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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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6/10
Pages/Weight/Size 153*224*35mm
ISBN 9791169955003
Categories 인문 > 독서/비평
Description
이 작품은 대한제국 시기 고종의 호위무사였던 김철의 첫째 아들 김강철이 러시아로 이주하여 겪는 이야기로 고려인 1세대인 그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일제강점기와 제정 러시아 말기, 시베리아 내전, 소련의 탄생 속에서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접하며 유라시아를 배경으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대하 역사소설이다. 주인공 김강철은 일제강점기부터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다양한 접경공간 속에서 격동의 현대사를 겪으며 중앙아시아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독특한 역사의식과 정체성의 형성과정을 겪는다.

2024년 고려인들의 러시아로 이주의 역사는 160주년을 맞았으며, 그들은 지난 세기에는 유라시아 대륙을 유랑하며 21세기에는 대한민국에서 접경문화와 문화공간을 형성하며 살아오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문화적 배경이 점점 다양해지며 다문화를 넘어 상호문화시대로 진입했다. 그 구성원들 중에는 21세기에 들어 그들의 역사적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귀향한 고려인들도 포함되어있다. 공존을 위한 포용이 필요한 현 시기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길잡이의 역할을 소설이 할 수 있을 것이다.
Contents
발간사 5
저자 서문 7
일러두기 11

제1부
왕의 광영을 위하여 13

제2부
이역만리로 197

제3부
러시아 모루의 울림 439
Author
블라디미르 김(용택),손은정
1946년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쉬켄트 근교 촌락인 '꾸일로크'에서 태어났다. 출생한 해에 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가서 12세까지 살았다. 당시 소련한인을 위해 평양에 개교한 학교에 들어가 러시아어로 공부했다. 한국전쟁 동안에는 중국에서 살았고, 15세 때에 타쉬켄트로 돌아와 석공, 미장공, 판석공 등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그동안 야간학교를 마치고 종합기술학교 산업 및 민간 건축공학과에 들어가 공부했는데, 1년 후 학업을 뒤로하고 군에 입대했다. 그곳에서 지역 군사 신문에 기사를 쓰기도 했다. 제대 후 타쉬켄트 국립대학 언론학부에서 공부했고, 이후 학생 및 청년 신문사에서 일해 책임비서까지 승진했다. 1979년 한국어로 발행되는 '레닌기치' 신문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이후 타쉬켄트 통신사의 소장이 되었다. 타쉬켄트 국립대학에서 언론학을 강의했으며, 사범대학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공로언론인'의 칭호를 받았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는 한국문화원 설립에 적극 참여하였다.
1946년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쉬켄트 근교 촌락인 '꾸일로크'에서 태어났다. 출생한 해에 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가서 12세까지 살았다. 당시 소련한인을 위해 평양에 개교한 학교에 들어가 러시아어로 공부했다. 한국전쟁 동안에는 중국에서 살았고, 15세 때에 타쉬켄트로 돌아와 석공, 미장공, 판석공 등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그동안 야간학교를 마치고 종합기술학교 산업 및 민간 건축공학과에 들어가 공부했는데, 1년 후 학업을 뒤로하고 군에 입대했다. 그곳에서 지역 군사 신문에 기사를 쓰기도 했다. 제대 후 타쉬켄트 국립대학 언론학부에서 공부했고, 이후 학생 및 청년 신문사에서 일해 책임비서까지 승진했다. 1979년 한국어로 발행되는 '레닌기치' 신문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이후 타쉬켄트 통신사의 소장이 되었다. 타쉬켄트 국립대학에서 언론학을 강의했으며, 사범대학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공로언론인'의 칭호를 받았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는 한국문화원 설립에 적극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