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 작가로 자리매김한 미시마 유키오의 문제적 걸작,
정교하고 치밀한 묘사로 무시무시한 매혹을 선사하는 소설 『금색禁色』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절정기의 필력으로 선보인 문제적 작품 『금색』이 번역 출간된다. 1950~1960년대 일본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탐미주의 문학에서 독보적으로 천재적인 재능을 선보인 작가다. 일본적 미의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미적 세계를 구축하며 삶 자체를 최고의 예술로 여긴 미시마 유키오의 『금색』은 사랑과 죽음의 광기, 육체와 정신의 기형적 분리와 봉합, 극단으로 치닫는 악마적 에너지, 인간과 사회, 예술과 성애를 강렬하고 섬세한 문체로 묘사함으로써 뜨거운 몰입과 흡입력을 선사한다.
이 소설은 추한 외모를 지녔지만 정신성으로 무장한 노작가 히노키 슌스케와, 정신은 빈약하지만 완벽한 육체 자체로 예술의 완성이라 할 만한 아름다운 청년 유이치를 내세워 인간을 구성하는 정신과 육체, 관념과 예술의 충돌을 흥미진진하게 그리는 작품이다. 1951년 1월부터 10월까지 문예지 [군조]에 1부가 연재되는 것을 시작으로, 1952년부터 53년 8월까지 문예지 [문학계]에 2부가 연재되었으며 이후 1부와 2부를 합쳐 1964년 신초샤에서 완결판이 출간되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스승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조차 ‘놀라운 작품’이라며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너무나도 파격적이고 적나라한 묘사와 지나친 통속성을 이유로 비평가들로부터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금색』으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데 큰 성공을 거둔다.
Contents
1장 발단
2장 거울의 계약
3장 효성스런 아들의 결혼
4장 황혼녘 바라본 먼 화재의 효능
5장 구도 입문
6장 여자의 고충
7장 등장
8장 감성의 밀림
9장 질투
10장 거짓의 우연과 진실의 우연
11장 일상다반사
12장 Gay Party
13장 은밀한 관계
14장 독립독보
15장 어찌할 도리 없는 일요일
16장 여행의 전후 사정
17장 마음 가는 대로
18장 보고 말았다
19장 나의 파트너
20장 아내의 재앙은 남편의 재앙
21장 늙은 추타
22장 유혹자
23장 무르익는 나날
24장 대화
25장 변화
26장 취기에서 눈뜬 여름의 도래
27장 간주곡
28장 청천벽력
29장 기회 창출의 신
30장 씩씩한 사랑
31장 정신적 및 금전적 문제
32장 히노키 슌스케가 쓰는 〈히노키 슌스케론〉
33장 대단원
Author
미시마 유키오,정수윤
전후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탐미주의 작가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고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다케平岡公威이다. 1944년 가쿠슈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엘리트 관료 집안에 맞는 진로를 선택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한다. 1941년 「꽃이 한창인 숲」을 문예지에 발표하면서 ‘미시마 유키오’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44년 가쿠슈인 고등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947년 대학 졸업 후 대장성의 관료가 되었지만 이듬해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퇴직했다. 열세 살 때부터 필명을 만들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미시마가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한 것은 1946년에 쓴 단편 「담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인간』지에 실리면서부터이다.
1949년 대학을 졸업한 미시마는 대장성 금융국에서 근무하지만 공무원 사회의 관료주의를 이기지 못한 채 일 년 만에 사표를 내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무렵에 쓴 장편 『가면의 고백』을 통해 일본 주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는 화려한 문장과 미의식을 바탕으로 『사랑의 갈증』, 『푸른 시절』, 『금색』 등의 수작을 잇달아 발표했으며, 1957년 『금각사』가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학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금각사』의 성공 이후 미시마 유키오는 수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61년에는 2·26 쿠데타 사건을 소설화한 단편 「우국」을 발표했는데, 이는 자신의 종말을 예언한 작품이기도 하다.
1970년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4부작 장편소설 『풍요의 바다』 마지막 편을 출판사에 넘긴 미시마는 자신의 추종자를 데리고 1970년 11월 25일 일본 자위대 주둔지에 난입하여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후 대중 앞에서 할복하여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지면서 45세의 생을 마감했다.
전후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탐미주의 작가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고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다케平岡公威이다. 1944년 가쿠슈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엘리트 관료 집안에 맞는 진로를 선택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한다. 1941년 「꽃이 한창인 숲」을 문예지에 발표하면서 ‘미시마 유키오’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44년 가쿠슈인 고등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947년 대학 졸업 후 대장성의 관료가 되었지만 이듬해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퇴직했다. 열세 살 때부터 필명을 만들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미시마가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한 것은 1946년에 쓴 단편 「담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인간』지에 실리면서부터이다.
1949년 대학을 졸업한 미시마는 대장성 금융국에서 근무하지만 공무원 사회의 관료주의를 이기지 못한 채 일 년 만에 사표를 내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무렵에 쓴 장편 『가면의 고백』을 통해 일본 주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는 화려한 문장과 미의식을 바탕으로 『사랑의 갈증』, 『푸른 시절』, 『금색』 등의 수작을 잇달아 발표했으며, 1957년 『금각사』가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학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금각사』의 성공 이후 미시마 유키오는 수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61년에는 2·26 쿠데타 사건을 소설화한 단편 「우국」을 발표했는데, 이는 자신의 종말을 예언한 작품이기도 하다.
1970년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4부작 장편소설 『풍요의 바다』 마지막 편을 출판사에 넘긴 미시마는 자신의 추종자를 데리고 1970년 11월 25일 일본 자위대 주둔지에 난입하여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후 대중 앞에서 할복하여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지면서 45세의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