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첨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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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11/28
Pages/Weight/Size 128*188*35mm
ISBN 9791128855665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Description
조야에서 보고 들은 것을 모두 기록했다

『조야첨재』는 당나라의 문인 장작(張?)이 지은 역사쇄문류 필기문헌이다. 총 6권에 371조의 고사가 수록되어 있다. 『조야첨재』에 수록된 고사의 시대 범위는 대부분 수나라 말부터 당나라 현종 개원 연간 초기까지이며, 남북조 시대의 고사가 일부 들어 있다. 그중에서 측천무후 집정시기(690∼705)의 고사가 150조 가까이 되어 전체 고사의 약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고사의 내용은 ‘조야에서 보고 들은 것을 모두 기록했다’는 서명처럼 상당히 광범위한데, 이를 크게 조정의 고사와 재야의 고사로 개괄해 볼 수 있다.

먼저 조정의 고사는 정치에 대한 풍간(諷諫)이 주를 이룬다. 특히 측천무후 집정 시기를 중심으로 당시 정치의 암흑상과 부패상, 간신배와 아첨배의 음험한 모략과 전횡, 혹리들의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 전체 관료 집단의 나약함과 무능함, 관리 선발의 난맥상, 잔혹한 권력 투쟁 등에 대해 풍자하고 비판했다. 반면에 근검을 실천하고 선정을 베푼 청렴한 관리들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작은 인물을 품평하길 좋아하고 시정을 규탄하길 즐겨 당시 사인들에게 경박하다고 미움을 받았는데, 그의 평소 생각과 성격이 이러한 고사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한 그의 이러한 비판 정신은 매우 귀중한 시대적 의미를 지닌다.

다음으로 재야의 고사는 굉장히 다양하다. 여러 계층의 인물의 특이한 언행과 일화, 부인들의 투기, 환술·인요(人妖)·귀신·요괴·정령·재생(再生)·무덤·명기(銘記) 등에 관한 괴이한 고사, 불교와 도교에 관한 고사, 방사와 무당에 관한 고사, 참어(讖語)·징조·점복·해몽에 관한 고사, 민간 풍속과 전설, 민간 가요, 여러 지방의 특이한 풍물, 천문과 의약 등 실로 광범위하다. 이 같은 특징은 당시 사회 전반의 다양한 특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Contents
권1

1-1(001) 왕자정
1-2(002) 장경장
1-3(003) 진주의 점쟁이
1-4(004) 채미원
1-5(005) 개원 연간의 두 도사
1-6(006) 노원흠
1-7(007) 주윤원
1-8(008) 양원량
1-9(009) 조현경
1-10(010) 장문중
1-11(011) 학공경
1-12(012) 최무
1-13(013) 버섯 독
1-14(014) 뱀 독
1-15(015) 야갈과 짐조
1-16(016) 잡다한 약
1-17(017) 최상
1-18(018) 최융
1-19(019) 농서 이씨
1-20(020) 장문성
1-21(021) 정음과 최식
1-22(022) 사봉관
1-23(023) 이진충
1-24(024) 능공관
1-25(025) 고영
1-26(026) 상조가
1-27(027) 돌궐염
1-28(028) 중악 봉선
1-29(029) 양류요
1-30(030) 황장가
1-31(031) 필나아
1-32(032) 안락사
1-33(033) 까막까치 둥지
1-34(034) 잉어
1-35(035) 천추
1-36(036) 누런 송아지
1-37(037) 낙빈왕
1-38(038) 염지미
1-39(039) 장손무기
1-40(040) 위왕
1-41(041) 무미낭
1-42(042) 효화
1-43(043) 위숙린
1-44(044) 무삼사
1-45(045) 장역지
1-46(046) 손전
1-47(047) 주령
1-48(048) 백마사
1-49(049) 이몽
1-50(050) 하후처신
1-51(051) 유경
1-52(052) 하후표
1-53(053) 정인개
1-54(054) 등우
1-55(055) 위장
1-56(056) 노경잠
1-57(057) 감자포
1-58(058) 노숭도
1-59(059) 유인궤
1-60(060) 임지선
1-61(061) 배유창
1-62(062) 위씨
1-63(063) 장가복
1-64(064) 장인위
1-65(065) 유지원
1-66(066) 장문성
1-67(067) 장성
1-68(068) 커다란 까마귀
1-69(069) 유주 사람
1-70(070) 묵철
1-71(071) 장역지
1-72(072) 손전
1-73(073) 낮에 나타난 태백성
1-74(074) 거대한 별
1-75(075) 화재
1-76(076) 수재
1-77(077) 송지손

