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사선 큰글씨책

$32.40
SKU
9791128859243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Wed 05/7 - Tue 05/13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Fri 05/2 - Tue 05/6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2/01/28
Pages/Weight/Size 210*297*20mm
ISBN 9791128859243
Categories 소설/시/희곡 > 고전문학
Description
유영에 이어 대표적인 완약사(婉約詞) 작가로 꼽히지만,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진관의 사를 소개한다. 전대 완약사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보완해 정과 운치가 동시에 뛰어나면서도 우아한 사람과 통속적인 사람이 함께 즐기는 풍격을 창조한 첫 번째 사인(詞人), 진관의 대표작 35편을 엄선했다.
Contents
1. 사랑의 슬픈 추억과 아픔
그리움은 봄과 함께
봄날 이별한 여인
이별의 슬픔
사사(師師)를 생각하며
못 잊을 그때의 그녀
가슴 아픈 이별
순수한 사랑
그녀와의 첫 만남
그녀 때문에 상심하여도
고통스런 이별
고독한 밤에
그녀가 떠난 새벽에
임을 기다리는 여인


2. 좌천과 유배의 고통, 절망
서울을 떠나와서
지나간 날들이여
이별의 슬픔
나그네의 우수
유배지의 고독과 슬픔
나그네의 한
역사(驛舍)의 밤 추위
보이지 않는 그 사람


3. 흘러만 가는 세월
가을의 한
과거 시험에 낙방하고
저무는 봄이 애석하여
봄날 아침의 적막과 우수
아름다웠던 지난날
진회(秦淮)를 지나가며


4. 잊을 수 없는 광경과 여인들
양주(揚州)를 회상하며
못 잊을 그녀
<조소령(調笑令)> 10수(首)와 시(詩)
왕소군(王昭君)
반반(盼盼)


