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의 유력한 제후들은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힘으로 타국의 패권을 장악하고 귀속시키는 그런 시대였다. 그들은 춘추시대의 제(齊)나라 환공(桓公)이나 진(晉)나라 문공(文公)과도 같은 패자(覇者)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맹자는 그의 사상을 제후들에게 유세하고 다니면서 패도(覇道)를 부정하고 왕도(王道)를 제창했다.
공자는 대략 기원전 551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경에 죽었고, 맹자는 기원전 372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89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가들에 의해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로 분류된다. 공자는 춘추시대에 살았으며
맹자는 전국시대에 살았다. 춘추시대는 기원전 770년에서 기원전 403년까지이고, 전국시대는 기원전 403년에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전인 기원전 222년까지이다.
맹자의 따르면 통치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백성의 복지를 보살펴야 된다고 했다. 그것은 백성들의 생계를 위한 물질적인 상황의 안정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그들을 교육시키는 도덕과 교육적 지침을 마련해야 된다고 했다. 또한 백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고 보장해주는 구체적 계획에 대해 언급했고, 이 이야기는 ??맹자??에서 세 번 이나 언급하고 있다. “생계수단이 든든해야 든든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恒有産 恒有心)는 것이 그의 지론이고 그의 대표적인 사상이다.
맹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보완하고 확장했다. 공자의 인(仁)에 의(義)를 덧붙여 인의를 강조했고, 왕도정치를 말했으며, 민의에 의한 정치적 혁명을 긍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작업에는 인간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가 깔려 있다. 사람의 천성은 선하며, 이 착한 본성을 지키고 가다듬는 것이 도덕적 책임과 의무라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맹자의 이름은 가軻이다. 주나라 때(BC 372 ~ BC 289 추정) 사람이다. 맹자는 공자시대 이후 유가에서 가장 큰 학파를 이룬 사람으로, 제나라, 위나라, 등나라 등을 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인의仁義의 덕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가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적 분열 상태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의하고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70세 가량으로 추정된다.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시경』과 『서경』, 공자의 뜻에 대해 토론했으며, 그때 만들어진 책이 오늘날 전해지는 『맹자』 7편이다. 후한의 조기가 『맹자장구』를 지으면서 각 편을 상하로 나누어 현재의 14편이 된 것이다.
맹자의 이름은 가軻이다. 주나라 때(BC 372 ~ BC 289 추정) 사람이다. 맹자는 공자시대 이후 유가에서 가장 큰 학파를 이룬 사람으로, 제나라, 위나라, 등나라 등을 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인의仁義의 덕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가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적 분열 상태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의하고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70세 가량으로 추정된다.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시경』과 『서경』, 공자의 뜻에 대해 토론했으며, 그때 만들어진 책이 오늘날 전해지는 『맹자』 7편이다. 후한의 조기가 『맹자장구』를 지으면서 각 편을 상하로 나누어 현재의 14편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