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가호와 히구치 이치요는 근대 일본의 선구적인 여성 작가, 동문 출신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에 속하는 가호와 서민 생활 속에서 우연히 싹튼 재능을 지닌 이치요는 대조적인 환경이라는 점에서 항상 대립적으로 비교되는 경향이 있다. 미야케 가호의 『덤불 속 꾀꼬리』에는 일본의 메이지 20년대라는 시대 상황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으며, 당시의 서양화와 국수주의가 지배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잘 정돈된 작품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전체적인 줄거리도 상당히 자연스럽고 인간의 감정도 일상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당시의 사고방식을 반영한 젊은 작가의 분별력 있는 인생 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히구치 이치요의 『키재기』는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는 소년 소녀의 심리를 소설로 쓰겠다는 의도 그 자체가 당시에는 전례가 없던 시도로, 독자 스스로가 어릴 때의 감정을 그립고 친숙하게 되돌아봄으로써 그 신선함에 한층 더 놀랐을 것이다. 『덤불 속 꾀꼬리』가 새로우면서도 일종의 풍속소설이라면 서정미가 흐르는 『키재기』의 히구치 이치요는 예술로서의 미의식, 시로서의 미의식에 있어서 일본 고전적인 여성의 마지막 대표자라는 정평이다. 다만 근대 일본의 여성 작가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출발한 것은 일본의 여성 작가로서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그 역사적 운명의 험난함을 암시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Contents
역자의 말
덤불 속 꾀꼬리
제1회 신년연회(新年宴會)
제2회 과부와 연하남
제3회 양벽가(洋癖家) 시노하라(篠原)
제4회 마쓰시마(松島) 남매
제5회 미야자키(宮崎) 댁에서
제6회 여학교 기숙사
제7회 도락시대(道樂時代)
제8회 부인의 미덕
제9회 신쿄로(新橋樓) 밀회
제10회 사달난 관계
제11회 선남선녀
제12회 고요칸(紅葉館)의 축하연
작품해설: 일본 근대 최초의 여성 작가가 쓴 여학생에 의한 여학생들의 이야기
미야케 가호 연보
키재기
1. 다이온지 앞
2. 조키치와 신뇨
3. 미도리와 아이들
4. 아이들의 결전 준비
5. 한판 붙는 옆동네와 앞동네
6. 결전 다음날, 미도리와 쇼타로
7. 신뇨와 미도리
8. 유곽의 아이 미도리
9. 용화사 아들 신뇨
10. 결전의 뒤, 그리고
11. 여자애와 남자애
12. 이상한 두근거림
13. 공연히 마음은 끌리는데
14. 쇼타로와 미도리
15. 이상한 미도리
16. 다들 어찌 될지
작품해설: 한 송이 해맑은 연꽃의 매력
히구치 이치요 연보
Author
미야케 가호,히구치 이치요,이상경
본명은 다나베 다쓰코(田邊龍子). 에도 막부의 신하(幕臣)였으며 메이지 신정부의 외교관과 원로원 의원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으로 여성 교육을 중시하는 아토미(跡見) 여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와카 학교(歌塾) 하기노샤(萩の舍)에 들어가 와카·고전문학·서도 등을 익혔다. 1886년 도쿄 고등여학교(현 오차노미즈 여자대학)에 입학하여, 양장 차림으로 양서를 읽는 진보적인 환경 속에서 서구화 교육을 받고 1889년 22세에 졸업하였다. 졸업하기 1년 전, 여성에 의한 최초의 근대소설인 『덤불 속 꾀꼬리』를 간행하여 상당한 호평을 얻었다. 1892년에는 국수주의적인 정치평론단체 정교사(政敎社)에 속해 있던 미야케 세쓰레이(三宅雪讀)와 결혼하였다. 1894년 27세에는 정식으로 가문(家門)을 열고 와카를 가르쳤고, 1901년 34세에 일본여자대학에 와카 교수로 취임하였다. 소설로는 『아시노 히토후시(蘆の一ふし: 갈대의 마디 하나)』, 『야에자쿠라(八重櫻: 겹벚꽃)』를 비롯한 12편과 수필 『쓰유(梅雨: 장마)』, 『소노히 소노히(その日その日: 그날 그날)』 등을 간행한 후 여성 문제에 대한 많은 논평을 발표하였다. 1943년 76세에 사망하였다.
본명은 다나베 다쓰코(田邊龍子). 에도 막부의 신하(幕臣)였으며 메이지 신정부의 외교관과 원로원 의원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으로 여성 교육을 중시하는 아토미(跡見) 여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와카 학교(歌塾) 하기노샤(萩の舍)에 들어가 와카·고전문학·서도 등을 익혔다. 1886년 도쿄 고등여학교(현 오차노미즈 여자대학)에 입학하여, 양장 차림으로 양서를 읽는 진보적인 환경 속에서 서구화 교육을 받고 1889년 22세에 졸업하였다. 졸업하기 1년 전, 여성에 의한 최초의 근대소설인 『덤불 속 꾀꼬리』를 간행하여 상당한 호평을 얻었다. 1892년에는 국수주의적인 정치평론단체 정교사(政敎社)에 속해 있던 미야케 세쓰레이(三宅雪讀)와 결혼하였다. 1894년 27세에는 정식으로 가문(家門)을 열고 와카를 가르쳤고, 1901년 34세에 일본여자대학에 와카 교수로 취임하였다. 소설로는 『아시노 히토후시(蘆の一ふし: 갈대의 마디 하나)』, 『야에자쿠라(八重櫻: 겹벚꽃)』를 비롯한 12편과 수필 『쓰유(梅雨: 장마)』, 『소노히 소노히(その日その日: 그날 그날)』 등을 간행한 후 여성 문제에 대한 많은 논평을 발표하였다. 1943년 76세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