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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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1/12
Pages/Weight/Size 170*220*28mm
ISBN 9791190489492
Categories 소설/시/희곡 > 고전문학
Description
플로베르 탄생 200주년 특별판
『마담 보바리』, 이브 생로랑의 옷을 입다!
이브 생로랑의 삽화와 필사 수록


19세기 위대한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 그리고 20세기 후반 세계 패션을 주도한 이브 생로랑의 문학과 예술적 만남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마담 보바리』 특별판이 플로베르 탄생 2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번역 작업을 거쳐 출간되었다. 번역은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플로베르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방미경 역자가 맡았다.

플로베르의 작품 속에는 욕망하는 주체의 자기상像이 그려져 있다. 인물들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놓은 욕망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것의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플로베르가 그린 인물의 세계는 현실을 벗어난 환상의 세계이다. 작품 속에 나타난 현실도피의 꿈은 플로베르의 글쓰기 작업이 은둔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모든 현실적인 것을 초월하여 늘 다른 곳에 있고자 하는 작가의 무한한 욕구가 인물들의 상상력을 부추긴다.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은 나였다”라고 말했듯이 화려한 것에 대한 동경,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그 자신의 욕망이 곧 엠마 보바리의 삶을 결정지었다고 할 수 있다.

플로베르가 5년 동안의 힘겨운 작업을 거쳐 완성한 『마담 보바리』는 소설이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지만 겨우 유죄판결을 면한다. 이후 당대 최고 작가라는 명성과 함께, 현실을 외면하고 꿈과 이상만을 좇는다는 의미의 ‘보바리슴’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857년 출간된 『마담 보바리』와 1951년 중학생이었던 이브 마티외 생로랑이 그린 그림 사이에는 세기를 뛰어넘는 문학적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 알제리의 오랑 출생으로 20세기 후반 세계 패션의 리더이자 특히 예술과의 접목으로 브라크, 고흐, 마티스 등의 그림을 패션에 디자인하여 발표하기도 했던 생로랑은 이미 열다섯 살에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마담 보바리」 드로잉 시리즈를 제작했다.
Contents
이브 생로랑의 필사 및 삽화
서문(막심 카트루,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로랑 재단 부회장)
1부/ 2부/ 3부
이브 생로랑의 그림에 대한 기술적 노트
이브 생로랑의 삽화가 들어간 소설 장면
옮긴이의 말
Author
귀스타브 플로베르,이브 생로랑,방미경
노르망디의 중심 도시 루앙에서 1821년 12월 12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루앙 시립병원의 외과부장이고 어머니는 노르망디 태생이다. 아버지가 외과 의사였던 사실은 그가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고 세밀하고 객관적인 관찰을 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열다섯 살 여름휴가 때 트루빌에서 만난 젊고 아름다운 엘리자 슐레징거 부인에게 격렬하고도 신비스러운 애정을 기울인다. 『감정교육』(1869)에서 마리 아르누 부인의 윤곽이 슐레징거 부인의 모습을 통하여 표현되어 있다.

1840년에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파리의 법과대학에 등록하지만, 『감정교육』 초고 집필 중이던 1843년 10월에 신경병 발작 이후 법학을 그만두고 문학에만 몰두한다. 이 무렵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는다. 이후 플로베르의 인생은 여행과 친구들(특히 시인 루이 부예)이 중심이 된다. 그 무렵 ‘뮤즈’라고 불리던 여류 시인 루이즈 콜레와의 관능적 연애도 경험한다.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는 당시 플로베르가 쓰고 있던 작품이나 문학에 관한 생각들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다.

1851년 이집트 여행에서 돌아와 『마담 보바리』 집필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1857년 1월에 기소되어 경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시인 라마르틴이 변호 서한을 보내주었고 2월 7일에 무죄판결이 났다. 이듬해는 소설 『살람보』를 준비하기 위해서 튀니지를 여행한다. 1862년에는 『살람보』가 미셸 레비 서점에서 출판되어 성공을 거둔다.

5년의 시간을 바쳐 1869년에 『감정교육』을 탈고했으나, 평이 별로 좋지 않아 실망하게 된다. 그해에는 친구 부예와 동료 생트뵈브를 잃고 신경병이 재발했다. 1870년에는 쥘 공쿠르를, 1872년에는 어머니를, 1876년에는 조르주 상드를 잃었다. 만년은 『성 앙투안의 유혹』(1874) 등이 호평을 얻지 못하여 낙담했으나 『세 가지 이야기』(1877)가 좋은 평을 받았다.

또한 그가 대부가 된 모파상의 성공은 침체되어 있던 그의 만년에 생기를 주었다. 1880년 5월 8일, 뇌출혈로 급사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미완성작으로 사후에 출판(1881)되었다. 한편 아홉 권에 이르는 『서간집』은 비평가들에게 최대의 걸작으로 간주된다.
노르망디의 중심 도시 루앙에서 1821년 12월 12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루앙 시립병원의 외과부장이고 어머니는 노르망디 태생이다. 아버지가 외과 의사였던 사실은 그가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고 세밀하고 객관적인 관찰을 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열다섯 살 여름휴가 때 트루빌에서 만난 젊고 아름다운 엘리자 슐레징거 부인에게 격렬하고도 신비스러운 애정을 기울인다. 『감정교육』(1869)에서 마리 아르누 부인의 윤곽이 슐레징거 부인의 모습을 통하여 표현되어 있다.

1840년에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파리의 법과대학에 등록하지만, 『감정교육』 초고 집필 중이던 1843년 10월에 신경병 발작 이후 법학을 그만두고 문학에만 몰두한다. 이 무렵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는다. 이후 플로베르의 인생은 여행과 친구들(특히 시인 루이 부예)이 중심이 된다. 그 무렵 ‘뮤즈’라고 불리던 여류 시인 루이즈 콜레와의 관능적 연애도 경험한다.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는 당시 플로베르가 쓰고 있던 작품이나 문학에 관한 생각들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다.

1851년 이집트 여행에서 돌아와 『마담 보바리』 집필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1857년 1월에 기소되어 경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시인 라마르틴이 변호 서한을 보내주었고 2월 7일에 무죄판결이 났다. 이듬해는 소설 『살람보』를 준비하기 위해서 튀니지를 여행한다. 1862년에는 『살람보』가 미셸 레비 서점에서 출판되어 성공을 거둔다.

5년의 시간을 바쳐 1869년에 『감정교육』을 탈고했으나, 평이 별로 좋지 않아 실망하게 된다. 그해에는 친구 부예와 동료 생트뵈브를 잃고 신경병이 재발했다. 1870년에는 쥘 공쿠르를, 1872년에는 어머니를, 1876년에는 조르주 상드를 잃었다. 만년은 『성 앙투안의 유혹』(1874) 등이 호평을 얻지 못하여 낙담했으나 『세 가지 이야기』(1877)가 좋은 평을 받았다.

또한 그가 대부가 된 모파상의 성공은 침체되어 있던 그의 만년에 생기를 주었다. 1880년 5월 8일, 뇌출혈로 급사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미완성작으로 사후에 출판(1881)되었다. 한편 아홉 권에 이르는 『서간집』은 비평가들에게 최대의 걸작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