권2

2-1(078) 남양왕
2-2(079) 주찬
2-3(080) 진승친
2-4(081) 설진
2-5(082) 진원광
2-6(083) 독고장
2-7(084) 색원례
2-8(085) 나직인
2-9(086) 상원해
2-10(087) 무승사
2-11(088) 장역지 형제
2-12(089) 주흥
2-13(090) 후사지
2-14(091) 길욱
2-15(092) 성왕 이천리
2-16(093) 장인단
2-17(094) 왕욱
2-18(095) 경사 삼표
2-19(096) 장효숭
2-20(097) 사우
2-21(098) 하내왕 무의종
2-22(099) 양무렴
2-23(100) 이전교
2-24(101) 진회경
2-25(102) 하문영
2-26(103) 장희망
2-27(104) 정종간
2-28(105) 방영숙
2-29(106) 조선사
2-30(107) 진랍국
2-31(108) 오계만
2-32(109) 밀즉
2-33(110) 개두사
2-34(111) 무유녕
2-35(112) 담창 스님
2-36(113) 금형
2-37(114) 범약의 여종
2-38(115) 호양의 첩
2-39(116) 양인유의 여종
2-40(117) 장경의 여종
2-41(118) 이훈의 첩
2-42(119) 화엄
2-43(120) 육언
2-44(121) 추이
2-45(122) 호탑
2-46(123) 부황중
2-47(124) 양성
2-48(125) 원수일
2-49(126) 최태지
2-50(127) 육여경
2-51(128) 손언고
2-52(129) 강사도
2-53(130) 석혜공
2-54(131) 이근도
2-55(132) 세 가지 더러움
2-56(133) 양도
2-57(134) 상정종
2-58(135) 독고수충
2-59(136) 왕웅
2-60(137) 국숭유
2-61(138) 양사회

권3

3-1(139) 동씨
3-2(140) 최경의 딸
3-3(141) 이여의 모친
3-4(142) 노헌의 딸
3-5(143) 등렴의 부인
3-6(144) 양용화
3-7(145) 임괴의 부인
3-8(146) 위도부
3-9(147) 측천무후
3-10(148) 설계창
3-11(149) 진안평
3-12(150) 이구운
3-13(151) 장작
3-14(152) 배원질
3-15(153) 최식
3-16(154) 두현
3-17(155) 내준신
3-18(156) 아래
3-19(157) 옹문지
3-20(158) 팽군경
3-21(159) 하파
3-22(160) 아래파
3-23(161) 조진검
3-24(162) 섭도사
3-25(163) 하남의 천주
3-26(164) 양주의 천주
3-27(165) 명숭엄
3-28(166) 명숭엄
3-29(167) 정사
3-30(168) 이자덕
3-31(169) 섭법선
3-32(170) 나공원
3-33(171) 구양통
3-34(172) 맹지검
3-35(173) 주내
3-36(174) 허손
3-37(175) 어대
3-38(176) 당 중종
3-39(177) 당 예종
3-40(178) 장역지
3-41(179) 종초객
3-42(180) 안락공주
3-43(181) 수 양제
3-44(182) 안락공주
3-45(183) 안락공주
3-46(184) 유용자
3-47(185) 곽순
3-48(186) 왕수
3-49(187) 당동태
3-50(188) 호연경
3-51(189) 주전의
3-52(190) 백철여
3-53(191) 이경원
3-54(192) 염지미
3-55(193) 장이섭
3-56(194) 염현일
3-57(195) 곽무정
3-58(196) 하명원
3-59(197) 나회
3-60(198) 등왕과 장왕
3-61(199) 두지범
3-62(200) 하후표지
3-63(201) 왕지음
3-64(202) 단숭간
3-65(203) 최현신
3-66(204) 엄승기
3-67(205) 장창의