5. 애정의 갈등
얄미운 그대
뾰로통한 그녀


6. 꿈속의 환상 세계
꿈속에 보는 신선 세계
꿈속의 환상 세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Author
진관,송용준
진관은 자(字)가 소유(少游 : 처음에는 태허(太虛)를 썼으나 37세 때 바꾸었음)고, 호(號)는 회해거사(淮海居士)로 양주(揚州) 고우(高郵: 지금의 장쑤성 가오유) 사람이다. 그는 송(宋) 인종(仁宗) 황우(皇祐) 원년(1049)에 중소 관료 가정에서 태어났다. 조부 승의공(承議公)은 일찍이 남강(南康)에서 관직을 지냈고, 숙부 진정(秦定)은 회계위(會稽尉)·강남동로전운판관(江南東路轉運判官)·지호주(知濠州) 등의 관직을 지냈다.진관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집 안에서 지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별로 교제가 없었으며, 평시에는 다만 책을 빌려 열심히 읽고 문장을 학습할 따름이었다. 그와 같은 생활은 그의 성격을 유약하게 만들어 급기야 이후의 정치적 풍파와 그의 시(詩)·사(詞) 속에 그러한 성격이 반영된다. 학문을 연마하며 조용하게 성장기를 보낸 진관은 영종(英宗) 치평(治平) 4년(1067) 열아홉 살 때 담주(潭州) 영향주부(寧鄕主簿) 서성보(徐成甫)의 장녀 문미(文美)와 결혼했다.진관은 당시 구양수(歐陽修)에 이어 문단의 영수로 떠오른 소식을 흠모해 그의 문하로 들어가 배우기를 희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중, 희령(熙寧) 7년(1074) 27세 때 소식이 항주(杭州)에서 밀주(密州)로 가는 도중 양주(揚州)에 들른다는 말을 듣고 그가 묵을 절의 벽에다 미리 시 한 수를 적어놓았다. 소식은 그 시를 보고 내심 감탄해 마지않았는데, 나중에 손각이 와서 진관의 시와 사 수백 편을 보여주자 크게 감동해 “절의 벽에 시를 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군요”라고 하고는 진관과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원풍(元豊) 원년(1078) 진관은 경사(京師)에 가서 처음으로 과거 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해 귀가했다. 이것이 벼슬길에 있어서 첫 번째 좌절이었는데, 그 실패로 말미암아 〈엄관명(掩關銘)〉을 짓고 한동안 집 안에 들어앉아 독서로 소일했다. 얼마 후 그는 소식을 경모하는 마음에 팽성(彭城)으로 가 그를 방문했다. 그때 소식은 서주의 수재(水災)를 다스리고 나서 황루(黃樓)를 지은 참이라 그에게 <황루부(黃樓賦)>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작품을 완성하고 보여주자 소식은 그를 칭찬해 “굴원(屈原)과 송옥(宋玉)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진관은 당대의 대문호요 정치가였던 소식과 왕안석의 인정을 받았지만 과거 시험에 누차 낙방한 탓에 의기소침해서인지 1085년, 마소유(馬少游)라는 위인에게 공감해 자(字)를 소유(少游)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해에 진관은 뜻밖에도 과거 시험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이후 당파 싸움으로 소식이 실각됨과 동시에 항주(杭州), 침주(?州), 횡주(橫州), 뇌주(雷州) 등지로 좌천되었다가, 휘종(徽宗)이 즉위하자 사면되어 돌아오는 도중에 등주(藤州)에서 죽었다.고문(古文)과 시에 능하였고 특히 사(詞)에 뛰어났다. 시문집 『회해집(淮海集)』(40권)과 그 『후집(後集)』(6권), 사집(詞集)으로 『회해장단구(淮海長短句)』(3권) 등이 있다.
진관은 자(字)가 소유(少游 : 처음에는 태허(太虛)를 썼으나 37세 때 바꾸었음)고, 호(號)는 회해거사(淮海居士)로 양주(揚州) 고우(高郵: 지금의 장쑤성 가오유) 사람이다. 그는 송(宋) 인종(仁宗) 황우(皇祐) 원년(1049)에 중소 관료 가정에서 태어났다. 조부 승의공(承議公)은 일찍이 남강(南康)에서 관직을 지냈고, 숙부 진정(秦定)은 회계위(會稽尉)·강남동로전운판관(江南東路轉運判官)·지호주(知濠州) 등의 관직을 지냈다.진관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집 안에서 지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별로 교제가 없었으며, 평시에는 다만 책을 빌려 열심히 읽고 문장을 학습할 따름이었다. 그와 같은 생활은 그의 성격을 유약하게 만들어 급기야 이후의 정치적 풍파와 그의 시(詩)·사(詞) 속에 그러한 성격이 반영된다. 학문을 연마하며 조용하게 성장기를 보낸 진관은 영종(英宗) 치평(治平) 4년(1067) 열아홉 살 때 담주(潭州) 영향주부(寧鄕主簿) 서성보(徐成甫)의 장녀 문미(文美)와 결혼했다.진관은 당시 구양수(歐陽修)에 이어 문단의 영수로 떠오른 소식을 흠모해 그의 문하로 들어가 배우기를 희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중, 희령(熙寧) 7년(1074) 27세 때 소식이 항주(杭州)에서 밀주(密州)로 가는 도중 양주(揚州)에 들른다는 말을 듣고 그가 묵을 절의 벽에다 미리 시 한 수를 적어놓았다. 소식은 그 시를 보고 내심 감탄해 마지않았는데, 나중에 손각이 와서 진관의 시와 사 수백 편을 보여주자 크게 감동해 “절의 벽에 시를 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군요”라고 하고는 진관과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원풍(元豊) 원년(1078) 진관은 경사(京師)에 가서 처음으로 과거 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해 귀가했다. 이것이 벼슬길에 있어서 첫 번째 좌절이었는데, 그 실패로 말미암아 〈엄관명(掩關銘)〉을 짓고 한동안 집 안에 들어앉아 독서로 소일했다. 얼마 후 그는 소식을 경모하는 마음에 팽성(彭城)으로 가 그를 방문했다. 그때 소식은 서주의 수재(水災)를 다스리고 나서 황루(黃樓)를 지은 참이라 그에게 <황루부(黃樓賦)>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작품을 완성하고 보여주자 소식은 그를 칭찬해 “굴원(屈原)과 송옥(宋玉)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진관은 당대의 대문호요 정치가였던 소식과 왕안석의 인정을 받았지만 과거 시험에 누차 낙방한 탓에 의기소침해서인지 1085년, 마소유(馬少游)라는 위인에게 공감해 자(字)를 소유(少游)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해에 진관은 뜻밖에도 과거 시험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이후 당파 싸움으로 소식이 실각됨과 동시에 항주(杭州), 침주(?州), 횡주(橫州), 뇌주(雷州) 등지로 좌천되었다가, 휘종(徽宗)이 즉위하자 사면되어 돌아오는 도중에 등주(藤州)에서 죽었다.고문(古文)과 시에 능하였고 특히 사(詞)에 뛰어났다. 시문집 『회해집(淮海集)』(40권)과 그 『후집(後集)』(6권), 사집(詞集)으로 『회해장단구(淮海長短句)』(3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