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죽음

바이러스에 감염된 글, 모음
$12.96
SKU
9791190156264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05/24 - Thu 05/30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05/21 - Thu 05/23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2/02/20
Pages/Weight/Size 120*188*15mm
ISBN 9791190156264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Description
100여 년 전 세계를 죽음으로 몰아간 스페인 독감
그 이후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지금의 코로나19 대유행과 매우 흡사한 양상을 보였던 스페인 독감 대유행 당시의 모습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 1세기나 전의 일이었으니 그 대처법에 지금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스크, 예방주사,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 언론의 보도행태와 정부의 대응까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을 당시 우리의 모습을 어땠을까?

스페인 독감 대유행 당시를 배경으로 쓰인 여러 글들을 하나로 모은 책이다.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몰라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맞이한 상황이었으니 코로나19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었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유행에 직면한 현재의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마스크, 예방주사(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만들어졌기에 예방의 효과는 없는 것이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언론의 보도행태, 정부의 대응 등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Contents
간단한 죽음 ― 기쿠치 간
감모의 병상에서 ― 요사노 아키코
마스크 ― 기쿠치 간
죽음의 공포 ― 요사노 아키코
신처럼 나약한 ― 기쿠치 간
편지 중에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노부코 ― 미야모토 유리코
이상한 이야기 ― 데라다 도라히코
재채기 ― 사사키 구니
이층에서 ― 오카모토 기도
도상 ― 다니자키 준이치로
도상의 범인 ― 하마오 시로
감기 한 다발 ― 구니키다 고쿠시
덫에 걸린 사람 ― 고가 사부로
Author
기쿠치 간,박현석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시대의 극작가, 소설가, 저널리스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등과 제3차, 제4차 『신사조(新思潮)』 동인. 소설에 『원수의 저편에(恩讐の彼方に)』, 『도주로의 사랑(藤十?の?)』, 『진주부인(?珠夫人)』, 희곡 『옥상의 광인(屋上の狂人)』, 『아버지 돌아오다(父?る)』 등이 있음. 문예가협회를 설립하고, 잡지 [문예춘추(文芸春秋)]를 창간하였으며, 아쿠타가와상(芥川賞)과 나오키상(直木賞), 기쿠치간상(菊池?賞)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다이에이(大映) 사장으로 영화사업에도 관여하는 등 ‘문단의 거물’로 불리었다. 조선과 관련해서는, 1920년대부터 [경성일보]에 자주 소개되었으며, 1930년 9월 남만주철도 초청 강연과 1940년 8월 ‘문예총후운동대강연회(文芸銃後運動大講演?)’를 위해 경성을 방문하였다. 1939년에는 ‘조선예술상’을 설치, 조선 문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공직추방을 당한 상태에서 1948년 협심증으로 사망하였다.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시대의 극작가, 소설가, 저널리스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등과 제3차, 제4차 『신사조(新思潮)』 동인. 소설에 『원수의 저편에(恩讐の彼方に)』, 『도주로의 사랑(藤十?の?)』, 『진주부인(?珠夫人)』, 희곡 『옥상의 광인(屋上の狂人)』, 『아버지 돌아오다(父?る)』 등이 있음. 문예가협회를 설립하고, 잡지 [문예춘추(文芸春秋)]를 창간하였으며, 아쿠타가와상(芥川賞)과 나오키상(直木賞), 기쿠치간상(菊池?賞)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다이에이(大映) 사장으로 영화사업에도 관여하는 등 ‘문단의 거물’로 불리었다. 조선과 관련해서는, 1920년대부터 [경성일보]에 자주 소개되었으며, 1930년 9월 남만주철도 초청 강연과 1940년 8월 ‘문예총후운동대강연회(文芸銃後運動大講演?)’를 위해 경성을 방문하였다. 1939년에는 ‘조선예술상’을 설치, 조선 문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공직추방을 당한 상태에서 1948년 협심증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