권4

4-1(206) 신단
4-2(207) 우홍
4-3(208) 후백
4-4(209) 고사렴
4-5(210) 장원일
4-6(211) 길욱
4-7(212) 주수후
4-8(213) 이상
4-9(214) 장작
4-10(215) 장작
4-11(216) 정음
4-12(217) 이경현
4-13(218) 축흠명
4-14(219) 강사도
4-15(220) 강회
4-16(221) 위광승
4-17(222) 완숭
4-18(223) 학상현
4-19(224) 주전의
4-20(225) 왕급선
4-21(226) 녹인걸
4-22(227) 원염
4-23(228) 조정에 도는 말
4-24(229) 심자영
4-25(230) 무의종
4-26(231) 장형
4-27(232) 이양필
4-28(233) 염지미
4-29(234) 최식
4-30(235) 권용양
4-31(236) 이의득
4-32(237) 배담
4-33(238) 장작
4-34(239) 여경일
4-35(240) 장창기
4-36(241) 고억
4-37(242) 측천무후
4-38(243) 위호
4-39(244) 조 녹사
4-40(245) 원앙
4-41(246) 유경양
4-42(247) 봉주의 물고기
4-43(248) 통천
4-44(249) 낙수의 아이
4-45(250) 만경의 연못
4-46(251) 한순
4-47(252) 장항
Author
장작,김장환
『조야첨재(朝野僉載)』의 찬자 장작(張?, 650?∼722?)은 당나라의 문인으로, 자는 문성(文成)이고 호는 부휴자(浮休子)이며 심주(深州) 육택[陸澤 : 지금의 허베이성 선현(深縣) 북쪽] 사람이다. 고종(高宗)·측천무후(則天武后)·중종(中宗)·예종(睿宗)과 현종(玄宗) 초기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출중했다. 고종 조로(調露) 연간(679∼680)에 진사에 급제했는데, 당시 저명한 문인이자 주고관(主考官)이었던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건미도(騫味道)로부터 “천하무쌍(天下無雙)”이라는 칭찬을 받고, 기왕부(岐王府)의 참군(參軍)에 제수되었다. 또한 황제가 주관한 여덟 번의 제거(制擧)와 이부에서 치른 네 번의 관리 선발 시험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해, 장안현위(長安縣尉)에 제수되었다가 홍려승(鴻?丞)으로 승진했다. 그래서 당시 저명한 문인이었던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 원반천(員半千)이 그를 “청전학사(靑錢學士)”라고 칭찬했는데, 이는 나중에 재학(才學)이 뛰어나 시험을 볼 때마다 합격하는 사람을 뜻하는 성어가 되었다.

측천무후 증성년(證聖年 : 695)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기용되었다. 그는 성격이 편협하고 조급했으며 선비로서 품행을 지키지 못해, 당시 재상이었던 요숭(姚崇)에게 미움을 받았다. 결국 장안(長安) 연간(701∼704) 초에 처주사창(處州司倉)과 유주사호(柳州司戶)로 폄적되었다가 나중에 덕주(德州) 평창현령(平昌縣令)으로 전임되었다. 현종 개원(開元) 2년(714)에 시정(時政)을 비방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탄핵당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으며, 몇 년 후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사문원외랑(司門員外郞)을 지내다가 73세에 죽었다. 그는 화려한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나 그의 문장이 당시에 크게 유행했으며, 신라와 일본의 사신들이 값을 아끼지 않고 그의 문장을 사 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전해지는 저작으로는 『조야첨재』 외에 당나라의 판례를 모아 놓은 『용근봉수판(龍筋鳳髓判)』과 전기소설(傳奇小說)로 유명한 『유선굴(遊仙窟)』 등이 있다. 그의 전(傳)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장천전(張薦傳)>에 실려 있다.
『조야첨재(朝野僉載)』의 찬자 장작(張?, 650?∼722?)은 당나라의 문인으로, 자는 문성(文成)이고 호는 부휴자(浮休子)이며 심주(深州) 육택[陸澤 : 지금의 허베이성 선현(深縣) 북쪽] 사람이다. 고종(高宗)·측천무후(則天武后)·중종(中宗)·예종(睿宗)과 현종(玄宗) 초기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출중했다. 고종 조로(調露) 연간(679∼680)에 진사에 급제했는데, 당시 저명한 문인이자 주고관(主考官)이었던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건미도(騫味道)로부터 “천하무쌍(天下無雙)”이라는 칭찬을 받고, 기왕부(岐王府)의 참군(參軍)에 제수되었다. 또한 황제가 주관한 여덟 번의 제거(制擧)와 이부에서 치른 네 번의 관리 선발 시험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해, 장안현위(長安縣尉)에 제수되었다가 홍려승(鴻?丞)으로 승진했다. 그래서 당시 저명한 문인이었던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 원반천(員半千)이 그를 “청전학사(靑錢學士)”라고 칭찬했는데, 이는 나중에 재학(才學)이 뛰어나 시험을 볼 때마다 합격하는 사람을 뜻하는 성어가 되었다.

측천무후 증성년(證聖年 : 695)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기용되었다. 그는 성격이 편협하고 조급했으며 선비로서 품행을 지키지 못해, 당시 재상이었던 요숭(姚崇)에게 미움을 받았다. 결국 장안(長安) 연간(701∼704) 초에 처주사창(處州司倉)과 유주사호(柳州司戶)로 폄적되었다가 나중에 덕주(德州) 평창현령(平昌縣令)으로 전임되었다. 현종 개원(開元) 2년(714)에 시정(時政)을 비방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탄핵당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으며, 몇 년 후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사문원외랑(司門員外郞)을 지내다가 73세에 죽었다. 그는 화려한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나 그의 문장이 당시에 크게 유행했으며, 신라와 일본의 사신들이 값을 아끼지 않고 그의 문장을 사 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전해지는 저작으로는 『조야첨재』 외에 당나라의 판례를 모아 놓은 『용근봉수판(龍筋鳳髓判)』과 전기소설(傳奇小說)로 유명한 『유선굴(遊仙窟)』 등이 있다. 그의 전(傳)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장천전(張薦傳)>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