레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스몰렌스크 현의 니콜스코예 마을로 파견된다. 1916년 러시아는 의대 졸업생들을 징병하여 각 지방으로 파견 보냈는데, 불가코프도 그 징병 대상에 속했던 것이다. 불가코프는 1년 후인 1917년 9월에 뱌지마로 파견되어 계속 의료 활동을 이어 간다.
한편 1917년 겨울, 러시아 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러시아가 볼셰비키의 손에 떨어지면서 내전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미 뱌지마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불가코프는 예기치 못한 징병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병역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수차례 요청한 끝에 1918년 2월에 건강상의 이유로 퇴역한 불가코프는 키이우(키예프)로 돌아와 성병 전문의로 활동한다. 하지만 불가코프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에 휘말린다. 수차례 키이우(키예프)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불가코프도 징병된다. 이후 키이우(키예프)를 점령한 데니킨의 백군 진영에서 군위관으로 활동하게 된 불가코프는 1919년, 퇴각하는 백군을 따라 러시아 남부의 블라디캅카스로 이동한다. 얼마 안 가 백군은 볼셰비키에게 패배하여 해외로 도주하지만 불가코프는 티푸스에 걸려 망명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남기로 한다. 이후 그는 의사직을 버리고 펜을 잡기로 결정한다. 1921년에 모스크바로 이사 오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불가코프는 궁핍한 생활을 견디며 『기적』, 『노동자』 등의 신문 또는 잡지에 사설, 단편 등을 왕성하게 투고했다. 1924년에 소설 『백위군』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1925년에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이 작품을 연극으로 각색해 달라는 요청도 받는다. 같은 해에 중편소설 『디야볼리아다』, 『비운의 알』, 단편소설 「중국인 이야기」 등이 포함된 소설집도 출판된다.
하지만 중편소설 『개의 심장』의 원고가 1926년, 압수당한 것을 시작으로 불가코프의 작품 출판에 제동이 걸린다. 1929년 불가코프의 모든 작품들이 출판 및 상연 금지되고 망명 신청마저도 거부당한다. 다음 해인 1930년에는 어렵게 창작에 매진하던 불가코프에게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던 희곡 『위선자들의 비밀 모임』 상연까지 금지된다. 스스로 작품 원고를 불태워 버릴 정도로 좌절한 불가코프는 결국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망명을 요청하였고, 얼마 후 스탈린이 직접 불가코프에게 전화를 걸어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일해 볼 것을 권한다. 극장에서 조연출로 일하게 된 불가코프는 고골의 『죽은 혼』, 『검찰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 고전 작품들을 각색하며 왕성하게 활동한다. 1939년에는 스탈린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 『바툼』을 집필하지만 역시 스탈린이 상연을 금지시켜 버리고,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진 불가코프는 시력을 상실하는 지경에 이른다. 병상에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 간 불가코프는 세 번째 아내인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실롭스카야의 도움을 받아 구술로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교정한다. 하지만 불가코프는 1940년 3월 10일 사망하고,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불가코프 사후 26년이 지난 1966년에야 출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