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선명(1920~2012년)은 이른바 ‘통일교(統一敎)’의 교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문선명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위대한 인물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사악한 존재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기독교인과 통일교인의 문선명에 대한 이해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기독교인들은 문선명을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로 간주한다. 그들에게 문선명은 사이비 이단종교의 교주일 뿐이다. 반면에 문선명을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말세에 나타날 재림주로 믿고 따르는 통일교인들은 그를 ‘참부모’라 부른다. 세상에 이보다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면 문선명은 과연 누구인가? 성서적 관점에서 문선명은 적그리스도인가 아니면 재림주인가?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맞는가 아니면 통일교인들의 주장이 맞는가? 성서적 관점을 떠나 21세기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에서 문선명이란 인물을 과연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문선명은 통일교를 기반으로 막강한 권세와 재력을 누렸다. 2009년에 발행된 그의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를 보면, 그가 누린 권세와 재력은 어느 국가의 수장 못지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누렸던 그 권세와 재력은 2012년 93세의 일기로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는 그의 직계가족들을 중심한 소수의 통일교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이양되었다. 문선명은 떠났지만 통일교는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토대로 통일교는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문선명과 통일교에 대한 세상의 이해는 파편적인 지식에 근거한다. 기독교인들의 이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심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세상은 여전히 문선명과 통일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선명과 통일교에 대한 세상의 이해가 깊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문선명과 통일교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객관적인 판단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문선명과 통일교에 대하여 세상이 가지고 있는 그 약간의 정보라는 것도 대부분 어느 특정한 종교적 관점이나 또는 어느 개인의 특수한 상황에 매몰되어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객관성을 잃어버림으로써 그 신뢰성이 극히 결여되어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종교적 관점이나 특수한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겠으나, 그래도 최소한 어떤 주장을 펼칠 때는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논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에서 문선명과 통일교에 관심을 갖고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문선명과 통일교에 대한 세상의 이해는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통일교 신도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문선명을 재림주로 믿고 따르는 통일교 신도들조차도 문선명과 통일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문선명과 통일교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시점에서, 이 책은 문선명과 통일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하나의 객관적인 판단자료를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