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화열전 1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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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07/22
Pages/Weight/Size 188*257*17mm
ISBN 9788965456131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Description
청말 상하이를 휩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해상화열전』국내 완역 출간

『해상화열전』은 한마디로 이전의 소설과 다르다.
광서 말에서 선통 초까지 상하이에서는 이러한 기루 소설이 많이 나왔으나 『해상화열전』과 같이 평담하면서 사실적인 작품은 없었다.
- 루쉰(魯迅)

19세기 말 중국의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다룬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이자 만청(晩淸)시기의 대표 작가 한방경이 남긴 마지막 소설 『해상화열전』이 드디어 국내 최초 완역 출간되었다. 1892년 상하이에서 발행된 중국 최초 문예잡지 『해상기서』에 연재된 이 소설은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중국 소설사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문체와 전개 방식, 내용적 측면에서 현대성을 선취한 독보적인 작품으로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화류계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중국 고전문학의 정수로 널리 알려진 『홍루몽』과 유사한 작품으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해상화열전』에 이르러 『홍루몽』이라는 전통은 마감되고 기루소설은 중대한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대문호 루쉰의 평을 주목한다면 이 소설의 진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해상화열전』은 작품 내부의 완결성으로 인해 문학적 글쓰기의 독창성을 구현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의 부침을 사실적으로 다룸으로써 ‘상하이’라는 공간을 중국 소설사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킨 선구성을 담보한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은 부산대 중어중문학과에서 본 작품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관련 작가론 및 작품론을 두루 제출한 김영옥 선생이 맡았다. 총 두 권으로 분권 출간되는 국내 번역본에는 1894년 석인초간 영인본으로 간행될 당시 삽입되었던 삽화와 더불어 작품의 재미와 이해를 더해줄 작가 한방경의 서문과 후기 또한 빼놓지 않고 수록하였다.
Contents
서序

01 조박재는 함과가의 외삼촌을 방문하고,
홍선경은 취수당의 중매를 서다
趙樸齋鹹瓜街訪舅 洪善卿聚秀堂做媒

02 애송이는 아편을 피우다 공연히 웃음거리가 되고, 어린 기녀는 술자리 이야기로 쓸데없이 조롱하다
小子裝煙空一笑 人喫酒枉相譏

03 어린 기녀의 이름을 지어 간판을 내걸고,
속례를 따지는 새파란 양아치는 상석을 뒤집다
議芳名小妹附招牌 拘俗禮細首座

04 체면을 봐서 대행해주며 물건을 사다 주고,
눈짓을 하며 질투하는 것을 감싸주다
看面情代當買辦 眼色喫醋是包荒

05 빈틈을 메운 포졸은 새로운 즐거움을 맺고,
집을 전세 내어 이사 가는 이는 옛 애인을 속이다
空當快手結新歡 包住宅調頭瞞舊好

06 아들을 키운다는 농담은 좋은 가르침을 증명하고, 기생어미를 통제하는 기이한 일은 인지상정을 뒤집다
養魚言徵善 管老奇事反常情

07 악랄한 올가미는 남을 현혹하는 전략을 덮어두고, 아름다운 인연은 박명의 구덩이를 메우다
惡圈套住迷魂陣 美姻緣塡成薄命坑

08 꿍꿍이속을 품고 붉은 색실이 담긴 상자를 억지로 맡기게 하고, 영민한 입담을 뽐내며 일곱 가지 향이 나는 마차를 물리치다
蓄深心劫留紅線盒 逞利口謝却七香車


09 심소홍은 장혜정을 때려눕히고,
황취봉은 나자부와 설전하다
沈小紅拳張蕙貞 黃翠鳳舌戰羅子富

10 처음 단장하는 어린 기녀는 엄한 가르침을 받고, 오랜 빚을 갚아주는 어리숙한 손님은 무딘 말솜씨로 대응하다
理新討人嚴訓導 還舊債客鈍機鋒
Author
한방경,김영옥
송강부 누현(松江府 婁縣, 지금의 상하이)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 한종문(韓宗文, 1819∼?)이 형부주사(刑部主事) 직책을 맡게 되어 유년 시절을 베이징에서 보냈다. 1876년 전후 고향 누현으로 돌아와 수재(秀才)가 되었으나, 이후 1885년 난징 향시에 낙방하였다. 1887년부터 1890년까지 『신보』에서 편집자 및 논설 기고자로 생활하였다. 1891년 베이징 향시에 낙방한 후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1892년 2월에 중국 최초 문예 잡지 『해상기서』를 간행하여 『해상화열전』을 연재하였다. 1894년 초봄 64회 석인본 『해상화열전』을 출판한 후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송강부 누현(松江府 婁縣, 지금의 상하이)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 한종문(韓宗文, 1819∼?)이 형부주사(刑部主事) 직책을 맡게 되어 유년 시절을 베이징에서 보냈다. 1876년 전후 고향 누현으로 돌아와 수재(秀才)가 되었으나, 이후 1885년 난징 향시에 낙방하였다. 1887년부터 1890년까지 『신보』에서 편집자 및 논설 기고자로 생활하였다. 1891년 베이징 향시에 낙방한 후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1892년 2월에 중국 최초 문예 잡지 『해상기서』를 간행하여 『해상화열전』을 연재하였다. 1894년 초봄 64회 석인본 『해상화열전』을 출판한 후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